다르다는 것을 알아채는 과정에 대하여
1. 이제 인식의 첫걸음이 구분이며 구분에 의해 나뉜 원래의 것과 다른 것을 나란히 두고 견주어야 한다는 말을 받아들이게 되었을 것입니다. 구분으로 원래의 것과 다른 것이 각각 경계선을 가지게 되었다고 표현할 수도 있습니다. (인식을 하기 위해서는) 하나만 있는 것은 아무것도 없는 것과 같다는 말이 바로 이것을 나타낸다는 것도 수긍되었을 것입니다.
2. 따라서 생각을 하기 위해서는 반드시 두 개의 개념이 필요합니다. 하나의 개념만 가지고는 생각이 이루어지지 않습니다. 인식의 캔버스를 그저 멍하니 바라보고 있는 것에 불과하니까요. 따라서 생각하고자 하는 원래 개념1)이 있다면 나란히 두고 견줄 다른 개념을 최대한 빨리 가져와야 합니다.2) 이 다른 개념을 대비 개념이라 부릅니다.
3. 대비 개념을 불러온 이후에 어떤 일이 일어나는지 확인하기 위해서 구체적인 상황을 가져와보겠습니다. 여기에 일란성 쌍둥이가 있다고 해봅시다. 살아가며 일란성 쌍둥이를 한 번씩은 만나게 되니까요. 신학기에 반배정을 받고 보니 같은 반에 일란성 쌍둥이 중에 한 명이 있는 경우라고 합시다. 보통의 경우에는 처음에 쌍둥이인지 몰랐다가 나머지 한 명이 쉬는 시간에 놀러 와서야 쌍둥이라는 걸 알게 되죠.
4. 그런데 처음 쌍둥이를 동시에 보는 순간에는 누가 언니고 누가 동생인지 구별이 되지 않습니다. 아주 예민한 사람이라면 며칠 정도 지내는 동안 같이 있는 경우에만 누가 언니고 누가 동생인지 알아볼 수 있을 겁니다. 하지만 대부분의 사람은 며칠 정도로는 거의 구별을 하지 못할 테죠. 일란성 쌍둥이를 본 적 없는 분들을 위해 영상을 하나 첨부합니다. (대부분의 경우는 영상의 아이와 같은 반응을 보일 겁니다)
5. 이제 그 쌍둥이와 친해져서 그들의 집에 놀러 가게 되었다고 합시다. 같이 현관문을 들어서는 순간 쌍둥이의 엄마는 놀랍게도 누가 누구인지 단번에 알아봅니다. 심지어 같은 머리에 같은 복장을 하고 있더라도 말이죠. 딱히 의식을 집중해서 둘을 식별하는 것도 아닙니다. 어떻게 알아보는지 신기해서 엄마에게 물어보면 그저 ‘그냥 알겠다’고 답할 뿐이죠.
6. 당시에는 그런 설명이 전혀 이해되지 않지만 일 년 정도 같이 생활하고 나면 자연스럽게 둘을 구별할 수 있게 됩니다. 쌍둥이에게 익숙해져서 둘을 구별할 수 있게 된 건 둘 사이의 다른 점을 식별할 수 있게 되었다는 것입니다. 주의를 집중하지 않아도 쌍둥이의 엄마처럼 두 사람의 차이점이 눈에 들어온다는 것이죠.
7. 따라서 극히 유사하지만 서로 다른 두 개념을 식별하기 위해서 차이점을 발견하는 것이 중요하다고 생각할 수 있습니다. 그리고는 차이점을 발견하는데 온 신경을 집중시키는 시도를 하려 합니다. 그러나 우리는 쌍둥이의 엄마가 바로 될 수는 없습니다. 익숙해지는 과정이 필요하죠. 쌍둥이의 엄마도 마찬가지입니다. 친구들보다 더 오랜 시간에 걸쳐 익숙해진 것을 잊어서는 안 됩니다.
8. 익숙해지는 과정이란 두 개념에 모두 존재하는 같은 점을 찾아내는 것입니다. 양쪽에 모두 존재하기 때문에 그 요소로는 둘을 구별할 수 없는 공통점을 찾아야 합니다. 공통점으로는 두 개념을 식별할 수 없는데 그것을 발견하는 것이 무슨 의미가 있나 하는 의문이 들지도 모릅니다. 그러나 공통점을 찾는 이유는 차이점을 발견하기 위해서입니다.
9. 쌍둥이를 처음 보았을 때를 떠올려보면 두 사람을 구별하기 위해서는 어떤 부분에 집중해야 하는지 알 수 없습니다. 반복적으로 두 사람을 보면서 이 부분을 보아서는 둘을 구분할 수 없다는 것을 알아야 그 이외의 부분에 의식을 집중할 수 있는 것입니다. 같지 않은 부분을 알아내기 위해서는 같은 부분에 먼저 집중해야 합니다.
10. 파악하고자 하는 원래의 개념을 이해하기 위해 대비 개념을 가져와야 한다. 그리고 두 개념 사이의 차이점을 부각해 개념을 선명하게 밝혀야 한다. 그러기 위해서 먼저 양 개념의 공통점을 발견해야 한다. 이것이 다르다는 것을 알아채는 과정입니다. 이제 쌍둥이의 엄마와 친구들이 두 사람을 알아채는 과정을 심리학과 인지과학의 관점에서 살펴봅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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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온톨로지(Ontology)에서는 개념을 인스턴스(Instance) 또는 개체(Individual)라 부릅니다. 하지만 엄밀히 말하면 엔티티(Entity)에 가까울 것입니다.
2) 학습방법론으로 이 글을 보고 있다면 이 단계를 습관화시키는 것이 매우 중요합니다. 정합적이고도 반복적인 훈련으로 반사적인 반응이 일어나게 만드는 것이 필요합니다. 후술 되겠지만 사고의 속도와 효율성에 큰 영향을 미치게 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