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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블록 Aug 31. 2024

각자의 세계

Artists should be protected at any cost


홀로 떠났던 니스 여행에서 우연히 친구와 만났다. 친구는 첫 연애를 시작한지 몇 달 되지 않은 상태였고, 건강한 연애를 하며 행복해보였다. 


친구가 한 가지 이야기를 들려줬다. 


남자친구와 함께 침대에 누워있던 어느 날이었다. 평화롭게 누워있다 문득 자기가 남자친구를 엄청나게 사랑한다는 생각이 들었고, 그 감정을 남자친구에게 말하고 싶었더랬다. 이때 친구도 예상하지 못한 일이 일어났다. 친구는 충동적으로 고개를 들어 남자친구의 얼굴을 붙잡았고, 생각을 거칠 새도 없이 이렇게 내뱉었다. 


Demand kindness. 

Tell People, be nice to you. 

Because you deserve it. 


친절함을 기대해. 

사람들에게 말해. 너에게 친절하라고. 

넌 대접받을 자격이 있으니까. 


친구의 말에 I love you는 없었다. 그러나 우리는 모두 느낄 수 있다. 친구가 한 말이 I love you의, 혹은 그 이상의 표현이라는 것을 말이다. 


이것이 친구의 예술이었다.  


친구가 어릴적부터 언어를 사랑하는 아이였음은 몇 번 들어 알고있는 사실이었다. 친구는 유학 경험이 없던 시절부터 원하는 억양을 오갈 수 있을 정도로 결함 없는 영어를 구사할 줄 알았고, 자신의 언어를 사랑했다. 그런 친구가 말했다. 자신의 예술은 '언어'에 있다고. 그녀에게는 사람들마다 사용하는 미묘한 언어의 차이가 곧 예술이라고 말했다. 


사람들은 모두 언어를 사용한다. 그러나 그 언어의 종류는 같을지언정 입 밖으로 나오는 것은 각자의 언어다. 말투가 다르고, 단어가 다르며, 어순이 다르다. 같은 상황을 보고도 다른 말을 할 것이며, 같은 표현을 위해서 다른 문장을 구사할 것이다. 언어란 얼핏 같아 보이지만 사람에게 고유하다. 


남자친구의 얼굴을 붙잡고 뱉은 말에 친구는 그 본인도 놀라버렸다고 했다. 자기도 모르게 친구는 그녀의 언어로 사랑을 표현한 것이다. 

"만약 다른 사람이었다면 다른 단어에 다른 문장, 다른 어순과 다른 말투를 사용했겠지?"

친구의 언어는 친구에게 고유했다. 고로 그녀의 예술 또한 그녀에게 고유했다. 


그녀의 이야기를 듣자 심장이 뛰기 시작했다. 나는? 나는 한 번도 언어를 예술로 받아들여본 적이 없었다. 그런 생각을 해본 적 또한 없었다. 그러나 친구의 예술이 아무런 감흥 없이 다가왔는가? 절대 그렇지 않았다. 친구가 찾은 아름다움을 분명 나는 함께 느낄 수 있었고, 이해할 수 있었다. 생각해본적도 없는 것이었음에도 말이다. 


가장 멋진 것은 우리가 의도하며 다른 예술을 추구한 것도 아니고, 동의하고 서로의 분야를 침범하지 않은 것도 아닌데 그저 자연스레 각자의 삶 속에서 예술이 다르게 자라왔다는 점이었다. 생각해보면 당연한 일일 수도 있다. 시간이 지날수록 우리는 더 많은 선택을 한다. 가지를 뻗어나가는 나무 그림처럼, 똑같은 지점에서 시작했다 하더라도 선택을 거듭할수록 우리는 자연스레 다른 곳으로 뻗어나갈 것이다. 그러니 수많은 예술가들의 세계는 그들에게 고유하고, 서로 다를 것이다. 


그럼에도 그 다른 세계를 보고있는 감흥은 여전히 신기했다. 친구에게 언어에 주의를 기울이라고 한 사람은 아무도 없었고, 나에게 언어에 주의를 기울이지 말라고 한 사람도 아무도 없었는데도 결과적으로 우리는 그렇게 살고 있었다. 우리는 우리가 좋아하는 것 하나만을 바라보고 선택을 거듭하면서, 눈치채지도 못한 채 자신의 고유한 세계를 만들어내고 있었던 것이다. 


우리 둘 모두가 동의한 것은 친구는 나의 예술을 못할 것이고 나는 친구의 예술을 못할 거란 사실이었다. 

이미 나와 내 친구는 다른 세계를 살고 있다. 그렇다면 세상에 내가 생각도 해보지 못한 아름다움이란 얼마나 많을까? 우리가 스스로 찾지 못한 아름다움을 캐내어주는 사람들을 예술가라고 부르고 있는 것인지도 모른다. 


이날 나는 생각했다. 각자 다른 세계를 가지고 있을 뿐이므로 예술은 비교하는 것이 아니고, 그러므로 모든 예술가는 보호받아야 한다고. 이들 중 하나를 잃으면 우리는 하나의 고유한 세계를 잃게 되므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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