호접몽의 나비와 나를 같다고 인식하는 이유
1. 이렇게 부처님의 무아에 대한 설명을 듣고 있노라면 데카르트가 말하는 ‘생각하는 존재’로서의 자아(코키토)가 떠오릅니다.
2. 데카르트의 설명에 따르면 우리의 감각기관을 통해 흘러들어온 어떤 자극도 믿을 수 없다고 보아야 한다고 합니다. 우리가 꿈에서 현실과 구분하지 못하는 경험을 하는 한 현실에서 경험하는 모든 것이 꿈이 아니라고 단정할 수 없기 때문이지요.
3. 이 설명은 장자의 호접지몽을 연상하게 합니다. ‘내가 나비를 꿈꾼 것인가 나비가 나를 꿈꾸고 있는 것인가’하는 장자의 탄식을 들었다면 데카르트는 아마도 무릎을 쳤을지도 모릅니다. 바로 이런 경험이 우리의 감각기관을 통해 들어온 모든 것을 의심해야 한다는 태도의 타당성을 뒷받침하기 때문입니다.
4. 이는 마치 현대에 이르러 가상현실 기술이 고도화되어 그 안에서 아바타 캐릭터를 플레이하는 사람이 느끼게 될 경험을 미리 체험한 것 같은 선지적 예견입니다. 지금보다 기술이 더 발전하면 온몸에 진동센서를 부착한 슈트를 입고 후각과 미각에 자극을 주는 분자를 방출하는 고글을 착용한 채 게임을 즐기게 될지도 모릅니다. 혹은 그런 단계를 지나 아예 뇌에 직접 혹은 간접적으로 자극을 가하는 인터페이스1)를 통해 가상현실 속을 누비게 될지도 모르지요.
5. 이 가상현실 게임이 현실과 닮으면 닮을수록 플레이어는 현실과 게임을 구분하기 어려워질 것입니다. 두 세계를 전이한 직후에 플레이어가 느끼는 혼란이 장자가 말하는 호접지몽, 바로 그것일 것입니다. 어느 것이 현실인지 확언할 수 없는 교란감이 데카르트가 모든 것을 의심해야 한다는 주장의 강력한 근거가 됩니다.
6. 이렇게 데카르트는 ‘의심을 수단으로 삼아’(방법적 회의) 진리를 향해 한 걸음 다가가려고 합니다. 그러나 여기에서 멈추지 않고 더 나아가 데카르트는 이런 외부세계에서 오는 자극을 넘어 자신의 내부에서 일어나는 반응(생각)조차 의심해야 한다고 합니다. 만약 어떤 악마2)가 있어 처음부터 1+1의 답이 3이라는 세계를 보여준다면 우리는 머릿속에서 1+1=3이라는 것이 진리라고 생각하며 살아갈 것이기 때문입니다.
7. 그렇다면 도대체 믿을 것이 무엇인가 고민하던 데카르트도 의심하지 못한 것은 자신의 내부에 반응(생각)은 있다는 점입니다. 그것이 1+1=3이라는 잘못된 것이라 할지라도 잘못된 ‘생각’ 자체는 존재한다는 것입니다. 따라서 그 생각이 있는 이상, 생각을 하는 주체가 있어야 한다는 결론에 도달합니다. 마치 외부에서 뿌려진 빛(자극)이 어딘가에서 반사(생각)된다면 반사하는 주체인 거울이 있다고 보아야 하는 것처럼 말이죠.
8. 이 반사의 주체를 데카르트는 ‘생각하는 존재’인 자아라고 여기고 비로소 ‘나는 생각한다, 따라서 나는 존재한다’는 선언을 하기에 이릅니다. 이 선언은 진리의 발견을 위해 단단한 토대가 필요했던 데카르트에게 강력한 제1 원리로 여겨졌습니다. 물론 붓다가 이 말을 들으셨다면 미소를 띠고 그 거울은 계속 존재하는 것이 아니라 빛이 들어올 때만 잠깐 존재했다가 반사시키고는 사라지는 것이라 하셨을 테지요.
9. 그러나 거울이 찰나에만 존재했다 사라지는 것이라면 그 방향은 왜 동일한가 하는 의문이 남습니다. 즉 왜 같은 방향에서 들어온 빛이 ‘계속’ 같은 곳으로 반사되는가 하는 점을 설명하기 어렵습니다. 오히려 같은 자극에 대한 같은 반응이라는 일관성이야 말로 거울이 ‘지속적으로’ 존재한다는 점을 강력하게 지지한다 하겠습니다.
10. 따라서 데카르트가 말하는 생각하는 존재는 이 ‘일관성’을 전제로 합니다. 어떤 것에 대한 생각을 유지하기 위해서는 1초 전의 생각과 1초 뒤의 생각이 분리되어 있다 하더라도, 동일한 대상(자극)에 대한 동일한 관념(반응)이 지속되어야 하기 때문입니다. 그러므로 데카르트가 말하는 생각이란 생각의 주체(자아)와 생각의 대상(타아)의 일관성을 모두 내포하게 되는 것입니다.3)
11. 그리하여 데카르트가 만약 붓다의 무아에 대한 설명을 들었다면 그 일관성은 어디에서 기인하는 것인지 깊은 회의를 했을지도 모릅니다. 그리고는 ‘존재란 지속적으로 거기 있어야 하는 것이다’하는 생각에 도달하여 ‘있다는 일관성을 전제한다’라는 말을 제1원리로 삼았을지도 모른다는 불경한 상상에 이르게 됩니다.
12. 생각이 이루어지는 곳이며 따라서 생각이 필연적으로 영향을 받게 될, 생각이 담기는 그릇인 자아의 본질적 속성 중 하나가 일관성은 아닌가 하는 상상을 하다 보면 어느새 눈을 감고 작은 사고실험을 떠올리게 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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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일론 머스크의 뉴럴링크가 대표적인 개발사 중에 하나입니다.
2) 이 악마를 일컬어 데카르트의 악마라고 합니다. ‘통 속의 뇌’로 실험을 하는 매드 사이언티스트라고 할 수도 있겠지요.
3) 여기서 생각의 '대상'에 대한 '일관성'이란 피아제(Piaget)가 제시한 인지발달단계 중 첫 번째 단계인 감각운동기에서 획득한다는 '대상영속성'과 같은 것이라 할 수 있겠습니다. 피아제가 생각의 '주체'에 대해 따로 언급하지는 않았으나 만약 이를 다루었다면 주체영속성이라 부르지 않았을까 생각합니다.
데카르트는 진리를 탐구하는 수단인 이성(양식이라 부르는)이 인간이라면 누구나(보편적으로) 가지고 있는 것이며 이 점이 동물 혹은 기계와 다른 점이라고 합니다.(방법서설) 특히 기계는 목적에 맞는 특정한 작동방식을 가지고 있으나 그것이 인간처럼 범용적이지 못하여 이성을 가지고 있다고 할 수 없다 했습니다. 그런데 인공지능 기술이 발전하여 LLM이 나날이 범용성을 확장해 나가는 지금을 본다면 데카르트도 인공지능이 이성을 가질 수 있음을 긍정했을지 궁금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