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땡그리엄마 Jun 14. 2020

엄마 과학자 생존기 - 24

돌봄노동은 어쩌다 지옥이 되었는가?

24. 돌봄노동은 어쩌다 지옥이 되었는가?



감염병의 시대이다.

아직 치료제도 백신도 없어 그저 인간들이 

각자 존버를 통해 살아남을 수 밖에 없는 최악의 상황이다.

이전 포스팅에 언급한바와 같이,

실험 노동자 부모를 둔 덕으로 아이는 마스크가 풍부하다.

기침할때 옷소매를 사용하는 것은 일찍부터 우리가 주입시켜 두었다.

손도 잘 씻고 있다.

그래 그간 우리는 최선을 다하여 존버 중이다.


코로나 덕에 많은 변화가 있었다.

아 연구노동자인 우리 신랑은 물론 여전하다.

예나 지금이나 어차피 실험실에서 마스크를 쓰고 사는지라 딱히 별 체감이 없다고 한다.

아! 물론 실험하다 시약 냄새에 사래가 들려 콜록 거리면 대표님께서 겁나 빠르게 뛰어 나오셔서

소리소리를 지른다고 하기는 하더라.

유기화학자 농담을 해보면 실험실에서 흡입해서 죽으나 뭐가 터져서 죽으나 코로나에 걸리나

그게 그거라고 쿨럭.....

많은 변화를 체감하고 있는 것은 나와 땡그리다.


땡그리의 유치원은 장기간 휴원 끝에 결국 개학을 했다. 살벌한 설문조사도 있었다.

꼭 이 시국에 아이를 보내야겠느냐는 뉘앙스의 살벌한 설문조사에 나는 보낸다를 체크했다.

스트레스로 죽을 것 같은 사람이 아이가 아니라 나이기 때문이어서 내린 결정이었다.

물론 나름 이성적인 핑계도 있었다.


백신도 없고, 치료제도 없다면 존버가 답이다.
존버를 위해 짱박혀 있자니 우리는 사회화 동물이라 인간적 교류가 필요하다.
어차피 빨리 끝나지 않을 감염병 시대라면, 감염병 시대에 맞춰 바깥 생활을 영위할 수 있는 스킬이 필요하다.엄마는 어른 사람이, 아이에겐 아이 사람이 필요하다.


뭐 대략 이런 핑계가 있었다.

그래서 우리는 많은 고민(?) 끝에 아이를 그대로 유치원에 등원시키기로 결정했다.

아이가 유치원에 가기 시작하면서 나는 그나마 돌봄 노동의 지옥에서 벗어날 수 있었다.


처음 COVID-19 가 시작되던 무렵, 모든 공공기관은 문을 닫았다.

아이의 유치원 겨울방학 시즌이었다.

때마침 알맞게 회사가 폐업해준 덕분으로,

본격적인 사업준비 및 프리랜서의 열정을 뿜뿜 하이 전에

아이와 둘이 즐거운 시간을 보낼 수 있을 것이라 생각했었던 나였다.

그러나 상황은 돌변했다.

아이의 겨울방학은 계속되었다. 그래 개학이 미루어졌다.

그래도 처음엔 1,2주 미뤄지는 거라 대충 아이와 어디 놀러가면 되겠다 생각했다.

문제는 모든 공공기관이 폐쇄되었다는 점이다. 즉, 갈 곳이 없었다.


이는 어쩔 수 없는 일이었다.

바이러스의 전파력이 워낙 높았고, 이런 전파력은 결국 야외보단 실내에서,

그리고 사람의 밀집도가 높을수록 전파력은 올라갈 수 밖에 없다.

더구나 COVID-19의 가장 큰 특징은 건강한 사람보다 기저질환자에게 더 큰 데미지를 입힌다는 것이었다.

그래 설사 나는 안아프거나 혹은 덜 아프고 지나갈지라도,

내 주변의 기저질환자이거나 노인이면 사망할 수도 있다는 점이다.

즉, 바이러스 하나로 엄청난 민폐를 끼칠 수 있다는 사실이 스스로 집안 유폐를 결정하게 하였다.

