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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푸른알약 Oct 05. 2024

익숙한 것과 아는 것은 다르다

생각에 대한 생각

1. 우리는 익숙한 걸 잘 안다고 오해하는 경향이 있습니다. 자주 들어서 익숙할수록 그 경향성이 강해지죠. 하지만 잘 아는 것과 익숙한 것은 분명히 다릅니다.


2. 개인적으로 무척이나 존경하는 물리학자 리처드 파인만은 이런 말을 했습니다. 어떤 것을 설명할 때 그걸 지칭하는 단어를 쓰지 말고 설명해 보라고요. 마치 그것에 대해 전혀 아무것도 모르는 사람에게 알려주는 상황에 놓여있는 것처럼 말이죠. 만약 이 상태에서 원활하게 설명하지 못한다면 사실 그걸 잘 모르는 것이라고 할 수 있다는 것입니다.


3. 이제 ‘생각’에 대해서 이야기해 보죠. 늘 사용하는 말이지만 ‘생각을 한다’는 건 무엇을 한다는 건가요? 머릿속에 그림을 그리는 건가요? 그럼 ‘사랑’이나 ‘우정’ 같은 외형이 없는 추상적인 개념은 생각을 못하는 건가요? 혹시 머릿속에 글자를 떠올리는 건가요? 그럼 생각을 하고 있는 걸까요?


4. 돌이켜보면 참 이상합니다. 생각을 어떻게 하는 건지 구체적인 방법을 누군가에게 설명들은 사람은 없으니까요. 사람이면 자연스럽게 생각을 하니까 딱히 방법을 몰라도 된다고 할 수도 있을 것 같습니다. 그럼 자신이 하고 있는 것이 생각이라고 어떻게 확신할 수 있을까요? 우리는 생각이라는 말에 단순히 익숙해져 있는 건 아닐까요?


5. 어쩌면 대부분의 사람들이 생각하는 방법이 따로 있나.. 그냥 하는 거지 하고 여기서 멈췄을 수도 있을 것 같습니다. 그럼 공부는 어떤 가요? 공부를 할 때에는 암기하기보다 이해하라는 말을 자주 듣습니다. 이해를 하기 위해서는 생각해야 합니다. 그런데 생각을 어떻게 하는지 모르면서 이해를 할 수 있나요? 그런데도 우리는 공부 열심히 하라는 소리를 듣고 자랐고, 또 그 소리를 하면서 지냅니다.


6. 좀 희극적인 상황이라고 할 수 있겠습니다. 자전거 타는 법을 모르는 아이에게 자전거를 열심히 타라는 것과 같으니까요. 운동신경이 좋은 아이들은 몇 번 넘어지고 나면 저절로 자전거 타는 방법이 습득이 되지만 보통은 그렇게 자연스럽게 습득되지 않습니다. 보조바퀴를 달고, 부모님이 잡아주기도 하면서 차츰 자전거가 쓰러지지 않고 앞으로 나가도록 신체를 컨트롤하는 방법을 깨우칩니다.


7. 그런데 사고를 하는 방법은 다릅니다. 보조바퀴를 달아줄 수도 없고, 부모님이 잡아줄 수도 없죠. 분명히 하다 보면 잘하는 사람도 있습니다. 자전거 타기처럼 말이죠. 하지만 마찬가지로 자연스럽게 잘 습득하는 사람은 드물 것입니다. 훈련을 제대로 해보지도 않고서 재능이 없다고 공부를 접는 사람도 어쩌면 제법 있었을 겁니다. 하지만 그건 학생 탓도 아니고 선생님 탓도 아닙니다, 선생님도 그런 걸 배운 적이 없으니까요.


8. 우리는 모두 ‘생각’을 할 수 있습니다. 그런데 생각을 잘하려면 그것이 어떻게 작동하는가를 알아야 합니다. 이후의 글부터 생각의 방법에 대한 이야기가 이어질 텐데, 그 글을 보기 전에 생각이라는 단어를 정면으로 마주해 보는 기회를 가져보면 좋을 것 같습니다.


9. 우리가 일단 알고 나면 알기 전으로 돌아가는 것은 불가능합니다.1) 따라서 다른 사람에게 무작정 지식을 전달받는 것은 자신의 생각할 기회를 잃어버리는 것과 같습니다. 생각하는 방법에 대해 진지하게 고민해 볼수록 이어지는 글에 더 깊은 이해가 따라오지 않을까 ‘생각’합니다.


10. 또한 글을 읽는 동안 얼마나 빨리 읽는 가는 전혀 중요하지 않습니다. 속독은 이해했다는 오해를 만들기 쉽습니다. 설명 속에 등장하는 생각의 과정을 그저 수긍하고 지나쳐서는 안 됩니다. 책을 덮고 눈을 감은 뒤 자신의 사고에 집중하며 정말로 그렇게 되는 가를 하나하나 따져보기를 권합니다. 이것이 책을 깊게 읽는 것이며 느리지만 이해로 가는 가장 빠른 길입니다.


11. 같은 길을 가더라도 자동차를 타고 달리면 세세한 풍광을 놓치게 됩니다. 산책을 하듯 천천히 걷다가 처음 보는 풀꽃을 만나면 잠시 멈춰 서서 어떤 꽃인가 바라보고, 향기는 어떤가 맡아보고 때로는 멀리 산자락을 바라보며 숨겨진 마을에서 피어오르는 굴뚝 연기를 찾아보는 것이 경치를 진정으로 음미하는 것이니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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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조직행동론 교수인 칩 히스(Chip Heath)는 <스틱, Stick>에서 이를 지식의 저주라 부릅니다.

문단 번호는 설명이 미진해 이해가 어려울 경우에 질문을 하기 편하도록 붙여둔 것입니다. 앞으로의 글에도 문단번호가 있을테니 질문이 필요한 경우에는 문단번호로 설명이 필요한 내용을 지시할 수 있을 것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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