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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블록 Sep 02. 2024

낭비의 값

가격표는 착각

티셔츠 한 장에 3만원이다. 그러나 티셔츠를 산다고 내 마음에 들 거라는 보장은 없다. 아니, 경험에 비추어 볼 때 마음에 들지 않을 확률이 더 높은 것 같다. 3만원이나 하는 티셔츠를 사서 입지도 않고 방치하고 싶지는 않다. 돈이 아깝다고 느낄 미래가 두렵기에 티셔츠를 내려놓는다.


티셔츠를 사지 않은 나는 아무 옷이나 집어 입고 길거리에 나선다. 휘황찬란한 패션을 한 사람들 사이에 섞여 있자니 홀로 비루해 보여 기분이 좋지 않다. 옷을 잘 입고 싶다는 생각이 들면서 얼마 전에 마주친 티셔츠가 생각난다. 역시 사는 게 좋은 선택이었을까? 모르겠다. 얼마큼 입었을지, 입었을 때 생각보다 괜찮았을는지 감을 잡을 수 없다. 옷을 3개만 잘못 사도 10만 원이 그냥 사라진다. 그러니 옷을 '잘' 사야 한다. 꼭 필요한 것만 말이다.


그러나 여기서 질문이다. 그런 일은 가능할까?      


이론적으로는 가능할 것이다. 그러나 현실적으로는, 글쎄?

한 번쯤은 다들 마음에 들지 않는 옷을 사보지 않았던가? 누구나 잘못 옷을 산다. 옷을 '잘' 사기 위해 고민하고 어렵다고 느낀다는 사실이 그 증거다. 잘 고른 옷들만 살 수 있을 거라 기대하면서도 매번 당신의 손에는 마음에 들지 않는 옷도 몇 가지 들려있을 것이다. 그것이 현실에서 일어나는 일이다.


옷을 잘못 사면 소비할 필요 없던 곳에 돈을 낭비해 버린 나 자신을 용서할 수가 없는 기분이 든다. 그러나 잘못된 점은 낭비를 했다는 사실에 있지 않다. 잘못은 커다란 착각을 한 데에 있다.

그 커다란 착각이란, '소비할 필요가 없던 곳'이란 생각 그 자체다.




진찰을 아주 잘 해서 도움을 많이 받은 한의원이 있다. 그러나 이 한의원에 가려면 편도 한 시간을 달려야 했다. 나에게는 그 이동시간이 너무 아깝게만 느껴졌다. 강의를 갈 때면 강의실까지 가는 시간이 아까웠고, 운동을 갈 때면 샤워하는 시간과 옷을 갈아입는 시간이 아까웠다. 이동에 시간을 '빼앗긴다'는 사실에 스트레스를 받았다.


그러던 어느 날, 문득 이런 생각이 들었다. 한의원으로 이동하는 이 1시간은... 필수가 아닌가? 한의원에서 진찰을 받으려면 그곳에 가야 함이 자명하다. 한의원에 가지 않으면 진찰을 받을 수 없다. 그런데도 나는 이동 시간만을 아까워했다. 마치 한의원에 '가는' 것과 '진찰을 받는' 것이 떼어놓을 수 있는 관계인 것처럼 말이다.

그때서야 간단하고 당연한 사실을 깨달았다. 이동하지 않으면 강의에는 갈 수 없고, 옷을 갈아입지 않으면 운동을 할 수 없다. 그러므로 그것들까지가 분명 '할 일'에 필요한 시간이었다. 한의원에 갈 때 내가 생각해야 했던 시간은 진찰을 받는 30분이 아닌, 이동시간까지 더해진 2시간 30분이었다. 그것이 내가 원래 치러야 하는 값이었다.




옷을 사보지 않고서는 마음에 드는 옷을 가질 수 없다. 가격표에는 '3만 원'이라고 적혀있지만, 사실 진짜 값은 3만 원 그 이상이다. 어쩔 수 없이 실패를 감행할 것이기 때문이다. 이것이 '원래' 지불해야 했던 값이다. 실패하는 옷들이 '낭비'라고 생각하는 것 같지만, 아니. 그 실패까지가 '좋은 옷'을 사기 위해 우리가 치러야 했던 값이다.


이론적으로 옷에 달린 가격표의 값만을 지불하고 멋진 옷을 건지는 것은 가능하다. 운이 아주 좋다면 말이다. 하지만 현실적으로 우리는 우리가 매번 운이 좋은 축복받은 인간이 아님을 알고 있다. 그러니 낭비를 했다며 자신을 질책하고 스트레스받지 말자. 스트레스는 착각으로 이루어진 가짜이므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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