나름 이런 분야에 아주 기본적인 지식을 가진 과학자 나부랭이가 바이러스 보균자가 되고 싶지 않았기 때문이다.

물론 우리 땡그리는 뉴스를 통해 COVID-19에 걸리면 아주 대형 큰일이 난다고 생각하여 엄마도 아빠도 집 밖으로 못 나가게 했다. (지금은 그때와 달리 나가도 죽지 않는다는 것을 깨달았다)

유치원 휴원기간 아이와 매일 모노폴리를 했다 ㅠㅠ


아이가 유치원에 가지 않고 생긴 변화는 돌봄노동의 강도가 엄청나게 올라간다는 것이었다.

나는 이번 바이러스 사태로 인해 경험한 돌봄노동을 지옥이라 칭하고 싶다.

이 정도면 화탕지옥이나 돌봄지옥이나 내가 느끼기엔 또이또이였다.

어째서 돌봄노동의 강도는 올라가야 했던 것인가?


아이가 유치원에 다니면 대략 나의 하루 스케쥴은 편리했다.

아침에 아이를 데려다 준 뒤 한시간 산책도 가능했고,

때로는 노트북이나 책을 들고 근처 카페에서 글을 쓰거나 지원과제를 찾아보거나 지원과제를 신청하거나

하며 지냈다.

중간에 배가 고프면 밥을 먹었고, 그렇지 않으면 간단하게 빵과 커피로 대체할 수 있었다.

아이가 없는 동안 아이 방을 비롯한 집안을 치울 수 있었고,

가사노동을 하면서도 크게 힘들지 않았다.

당연한 일이다. 가사노동의 범주가 내가 쉽게, 또 가볍게 해결 할 수 있는 범주의 설거지, 요리, 빨래 였다.


문제는 아이가 유치원에 가지 않으면서 발생했다.

아이가 나가지 않는다. 나도 산책이 불가능하다.

아이와 함께 있는다. 조용히 글을 쓰거나 사업계획서를 쓴다고 노트북을 키면 애가 성질을 부린다. ㅠㅠ

아이가 같이 있는다. 내 밥만 안되고 5대 영양소를 신경쓰며 아이의 밥을 해줘야 한다.

물론 아이의 니즈에 맞춰 오므라이스, 규동, 돈까스 등 특식을 만들어야 했다.

아! 우리 땡그리는 심지어 국도 찾아서 더 힘들었다.

중간중간 만5세는 간식도 찾는다.

집에 우유, 두유, 과일 등이 비치되어 아이의 요구에 맞춰 제공되었다.

과일을 깎고, 우유를 따르고, 두유를 따르는건 결국 내 몫이다.....

이렇게 하루종일 아이 수발을 들고 나면 신랑이 온다.

그럼 또 저녁을 먹어야 하고 치우는건 내몫........

아들의 니즈에 맞춰 만들어준 호떡. 지가 만들고 맛없다고 안드심;;;;;


하루가 바쁘게 지나갔지만, 머릿속에 남는건 아들놈이 점심을 남겼느나 남기지 않았느냐가 남았다.

있는 반찬에 밥을 먹어주면 좋겠는데, 꼭 생선을 구워 달라는 둥, 고기를 구워 달라는 둥, 계란은 꼭 계란말이를 해야 먹지를 않나....

최근엔 아침 댓바람부터 군고구마와 구운계란을 찾아대서 빡이 쳤던 기억이;;;;;


만5세 아이의 요구가 힘든 이유는

이 요구에 온전히 자신만 담겨 있기 때문이었다.

자신의 요구에 맞춰 무언가 노동을 해야 하는 엄마를 1도 배려하지 않는...

온전히 자신의 원초적 본능에만 충실한 이 요구가!!!!!!!!!!

아침 댓바람에 오므라이스를 해달라거나 군고구마를 구워달라는 이 요구가!!!!!

차분하고 냉정하고 이성적이라고 생각했던 이과 엄마를 분노케 했다.


뭐 그랬다.

그래서 나에겐 지난 무기한 개학연장이 돌봄노동 지옥 구덩이에 나를 던진 느낌이었다.

