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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파란레몬 Oct 02. 2024

직관 메이트요? 가방입니다.

공놀이 혼자 보는 사람 처음 보세요?

일주일에서 6일을 함께하던 존재가 사라졌지만, 그 무렵 한참 남편과 연애 중이었기 때문에 자연스럽게 야구의 빈자리는 남편으로 채워졌다.

사실 남편에게 처음으로 호감을 느낀 순간도 야구 덕분이었는데, 다름이 아니라 남편도 직관 솔플러라는 사실을 알고부터였다.

어린 시절부터 워낙 뭐든 혼자 좋아하는 게 익숙했던 나는 야구도 당연히 혼자 보러 다녔는데, 주변 사람들에게는 그것이 무척이나 낯설고 이상해 보였던 모양이었다.

물론 누군가와 함께 하는 것도 즐겁지만 좋아하는 것과 나만 있는, 오롯이 집중할 수 있는 순간이 더 즐거울 때가 있는데 야구가 바로 그랬다.


집에서 TV로 보면 구종도 바로 보이고, 구속과 판정도 한 화면에 뜨고, 숙달된 카메라맨이 바로 공이 어디로 가는지도 모두 보여주기 때문에 별다른 집중 없이도 편히 볼 수 있다.

하지만 직관을 가게 되면 입으로는 응원가를 따라 부르며 눈은 경기에 집중해야 하니 정신이 없는데, 같이 온 일행까지 챙겨야 한다? 안 그래도 두 가지를 동시에 못 하는 나에게 그것은 불가능과도 같은 것이다.

그럼에도 직관을 포기할 수 없는 이유는 아무래도 TV로 볼 때와 달리 함께 기뻐하고 슬퍼할 수 있기 때문이 아닐까 싶다.

거기다 경기장마다 빼놓을 수 없는 먹거리들도 크게 한몫을 했는데, 이는 직관 메이트의 필요성이 느껴지는 몇 안 되는 이유 중 하나가 되기도 했다.

혼자 먹기에는 양도 많고 종류도 다양하다 보니 같은 팀을 응원하는 직관 메이트가 있으면 좋겠다는 생각을 떠올리고 빠르게 실행에 옮겼었는데, 같이 간 친구도 가족도 모두 다른 자신의 팀을 찾아가고 말았다.


당연히 남편의 응원팀도 나와 다른 팀이었는데, 적다 보니 연고지팀이 있는 지역에서 주변 사람들이 죄다 다른 팀을 응원하고 있으니 재밌는 일이다.

고향 연고지의 팀을 응원하는 사람은 내 주변에서 남편뿐이다. (ㅋㅋㅋ)


아무튼 나는 각고의 노력으로 각자의 팀을 찾아주고 또다시 혼자만의 직관을 이어갔었는데, 그러던 중 어렵사리 예매에 성공한 코시 1차전 경기가 있던 날이었다.

내 자리를 응원팀 관련 사진과 MD들로 꾸며놓다 보니 직장에서도 내 응원팀이 자연스럽게 알려져 있었는데, 주말경기만 보러 다니다 보니 솔플 직관을 다니는 줄은 아무도 모르셨던 모양이었다.

사수와의 스몰토크 중에 퇴근 후 코시를 보러 간다는 얘기를 꺼내자 남자 친구랑 가냐는 답이 돌아왔다.

난 아무렇지 않게 혼자 간다고 말했고, 내 말에 사수는 큰 충격을 받은 표정으로 야구를 왜 혼자 보러 가냐, 신기하다는 반응이 돌아왔다.

악의가 없는 순수한 호기심이 담긴 말에 순간 내가 그렇게까지 이상한 건가 싶은 생각이 들어 말문이 막혀버렸고, 나의 당황한 표정을 본 사수는 다른 팀의 누구 씨도 축구 혼자 보러 다니기는 한다더라~라는 말로 급하게 분위기를 수습했었다.


지금이야 남들이 이렇게 생각하고 저렇게 생각한들 어떠하랴, 나는 나의 길을 간다로 살고 있지만 그때는 그랬다.

남의 평가가 신경 쓰이고, 남들과 다른 내가 이상해 보이면 어떡하나 걱정이 되고.

그래서 드물지만 나처럼 가방과 같이 직관 다닌다는 남편이 궁금해졌고, 일방적 호감을 가졌던 것 같다.

아마 이 사람은 나의 직관메이트를 이상하게 생각하지 않고 이해해 줄 것 같다는 동지의식?

나중에 얘기를 들어보니 그 시절의 축구장은 관중도 없고, 자리도 너무나 넓어서 경기 시작 전 한 자리만 결제하고 들어가도 옆에 가방 둘 자리, 음식 둘 자리, 누울 자리도 있었더란다.

야구는 미리 예매하지 않으면 내 자리 하나도 없는데 누울 자리라니..

언젠가 야구도 저런 날이 오겠지 라는 생각을 했었지만 그날이 오기도 전에 나는 탈덕을 했고, 야구는 그때보다 더더욱 표 구하기 힘든 인기 종목이 되어버렸다.


아무튼 나의 K리그에 대한 첫인상은 예매를 하지 않아도 볼 수 있고, 자리가 여유로운 종목이라는 인상이었다.

그건 그 당시 남편의 응원팀이 2부 리그에 있어서 그랬었지만, 승강제가 없는 야구팬이던 나는 전혀 몰랐다.

그리고 그 첫인상을 내 두 눈으로 직접 확인하게 된 것은 남편과 연애를 시작한 뒤 얼마 되지 않았을 때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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