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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블록 Sep 07. 2024

과학∩예술

1. 과학은 창의적일 수 있을까

나는 'natural sciences'라는 학과에 재학 중이고, 그중 물리를 전공하고 있다. 그러나 엄마아빠에게 미안하게도 이 전공이란 나에게 있어 아주 값비싼 취미다. 왜냐? 나는 전공을 살려 취업할 생각이 전혀 없고, 그렇다고 학계에 남을 생각도 없기 때문이다.


대학에 들어간 것은 학계에 남겠다는 각오를 다지는 동기들처럼 흥미를 위한 것이었다. 하지만 나에게 물리의 기본 베이스인 대수학과 미적분학은 그다지 재미가 없고, 연구원은 가장 피하고 싶은 직종 중 하나다. 그렇다고 해서 취업이 잘되는 우리 학과의 특성을 살려 investment banking처럼 돈 많이 버는 직종으로도 많이 채용되고 싶은 것도 글쎄... 별로 내키지 않는다.


그럼 대체 나는 과학을 왜 좋아하는 걸까?


홍대병이라고 하던가? 나도 환자가 아니라고 말하기는 어렵겠다. 내가 과학을 좋아하는 이유는 같은 과 동기들과는 조금 달랐다. 내가 과학을 좋아하는 이유... 그 이유는, 과학이 예술과 닮았기 때문이다.




creativity

과학과 예술은 아주 다른 것으로 취급된다. 과학을 하는 사람을 생각하면 감성이라고는 없고 상상력은 결여된, 예술과는 상종하지 않을 법한 이미지를 떠올리고, 예술학도의 경우에는 과학에는 일가견이 없으며 현실과는 동떨어진 사람을 상상한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creativity'와 '창의성'이라는 단어는 과학과 예술 모두에 사용된다.


과학을 좋아하는 이유에 대해 고민하다 하루는 이런 생각을 하게 됐다. 'creativity'는  'create'를 포함하고 있다. 예술이 creative하다 이야기하는 것은 당연하게 가능하다. 예술이란 무언가를 창조(create)하는 행위니까. 그러나 과학의 경우에는? 과학을 creative하다 부를 수 있는가?


과학=도구

생각을 이어나가자 내 안에 있는 '과학'이라는 명칭이 모호하다는 사실을 깨달을 수 있었다. 표준국어대사전에 의하면 과학이란 '보편적인 진리나 법칙의 발견을 목적으로 한 체계적인 지식'이다. 이게 무슨 소리인가? 간단히 말해 과학이란 세상을 해석하는 도구라는 뜻이다.


"과학은 세상을 해석하는 도구다." 과학계에 몸담은 사람이라면 한 번쯤은 들어보았을 말이다. 나 또한 몇  번이고 들어보았다. 

그럼에도 나는 과학과 그것이 해석하려는 본질을 혼동했다. 내가 '과학'이라 부르며 좋아했던 것은 세상을 해석하는 도구만을 일컫는 게 아니었다. 내가 사랑한 것은 도구도 맞았지만 세상의 존재와 설명을 듣는 일련의 과정 전부였다. 나는 과학이 해석하는, 이 '세상'까지 포함해 '과학'이란 단어를 정의하고 있었고, 내 정의 속에서의 과학을 사랑했다.


그러나 과학이란 현실, 혹은 세상을 해석하기 위한 도구일 뿐 엄밀히 말하자면 현실을 포함하는 것 같지는 않다. 아래의 그림처럼 말이다.


'S'라 칭한 것이 내가 생각했던 과학(Science)이다. 그러나 진짜 과학이란 내가 생각했던 과학에서 'Reality'를 제외한 보라색 영역뿐인 듯싶다.

앞으로 정확한 표현을 위해 내가 착각했던 과학을 'S'라고 부르고, 진짜 '과학'은 현실(Reality)을 둘러싼 보라색 영역에만 국한시키겠다.


그런데 옆에 '예술'은 왜 스리슬쩍 끼어있는가? 글의 제목처럼 이제부터 이 S와 예술을 비교해 볼 것이기 때문이다.


먼저 예술은 'creative'라는 호칭을 달 수 있다고 이야기했다. 예술 자체가 무언가를 창조해 내는 행위이니 정의상 그래야 한다.  그러나 과학은? 아니, S는?


과학∩예술

먼저 도구로써의 과학은 creative한 것이 맞다. 그 도구는 인간의 아이디어이며, 인간이 'create'하는 것이기 때문이다.


아주 간단한 예시로 행렬을 사용하면 연립방정식을 아주 간단하게 풀어낼 수 있다. 2번에 나눠 x와 y를 구해야 했을 일을 '행렬'이라는 발명품 하나로 한 번에 풀 수 있게 되는 것이다. 새로운 아이디어로 생활을 편리하게 해주는, 이것이 획기적인 발명이 아니라면 나는 뭐가 획기적이라 불려야 하는지 잘 모르겠다.


우리가 잘 알고 있는 아인슈타인의 특수상대성이론도 마찬가지다. 이론은 시간이 절대적이지 않고 상대적이라 말하며 모두가 의심 없이 믿고 있던 사실을 깨부숴버린다. 이론이, 이론의 아이디어가 새롭지 않다고 감히 말할 있는가?


한 가지를 해석하기 위해 다양한 해석방법을 '발명'한다. 이 발명품들을 '창조'해내는 행위인 과학이란, 창의적일 수밖에 없다.


이 '창의성'이야말로 내가 과학을 하게 된 첫 번째 이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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