시작은 2019년 가을이었다.
특허 100건 등록하기 프로젝트. 무모해보였던 이 프로젝트는 2020년 겨울을 끝으로 성공적으로 마무리되었다. 최초에 약속했던 등록률 80%를 뛰어 넘는 등록률 100%라는 진기록까지 세웠다.
이 프로젝트를 우리에게 의뢰해주었던 기업은 기술특례상장을 앞두고 있다. 그리고 우리는 특허라는 제한된 영역을 넘어서 그 기업의 기술특례상장을 돕고 함께 준비하고 있다.
하나의 특허가 만들어지기 위해서는 아이디어 접수, 발명자 인터뷰, 선행기술 검토, 특허 명세서 작성과 리뷰, 심사 대응 등의 일련의 절차를 거치게 된다. 전무후무한 이 프로젝트를 성공시키기 위해서는 매 단계마다 새롭고 창의적인 전략이 필요했다.
제한된 지면을 빌려서 몇가지 팁과 경험을 나누고자 한다. 영업 비밀이므로 모든 것을 오픈하지 못함을 양해바란다.
1. 많은 시간을 함께 보내야 한다.
프로젝트 시작과 함께 우리 특허법인 내에서는 TF가 구성되었다. 그러나, 어느 곳이나 인력은 항상 부족하다. 프로젝트 초반에는 기업의 아이디어 제공 속도 대비 늦은 특허 명세서 작성 속도로 컴플레인을 많이 받았었다.
2020년 봄 어느 컴플레인 자리에서 우리는 고객사 파견이라는 파격적인 역제안을 했고 그것이 받아들여졌다. 그리고, 우리 TF의 인력들은 오로지 이 기업의 일에만 집중할 수 있게 되었고, 그 밖의 일들은 업무에서 배제되었다. 파견 기간 동안 기업은 우리를 위해 6인용 회의실을 기꺼이 내주었다. 파견과 함께 프로젝트는 완전히 새로운 국면을 맞이하게 되었다.
파견은 매우 효과적이었다. 최초 목표했던 2~3개월의 파견 기간은 결과적으로 4개월로 늘어났고, 4개월의 기간 동안 우리는 60여건의 특허 출원을 빠르게 마무리하고 돌아왔다.
파견 덕분에 아이디어 접수부터 발명자 인터뷰, 선행기술 검토, 아이디어 강화를 위한 피드백 등 특허 명세서 작성을 시작하기 전까지의 일련의 소통을 매우 빠르고 깊게 진행할 수 있었다. 회의 자체도 손쉽게 자주 했지만, 우리는 더욱 빠른 소통을 위해서 슬랙(Slack)으로 공유 채널을 운영하기도 했다.
장기간의 파견으로 인해서 자연스럽게 우리는 고객을 더욱 깊이 이해할 수 있게 되었고, 기업의 비즈니스에 대한 우리의 관점과 시야는 어느새 기업의 연구원들과 동등한 수준 또는 그 너머에 이르게 되었다. 좋은 특허가 만들어질 수 있는 환경이 조성된 것이다.
2. 문제 정의와 아이디어 도출을 도와야 한다.
특허 100건을 위해서는 아이디어 100+건이 필요했다. 기업 구성원 모두의 참여와 노력이 필요했다. 그러나, 특허 경험이 없는 이들에게 특허 출원을 위한 아이디어 발상은 어색하고 어렵기만한 일이다.
우리는 모두를 대상으로 세미나를 진행하고 아이디어 발상을 위한 프레임워크를 전달해주었다. 프레임워크는 예를 들어 디자인싱킹과 같이 복잡한 문제 해결을 위한 구조, 도구, 가이드 같은 것들을 말한다. 이 같은 프레임워크는 창의적인 활동의 두려움을 제거하고 용기를 부여해준다.
먼저, 특허를 위한 아이디어는 문제 인식에서 출발한다. 서비스업의 경우, 자사의 서비스의 시작부터 끝까지 프로세스의 각 단계를 비판적 사고로 바라보면 문제 인식에 쉽게 도달할 수 있다. 현재의 성능, 비용, 편의성, 신뢰성, 호환성 등 모든 것이 문제일 수 있다.
다음으로, 문제를 발굴했으면, 확장적 사고를 통해서 아이디어를 구체화하는 단계를 진행해야 한다. 대부분 문제가 해결된 결론만을 설명할 뿐, 문제를 어떻게 해결할 것인지는 깊이 생각하지 못한다. 이 때에는 스스로 기계(예: CPU)의 입장에서 생각해보면 논리적인 접근이 가능하다. 무엇이 입력되는가? 어떻게 계산할 것인가? 어떻게 비교 판단할 것인가? 결과는 무엇을 나타내는가? 어디로 보내져서 어떤 용도로 활용되는가? 또는, 6하 원칙에 따라 아이디어에서 누락된 부분이나 더 보탤 부분을 검토해볼 수도 있다. 트리즈에서 많이 활용하는 공간, 시간 등을 분리하거나 이원화하는 원칙을 활용해도 좋다. 이런 접근은 예외 또는 오류 처리에 특히 효과적이다.
기업에서는 특허 출원 보상이라는 인센티브 제도를 도입하여 많은 이들의 참여를 독려해주었다.
3. 밸류체인(value chain) 분석부터 시작해야 한다.
밸류체인은 잘 알려진 바와 같이 기업의 경쟁 우위를 발굴하고 강화하기 위하여 마이클 포터에 의해서 제안된 모형이다.
