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싱어게인>의 정통 헤비메탈 가수는 '정홍일'이다
29호 가수님이 처음 자신을 소개했던 한 줄 요약이다.
'아이 엠 어 보이' 같은 참 건조한 평서문이다.
그런데 지금 다시 보니 군더더기가 없다. 명료하다.
자신의 정체성을 말한다. 무덤덤하게, 하지만 자부심을 가지고.
'헤비메탈', 8~90년대에 청(소)년으로 살았던 이들에게는 나름 익숙한 단어다.
하지만, 심사위원들도 안타깝게 말하는 것처럼 '지금은 없지..' 싶은 단어다.
중고등학교 때 헤비메탈을 했더랬다. 친구랑 낙원상가에 가서 당시 6만 원짜리 전자기타를 사고,
밴드를 꾸리고, 지금은 기타리스트가 된 그 친구가 기타를 하고, 나는 베이스 기타를 하나 더 사고..ㅋ
헤비메탈 영상과 음악을 틀어주던 대학로 뒷골목의 MTV, 연습하려 모였던 한양대 근처 합주실, 고등학교 축제들... 메탈리카, 건스 앤 로지스, AC/DC, 본 조비, 콰이어트 라이엇...
음악이 좋았고, 연주하는 게 그냥 좋았더랬다. 젊음의 열정과 맞닿아서 더 그랬는지 모른다. 그저 순수하게 좋아하는 마음, 그때는 그랬다. 물론 이후 오랜 시간이 지난 지금까지도 음악을 빼놓고 삶을 얘기할 수는 없다. 하지만 그때처럼 모든 걸 걸지는 않는다. 아니, 너무 멀어진 듯하다.
어젯밤 침대에 누웠는데 문득 음악에 대한 그리움을 느낀다. 오랫동안 해왔던 노래도(요샌 노래방도 못 가니), 기타도(1년 동안 몇 번이나 쳤는지..미안..), 드문드문하던 작곡도... 다 소원해졌음을 떠올리며 흠칫 놀란다.
그래서,
29호님에게 이래저래 고맙다. 나의 그때로 돌아가게 해 줘서 고맙다.
2021년 지금, 헤비메탈 가수로 존재하고 있음에, 그렇게 삶으로 노래하고 있음에 감히 고맙다고 말하고 싶다.
음악을 사랑해서 그랬다고는 하나, 그 한 길을 걸어오기가 얼마나 험난했을까, 가늠조차 할 수 없는 걸 말할 필요는 없을 듯하다. 그저 응원하고 싶음 마음뿐이다. 29호님이 점점 멋있게 보인다는 것뿐이다~!
'제발', '못다 핀 꽃 한 송이', 29호님은 노래 한곡 한곡을 통해 자신의 삶을 노래했다.
가사 한 글자 한 글자를 멜로디에 꾹꾹 눌러 노래한다. 삶의 이야기들을 음악에 담는다. 그리고 클라이맥스에 모든 걸 뿜어낸다. 그냥 샤우팅이 아닌 내공과 연륜이 담긴 외침이다. 시청자들과 심사위원들은 그걸 온몸으로 느낀다. 오죽하면 김종진 씨가 속이 다 시원하다고 했을까.
너무 시원했다! 왜? 날 대신해, 세상을 향해, 삶을 향해 외쳐주었으니까! 난 할 수 없는 걸 해주었으니까~!!
그럼에도, 29호님 또한 철인 로봇은 아니었다.
그도 우리와 같은 인간이었다. 오랜 세월 음악만 붙잡고 걸었던 그 길, 그리고 그 곁을 무한한 신뢰로 지키며 응원했던 동행자, 얼마나 복잡한 심정과 얼마나 많은 의미가 담겨 있었을까, 잠시 비쳤던 '사자의 눈물'에는...
경제적으로 여유가 있어서 록커의 길을 간 것도, 멘탈이 강철이라서 쉽게 버틸 수 있었던 것도 아닐 것이다.
상상 이상의 노력과 간절함이 지금 여기에 닿게 해 주었을 것이다. 그래서 놀랍다. 그는 흑백텔레비전 속 유물이 아니다. 단지 레트로 감성을 가진 아재가 아니다. 그는 우리와 함께 현재를 살아가는 록커이다!
그 자체가 우리를 위로한다. 그 자체가 감동이다!
Top 10으로 가는 마지막 관문, 마지막 노래의 마지막 부분! 얼마나 몰입했는지 29호님은 의도하지 않았던 실수를 한다. 그런데 아무도 실수라고 생각하지 않는다. 오히려 의도된 퍼포먼스라고 느낀다! 마이크 없이 공간을 울리는 목소리, 못다 핀 꽃 한 송이를 기필코 피워내고야 말겠다는 그의 부르짖음에 소름이 돋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