아이의 돌밥돌밥 요구는 계속되었다.

바이러스만 아니면 사먹였겠으나, 밖에서 사먹는것도 한계가 있었다.

시켜먹는 것 역시 당연히 한계가 있었다.

시켜는 줄 수 있으나 그걸 차려주고 치워주는건 온전히 내 몫이기 때문이다.

어우 정말.......

그 와중에 아이는 심심하니 엄마에게 함께 놀자 요구를 한다.

엄마는 너 하나 먹이겠다고 아침부터 진이 빠졌는데 말이다.


뭐 그랬다.

새삼 돌봄 노동 종사자 분들의 위대함과,

아이들 식사를 준비해주시는 조리사 선생님들과 식단 짜는 영양사 선생님들의 위대함.

현장에 계신 많은 분들의 위대함을 몸소 깨닫고,

내가 아이와의 관계가 슬슬 파국이 되지 않을까 걱정하던 찰나에 다시 유치원이 문을 열었다.


분명 아이를 사랑하는데....

아이를 하루 종일 돌보는 것은 왜 이렇게 지옥에 버금가게 힘들까?

아이를 돌보는 것이 그저 돌보는 것이 아니라 완벽한 노동이기 때문에 힘든 것이 아닌가 싶다.

아이를 오너라고 생각해보라.

하루종일 오너를 모시고 퇴근이 없는 회사에서 오너의 오더를 쉬지 않고 수행하는 것이기 때문에

많은 양육자들이 돌봄노동지옥이라고 말하는 것이다.


유치원, 어린이집 등 많은 돌봄,영유아교육에 관련된 노동자들이 계신다.

이런 전문 돌봄 노동자들과 달리 집에서 일어나는 온전히 양육자 1명이 해결해야 하는 돌봄노동(이라 쓰고 독박육아라 읽는다) 을 지옥에 비유하는 이유는 무엇일까?

근로시간이 체계화된 돌봄 노동자들과는 달리 집에서 양육자가 하는 노동은 근로시간이 불분명하기 때문이다.

교대할 사람이 없고, 오너인 아이는 자신의 감정을 요구하는 것은 알아도, 상대방의 감정은 읽을 줄 모른다.

그리고 양육자를 퇴근시켜 주지 않는다.


뭐 퇴근 못하고 장시간 야근을 하는 회사를 다니는 겪이다.

그래서 독박육아가 힘든것이고, 돌봄노동 지옥이라 칭하는 것이다.

배우자가 함께 하면 된다고 말한다.

독박육아라고 말하는 이유가 어디서 나올 것 같은가?

그렇다. 배우자가 교대를 안해주는 경우, 우리는 독박육아라 말한다.

즉, 배우자가 제때 돌봄노동 교대를 도와주는 경우, 우리는 독박육아니 육아 지옥이니 라는 말을 하지 않는다.



너만 즐겁고 엄마는 힘들고 ㅋㅋㅋㅋㅋ


아이의 사랑스러움은 노동의 강도를 줄여주지 않는다.

그저 아이의 사랑스러움을 통해 아주 잠깐 노동의 시름을 잊는 것이다.

착각하지 않기를 바란다.

아이를 사랑하지 않아서 지옥이 아니라,

대체 인력이 없는 장시간 노동의 현장이 지옥이라는 소리다.

이 문제는 아주 간단하게 해결이 된다.

적기에 백업 인력이 나타나서 노동을 이어가 주면 된다.

이런 대체인력 프로세스가 잘 진행된다면, 돌봄노동은 더 이상 지옥으로 비유되진 않을 것이다.

그런데 이 이야기의 끝은 결국 어른들의 노동시간과 연결된다.

양육자의 장시간 회사 근로가 없어야 양육자들의 집에 돌아가 돌봄 노동을 수행할 수 있을 테니 말이다.

결국 돌고 도는 이야기다.

퇴근을 제때 해주면 된다 ㅋㅋㅋㅋㅋ

작가의 이전글 엄마 과학자 생존기 - 23

작품 선택

키워드 선택 0 / 3 0

댓글여부

afliean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