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업을 멈추지 않는 끈기 있는 덕후와 함께 산다는 것
코로나19는 전 세계 사람들의 많은 것을 바꿔놓았지만, 그중에서 가장 강렬한 것은 역시 거리 두기가 아니었을까?
바이러스 자체는 무서웠지만 거리 두기는 굉장히 마음에 들었었다.
조금 귀찮은 약속도 서로 불편한 마음 없이 취소할 수 있는 좋은 핑곗거리가 되었고, 명절에는 억지로 보기 싫은 친척들을 볼 필요도 없었다.
심지어 나는 억지로 주말외출을 강행해 오던 집순이 아니던가?
눈치 주는 이 없는 칩거생활을 나는 마음껏 누렸다.
비록 집에 오래 붙어있다 보니 인테리어가 슬슬 질려와서 집을 꾸미고픈 욕망은 생겼을지언정, 밖으로 나가고 싶다는 생각은 전~혀 들지 않았다.
남편 또한 무관중으로라도 개막해 주는 게 어디냐며 축덕질을 이어나갔고, 나는 정말 실컷 책을 읽었다.
그렇게 2020년, 2021년 두 해 정도를 보내고 나니 아무리 타고난 집순이인 나라도 몸이 좀 쑤셔오고, 시력이 급격한 속도로 나빠졌다.
먼 곳을 볼 일 없이 책과 컴퓨터 화면만 보다 보니 눈이 의식될 만큼 나빠졌던 것 같다.
그럼에도 가까운 거리는 잘 보이니까 라는 생각으로 안경을 굳이 맞추지는 않았는데, 2022년 거리 두기가 해제되고 떠난 제주여행에서 아름다운 풍경이 흐릿하게 보이는 것을 보며 드디어 인정하기로 했다.
시력만큼은 타고났었지만 많은 노력 끝에 시력도 나빠졌다는 사실을.
그리고 남편은 다시 한번 자신의 팀을 영업하기 위해 나를 축구 경기장으로 초대했지만, 나는 처음부터 책을 읽을 생각으로 갔던 터라 그라운드 쪽으로는 눈길도 주지 않았다.
애초에 초대 자체를 거절했었지만, 직관을 마치고 경기장 근처의 맛있는 라면집을 가자는 꼬심에 넘어가고 말았다.
남편은 그때 나의 공략 포인트를 캐치했었던 것 같다. 똑같은 장소는 금방 질려하고, 맛집에 약하다.
나는 마침 집순이라도 질려할 만큼 긴 시간을 집에만 있었다 보니 가벼운 국내 여행정도는 기쁘게 다녀올 수 있는 상태였다.
사실 남들 다 좋아하는 해외여행을 나는 별로 선호하는 편은 아니다.
물론 가면 즐겁기야 하지만 해외여행을 위해서는 준비할 것과 신경 쓸 것이 너무 많았고, 막상 가서 즐기는 즐거움보다 스트레스가 훨씬 커서 내 기준의 즐거움 가성비가 맞지 않았다.
(가성비충이라 비싼 비행기값도 한몫했다 ㅋ)
게다가 꽤나 긴 장시간 집을 비워야 한다는 사실도 집순이인 내게 큰 스트레스였고, 우리 집 고양이에게도 큰 스트레스였다.
그런 나에게 국내 여행은 나름의 가까운 거리, 당일치기도 가능, 준비할 것이 많지 않음, 교통비가 비행기값에 비해 저렴함, 모든 것이 충족되는 것이 틀림없었다.
남편은 그 점을 캐치해서 자신의 니즈를 잘 녹여내어 나에게 거절할 수 없는 영업을 제안했다.
-홈경기가 아닌 원정 경기를 가서 그 지역의 맛집과 여행지를 가보는 국내 여행.
내가 운전을 못 하다 보니 여행에서의 운전은 오롯이 남편 몫이었고, 나는 그 점이 미안해서 항상 가벼운 곳 위주로 계획을 짜고는 했었다.
하지만 원정 경기가 있는 지역을 찾아보니 비교적 먼 거리의 가보고 싶었던 여행지들도 많은 것이 아닌가?
남편은 남편대로 원정팀의 경기장을 직접 보고 싶었던 목표를 이루게 되었고, 나는 나대로 홈경기보다는 비교적 여유로운 원정 경기의 일정에 따라 가벼운 국내 여행을 가게 되었으니 거절할 이유가 없었다.
다만 내가 피곤해하면 억지로 가지 않고 집에서 본다는 작은 조건을 덧붙인 2023년.
드디어 나는 남편과 내가 바라고 바라던 K리그로의 입덕에 성공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