밸류체인 모형은 일반적인 기업, 특히 제조업을 중심으로 개발되었다. 따라서, 구매, 생산, 유통 등 본원적인 활동(primary activities)으로 정의된 내용을 기업의 비즈니스의 구조나 틀에 맞게끔 수정해야 한다. 온라인 서비스업이나 각종 융복합 사업들이라면 더욱 그러하다.
기업만의 밸류체인 모형을 완성하면, 기업이 고객에게 제공하는 가치가 어떻게 생성되어서 어떤 경로로 전달되는지 확인할 수 있다. 그러한 과정 속에서 기업이 확보, 유지, 발전시켜야 하는 핵심 성공 요소(key success factor)가 발견된다. 핵심 성공 요소는 경쟁 우위와 자연스럽게 연결된다.
그 기업은 초기 시장의 초기 진입자였기에, 고객 만족을 높이면서 진입 장벽을 만들기 위한 성공 요소를 선별하고 이 분야에 집중적인 특허를 확보하기로 결정하였다. 그 밖의 요소들은 우선순위는 낮지만 시장의 성장세에 따라 순차적으로 보완해나가기로 하였다.
우리는 특허 100건을 등록하면서 밸류체인의 액티비티별, 요소별로 특허 데이터와 그 변화를 시각화하여 제공하면서 기업이 특허 포트폴리오를 지속적으로 확인 및 추적할 수 있게 해주었다.
4. 특허청 심사관과 적극적으로 소통해야 한다.
특허 출원에서 등록까지 일반적인 심사 기간은 1년6개월에서 2년이다. 특허청은 11개월 정도로 홍보하고 있지만, 그것은 최초 심사 결과를 받아보기까지의 기간이고, 실제로는 1~2차례 반려되기 때문에 그 이상의 기간이 소요된다.
최초 심사 결과를 3~4개월 내에 받아볼 수 있는 우선심사 제도는 이제 많이 알려져 있다. 그러나, 최초 심사 결과가 반려라면, 그 다음 심사 결과를 받아보기까지 다시 4~5개월이 더 소요되는 것은 잘 모르는 듯 하다. 그러다보면 어느새 1년이 지나간다.
예비심사를 활용하면, 반려 없이 3~4개월 내에 최초 심사 결과로 특허 등록결정을 받아볼 수 있다.
예비심사를 신청하면, 신청일로부터 3~6주 경과 시점에 특허청 심사관과 심층 면담을 진행할 수 있다. 심층 면담 이전에 심사관으로부터 사전 심사 결과가 제공되고, 심층 면담 시에는 변리사가 심사관에게 기술 및 심사 결과에 관한 의견을 적극적으로 설명하고 소통할 수 있다.
문서만으로 기술을 설명하는 것은 어렵다. 그리고, 대한민국 특허청 심사관은 전세계에서 가장 바쁘다. 이로 인해서, 특허 명세서에 쓰여진 기술이 잘못 해석되는 경우가 많다. 심층 면담을 활용하면, 심사관은 기술을 더욱 정확하게 이해할 수 있고, 변리사는 특허 등록을 위한 협의점을 쉽게 찾아나갈 수 있다.
우리가 등록받은 특허 100건 중 약 70건은 이렇게 예비심사를 통해서 반려 없이 특허 등록결정을 받은 것이다. 심층 면담 덕분에, 나머지 약 30건의 이후 심사 과정도 비교적 순탄하게 진행되었다.
5. 자기 인용으로 인해서 거절되지 않도록 해야 한다.
논문에서는 자기 표절(self plagiarism)이 문제라면, 특허에서는 자기 인용(self citation)이 문제된다.
본래 자기 인용은 출원인이 새로운 특허를 출원하면서 자신의 이전 특허를 스스로 인용하는 것을 말한다. 자기 인용은 하나의 조직의 기술 축적 수준을 나타내는 기술 평가 지표로 활용되기도 한다.
그러나, 여기서 말하는 자기 인용은 이런 긍정적인 부분을 말하는 것이 아니다. 심사관이 기업이 새로운 특허 출원을 거절하기 위한 선행기술로서 기업의 이전 특허를 인용하는 상황을 말하고자 한다. 일을 잘하는 심사관일 수록 자기 인용을 자주 활용한다.
시장에서 반기는 2세대의 개량 제품이나 서비스임에도 1세대 상품과 관련된 기존 특허로 인해서 특허를 받지 못하는 경우를 흔하게 접한다. 다른 사람이나 기업의 상품과 비교 당한 것이 아니라 자기 상품과 비교 당한 까닭이다.
우리는 100건의 특허를 등록시켜야 했기 때문에, 자기 인용을 막을 방법을 고민해야 했다.
특허가 등록되면 공보로 만들어져 만천하에 공개된다. 특허 등록료는 등록결정을 받아본 후 3개월 안에 납부해야 한다. 원칙적으로는 그렇지만, 18% 가산된 과태료를 납부하면 6개월을 더 끌 수 있다. 중소기업은 등록료가 70% 할인되기 때문에 18%의 과태료는 크지 않다.
특허 등록의 기쁨을 9개월간 미루자는 제안에 대해서 기업에서는 적극적으로 동의해주셨다. 덕분에 우리는 자기 인용을 최대한 피해서 마지막 100번째 특허 출원까지 무사히 등록을 받아낼 수 있게 되었다.
필자소개
김성현 파트너 변리사는 한양대 정보통신학부와 고려대 기술경영전문대학원을 졸업했습니다. 기술가치평가사, 기술거래사 및 VC전문인력 자격을 함께 보유하고 있으며, 기술사업화, 투자 및 IPO에 관심이 많습니다. ICT 전공을 기반으로 인공지능, IoT, 차세대 보안 등과 디지털 융복합 기술을 주로 담당하고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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