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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푸른 Jun 19. 2024

100번의 필름과 1000번의 앨범

타이탄의 도구들 후기 3




무언가 하나의 확고한 취향을 가진 사람은 매력적이다. 그중에서도 좋아하는 것이 확실하고, 그것에 대한 애정을 가진 사람은 눈에 띄기 마련이다. 



책에서 말하길, 타이탄들은 같은 영화와 음악을 반복한다고 했다. 100번의 필름을 돌린 영화, 1000번의 재생 버튼을 누른 음악. 이는 혼자라는 고립감에서 그들을 완전히 해방시켜준다. 이 말이 와닿았던 이유는 어쩌면 나도 그런 것이 존재하지 않을까 하는 마음에서였다. 



타이탄들의 가장 큰 특징은 같은 영화와 음악을 계속 반복해서 듣거나, 틀어놓는 것이다. 100번도 넘게 본 영화가 있고, 1000번도 넘게 들은 음악도 있다. 그들이 선택한 영화와 음악은 독창적인 작업, 즉 혼자만이 할 수 있는 작업에서 오는 고립감을 훌륭하게 상쇄시켜준다. 이는 단순한 습관인 것처럼 보이지만, 당신도 꼭 가지면 좋을 습관이다. 한 편의 영화와 한 곡의 음악이 100명의 친구보다 더 좋은 파트너가 되어줄 수 있다. 오직 당신에게만 편안함, 여유로움, 행복, 영감을 제공하는 영화와 음악을 찾아내보라. 분명 그것들도 당신을 오랫동안 기다리고 있을 것이다. 타이탄의 도구들 중 p.260-261


물론 존재한다. 나에게도 100번의 닳은 필름과 1000번의 익숙한 멜로디가. 



10년째 보고 있는 영화. 밤샘 작업을 할 때 항상 트는 노래. 이 두 가지는 책에서처럼 외로움을 완전히 지워준다. 혼자 집에 갈 때, 밤 늦게 작업을 해야 할 때, 아무도 없는 공간에서 책을 읽을 때, 막막해서 도무지  무엇을 해야 할지 모를 때. 


영화 몽상가들과 사카모토 류이치의 연주.



엊그저께 또 몽상가들을 보았다. 열여덟이라는 나이에 만난 그 영화는 나에게 충격을 주었다. 물론 어린 마음에 영화 자체에서 논란이 많이 되었던 장면들이 충격이었지만, 시간이 점차 지나면서 이 영화의 매력에 빠진 게 분명하다. 



외로운 시기였던 20살에 만난 몽상가들, 과제로 24시간을 보내던 24살에 만난 몽상가들, 그리고 밤새 고민을 하는 27살에 만난 몽상가들.  수 없이, 여러 번, 자주 만난 같은 영화. 매번 다르게 다가오면서, 매번 위로를 준다. 



사람들은 그런 영화를 왜 좋아하냐. 그런 영화를 보고 무슨 위로를 받냐라고 묻지만, 정확한 이유는 나도 모르겠다. 그저 그 영화가 편안하고, 위로가 된다는 마음을 어렴풋이 느낄뿐이다. 왜 그런 거 하나쯤은 있지 않은가. 최후에 수단에만 사용하고 싶은 숨구멍 같은 거 말이다.



사카모토 류이치의 노래를 들은 건 그리 오래되지 않았다. 몇 년 되지 않았지만, 누구보다 많이 들었을 것이다. 밤을 새워 과제를 할 때면 늘 들었고, 혼자 동떨어진 세계에서 밤이라는 시간을 만났을 때, 그의 음악이 항상 함께 했다. 이전에는 음악에서 위로를 받는다는 것이 무슨 뜻인지 몰랐다. 하지만, 



창문 밖은 캄캄한데, 덩그러니 책상 앞에 앉아 남은 모든 밤을 견뎌야 하는 경험을 해본 적이 있는가. 그런 밤이면 항상 쓸데없는 불안과 걱정이 찾아온다. 해야 할 일이나, 처한 상황이 불안정하다면 더욱 그렇다. 그럴 때에 가장 큰 친구가 되어 주는 것이 음악일 수 있다. 나 역시 그런 숱한 밤들 속에서 사카모토 류이치의 노래를 들었다.  캄캄한 밤이 외롭다면 하나의 노래를 들어라. 그렇게 하면, 어느 순간 흘러나오는 노랫소리에 든든한 기분이 들지도 모른다.



한편의 영화와 한 곡의 음악. 이들이 100명의 친구보다 좋은 파트너가 되어준다는 말은 참 로맨틱하다. 이것들이 오롯하게 나에게만 작용하는 편안함이 있다. 누구도 이해할 수 없지만, 나만이 얻는 마음들이 있다. 



분명 당신에게도 그런 영화와 음악이 존재한다. 그것들도 당신을 오랫동안 기다리고 있기에, 우리는 어디든 돌아갈 곳이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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