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과 값 벌어야 해서 잔업합니다

by 문장 수집가

조금 전 남편에게서 사과 값을 벌어야 하니 잔업을 한다는 문자가 왔다.


나는 사과 안 먹을 테니 잔업 안 해도 된다고 문자를 보냈지만, 그래도 잔업은 해야 한다고 한다.


누가 보면 부인이 사과만 먹는 줄 알 거다.


사실을 고백하자면 요즘 나는 다양한 방면으로 식탐이 생겨서 이것저것 열심히 사서 먹는 중이다.


이것저것이 뭐냐면


LA갈비

소고기

사과

체리

초밥 등등이다.


여기까지만 보면 남편이 벌어다 준 돈으로 과소비만 하는 사람으로 보일 것 같다.


아니 벌어다 준 돈 쓰는 거 맞다.


내가 이렇게 식탐을 줄 세우기 시작한 것은 아마도 2025년부터였을 것이다.


그전에는 식구들이 먹을 때 조금만 먹거나 아예 먹지 않았다.

그리고 비싼 음식은 1년에 한두 번이거나 아예 사 먹지 못했다.


이유가 뭘까?

그것은 경제적인 상황이 달라진 이유에서 일 듯 싶다.


그전에는 아이들 키우고 학비에, 대출 상환에, 그리고 먹고 사니즘에 바빴고,

지금은 그 산과 산을 모두 넘어

모두 경제생활을 하니까

숨통이 아주 크게 트인 이유가 그것이다.


그러다 보니까 나의 마음에 여유가 찾아들었고

그동안 마음속에 줄만 한없이 세워 놓았던

먹고 싶은 것, 갖고 싶은 것, 가고 싶은 곳 등이 마구 튀어나오기 시작했다.


그래서 틈 나는 대로


고기 먹고 싶어

초밥 먹고 싶어

사과 먹고 싶어

어디 가고 싶어

나 그거 사고 싶어라고 말을 하기 시작했고


이제 조금씩 그것이 실현되어


아 맛있다.

아 너무 좋다.

아 너무 즐겁다.

아 너무 행복하다를 계속 말하면서 살게 되었다.


이런 나를 보면서

지난주에

남편과, 딸, 아들이 진지한 표정을 질문을 해왔다.


아니 그전에는 사래도 안 사고, 먹으래도 안 먹고

굶기를 밥먹듯이 하더니

왜 이렇게 식탐과 욕심이 늘었냐고 말이다.


결혼하고 30여 년이 지난 지금

나는 그 질문을 오랫동안 기다려 온 지도 모르겠다.


나도 비싸고 맛있는 음식 먹을 줄 알고

좋은 곳도 갈 줄 알고

좋은 것도 살 줄 안다.


하지만 그동안은 나보다도 가족이 우선이었고

경제적인 이유가 더 컸기에

나의 의견과 나의 욕구를 먼저 내세울 수 없었다고 대답을 해줬다.


아 그런 거야. 그전에도 말해도 됐는데 매번 됐다고 해서 그런 줄 알았다며

남편은 미안해했지만

뭐든 마음이 편한 상태여야 제대로 누릴 수 있는 거라 생각한다.


지금의 우리 집 경제 생태계는 금수저도 아니고 은수저도 아니다.


남편도 나도 아이들도 다 경제생활을 해서

그냥 남에게 식사대접 할 수 있고, 아쉬운 소리 안 할 정도이다.


내가 과소비라고 표현을 했지만

소고기집은 세일을 하는 정육식당으로 가고

LA갈비는 단골 할인을 해주는 곳에서 사고

사과는 비싸도 맛난 것을 먹어야 한다는 남편의 기준에 따라 그냥 사 먹는다.

(그런지 얼마 되지 않았다.)


그리고 얼마 전에는 오래전부터 갖고 싶었던 에르메스 향수를 샀는데

사용은 안 하고 책장에 그냥 전시 중이다.(사실 나는 향수를 뿌리지 않는다.)


향수를 산 이유는 백화점에서 나눠준 시향 종이의 향이 너무 좋아서

그때부터 언젠가 꼭 사고 말리라 하고 다짐을 했는데

작년 크리스마스 때 내가 나에게 선물을 해줬다.


그런데 참으로 신기한 게

그렇게 갖고 싶었는데

막상 사고 나니까

그 욕망과 욕구가 싹 사라졌다는 것이다.


다른 것도 마찬가지이다.

이젠 충분하다 싶었는지 평상시 나의 모습으로 돌아오는 중이다.


지금은 아무 때나

집에서 내려먹을 수 있는 커피 한잔과

비스킷 한 조각 만으로도 충만한 마음이 든다.


이게 다 가족들 덕분이다.


생활에 지쳐 감정의 파도에 휩쓸려 불안정했던 과거의 나의 모습도

내가 먼저야, 내가 먹을 거야, 다 내 거야 하고, 이것저것 투정을 부리는 지금의 나의 모습도

있는 그대로 지지를 해줬던 나의 소중한 가족 덕분이다.


그리고 나의 마음에 행복을 충전해주는 아이들도 고맙지만

누구보다도 있는 그대로의 나를 지켜봐 준 남편에게 고맙다는 말을 하고 싶다.


원하는 만큼, 질릴 만큼 사과를 사주겠다고 말하는

남편이 있어

오늘도 나는 감사한 마음으로 하루를 보내고 있다.


여보 사과 값 많이 벌어와.



매거진의 이전글행복보다는 만족에 더 가까운 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