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미 엎질러진 물, 다시 담을 수 있다

후회와 죄책감을 평화와 풍요로움으로

by 오래피스 orapeace

"왜 그때 그렇게 말했을까."


"그때 그 선택만 하지 않았더라도..."


우리는 누구나 마음속에 낡고 고장 난 영사기 하나를 품고 산다. 그 영사기는 야속하게도 내 인생에서 가장 지우고 싶은 장면만을 골라 '무한히 반복 재생'한다. 화면 속의 나는 어리석고, 초라하며, 실수투성이다. 우리는 그 영상을 보며 스스로에게 '죄책감'과 '자기혐오'라는 자막을 입힌다.


'아 바보같아. 왜 그랬어? 도대체. 이 멍청이!'


인간의 뇌는 긍정적인 경험보다 부정적인 경험을 5배나 더 강하게 기억하도록 설계되어있다. 생존을 위해 위험을 각인해야 했던 원시의 본능이라지만, 현재 맹수보다 '타인의 평가'와 '실패의 두려움'이 더 무서운 현대인에게 이 본능은 가혹한 형벌과도 같다. 10번의 칭찬보다 1번의 비난이 뼈에 사무치고, 9번의 성공보다 1번의 미끄러짐이 인생 전체를 뒤흔든다.

그렇게 우리는 과거라는 '감옥'에 갇혀, '미래'라는 문을 스스로 걸어 잠근다.


하지만 질문을 바꿔보자. 우리가 괴로운 건 그 '사건' 때문일까, 아니면 그 사건에 붙인 나의 '해석' 때문일까?

많은 사람들이 이 부분을 헷갈려 한다.


"그 사건은 일어나지 않았어야 했어요."


하지만 삶이라는 시나리오에서 일어나지 않아야 할 일은 존재하지 않는다. 타인이 실패하는 건 일어나도 되는 일이고, 내가 실패하는 건 일어나면 안되는 일이란 말인가? 이 세상에 그저 스쳐 지나가는 우연은 없다. 모든 일은 저마다의 필연을 품고 제자리에 도착할 뿐이다.


이미 엎질러진 물은 주워 담을 수 없고, 떠난 버스는 돌아오지 않으며, 합격자 명단에 내 이름이 빠졌다는 사실은 변하지 않는다. 그러나 그 장면을 어떻게 편집하고 바라볼지는 온전히 나의 선택이다.


30대 초반, 몸속에서 종양을 발견했을 때 그랬다. 그것은 명백한 '불행'이었고, 내게 너무나도 절망적인 순간이었다. 누군가는 그것을 인생의 낭떠러지라 불렀고, 나 또한 한동안은 끝없이 추락하는 내 인생의 바닥을, 그 서늘한 추락을 하염없이 응시해야만 했다. 바닥이 어디인지 가늠조차 되지 않는 어둠 속에서 나는 숨을 죽이고 내 인생의 침몰을 지켜보았다.


하지만 지금의 나는 그 사건의 장르를 바꾸기로 했다. 그것은 비극의 결말이 아니라, 내 삶의 진짜 우선순위를 깨닫게 해 준 '강렬한 터닝포인트'였다고.


이 해석 하나가 모든 것을 바꾸어 놓았다. 나와 내 가족은 지금 그 어느 때보다 건강하다. 나는 오랫동안 나를 괴롭히던 헛된 허상 속에서 마침내 빠져나왔고, 매일 마주하는 일상의 소중함과 감사함을 느끼며 산다. 그렇게 나는 진짜 행복을 마주하게 되었다. 그토록 원하던 직장에서 인정받으며 일할 때조차 단 한 번도 느껴보지 못한, 그런 진짜 행복을 말이다.


그렇다. 당신을 짓누르는 후회를 인생에서 걷어내고 싶다면, '해석의 기술'을 발휘해야 한다. 내가 직접 했던 방법들을 소개한다.


첫째, 차가운 사실과 뜨거운 감정을 분리하라.


"면접에서 합격하지 못했다"는 사실이지만,

"나는 무능하다"는 당신이 쓴 가짜 각본이다.


사실은 건조하게 두고, 감정의 꼬리표만 떼어내는 것. 거기서부터 우리의 평화는 시작된다.


둘째, 단 하나의 결말 대신 3 가지의 다른 꼬리표를 붙여라.


그 실패는 어쩌면 '타이밍의 문제'였을 수도, '더 잘 맞는 옷을 입기 위한 환복의 시간'이었을 수도, 혹은 '인생의 방향을 재설계하라는 신호'였을 수도 있다. 또다른 가능성을 여는 순간, 뇌는 하나의 해석의 집착을 멈추고 유연해진다. 그러면 당신의 몸은 저절로 움직일 것이고, 다시 시도해 볼 마음이 생길 것이다.


셋째, 5년 뒤의 나를 지금 이 자리로 초대해 보자. 미래의 시선에서 보면 오늘의 실수는 치명적인 오점이 아니라, 성장을 위한 에피소드에 불과하다. 먼 훗날의 당신은 분명 이렇게 말할 것이다.


"그때 그 일이 있어서 다행이야.

그 덕분에 내가 방향을 틀 수 있었고, 지금의 단단한 내가 되었으니까."


인생은 일어나는 사건의 연속이 아니다. 우리가 그 사건을 어떻게 바라보느냐 하는 '해석의 연속'이다.


물은 이미 엎질러졌다. 하지만 그 물을 다시 담는 건 오직 당신의 '해석'에 달려 있다.


그러니 부디, 당신의 지나간 페이지를 너무 가혹하게 읽지 말기를.

그 모든 아픔과 실수는 아직 결말이 나지 않은, 당신이라는 근사한 영화의 결말에 이르는 흥미로운 복선일 뿐이니까.


후회 한다는 건, 당신이 더 나은 사람이 되고 싶다는 '당신의 열망'이기도 하다.


당신의 열망대로 더 나은 사람이 되어라. 그러려면 스스로 자책은 멈춰야 한다.

엎질러진 물을 보고만 있지마라. 주워 담아라.


당신은 이미 충분하다. 이제는 당신의 삶을 평화와 풍요로움이라는 갑옷을 입고 인생의 항해를 함께 시작해보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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