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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Blue Cloud Sep 27. 2024

정리해고

이별은 새로운 만남을 만들고, 언제나 갑작스럽게 온다.

점심시간 건물에 있는 조그마한 Gym 러닝머신에서 바라본 뷰


영원할 줄 알았던 첫사랑과의 갑작스러운 이별..

대학 1학년때 만나 장거리 연애로 8년을 교제했던 그녀에게 어느 날 통보받은 그녀의 결혼 소식..

대학을 졸업하고 군대를 제대해서 취직을 하고 결혼을 할 줄 알았던 내가 취직대신 대학원을 진학한 사건은, 대학졸업하고 바로 공무원이 되어 안정된 직장에 취직해 그다음을 기다렸던 그녀에게는 상당한 실망이었을 것이다.

대학원 진학은 솔직히 나의 강한 의도가 있었던 건 아니었다. 대학을 졸업하고 장교로 복무 후 군대를 제대했던 1999년은 IMF 구제금융시대의 영향으로 모든 회사들이 사람들을 정리해고하던 시기였고 항상 해왔던 제대하는 사람들을 대상으로 하는 구인은 전혀 없었고 그 상황에 나는 제대를 하고 사회에 나와 아무 곳에도 소속되지 않는 나의 신분을 접하게 된다.

8월 제대 후 아무 곳에도 소속되어 있지 않는 상황.. 이, 나를 힘들게 했고, 이것이 결국 12월 대학원 진학을 하게 되었다. 대학원 진학 후 나는 어학에 대한 열등감으로 어학연수를 생각하게 되었고.. 하지만 대학원 졸업 후 취직을 생각하는 그에게 말할 수 없었다. 서로 연락하지 않았던 몇 개월간의 공백..

그녀는 그 사이 평소 고민을 상담하던 회사 동료의 적극적인 구애로 결혼을 준비하게 된다.

처음에는 '당했다'는 생각이 강했고 나중에는 '내가 그렇게 만들었다'는 생각이 들었었다.


영원할 줄 알았던 첫 직장에서의 갑작스러운 해고 통보..

미국에서 대학원을 졸업하고 얻는 첫 직장에서 18년 동안 일을 했는데 갑자기 해고 통보를 받게 된다..

어느 때처럼 일을 하고 있었고, 오랜만에 다른 스튜디오에서, 큰 공항 프로젝트를 해서 열의를 갖고 일을 하고 있었다. 새로운 사람들에게 나의 능력을 보여주면서 나름 즐거워하고 있었고, 같이 일하는 사람들이 나를 필요로 한다는 것이 느껴져서 계속 그 팀에서 일하고 싶다는 생각이 들었다. SD를 마감하며 팀에 합류했고 내년 1월로 DD를 이슈해야 하는, 공사는 내년여름에 시작되어야 하는 프로젝트라 적극적으로 파사드 팀을 이끌고 있었다. 전날 디자이너에게서 공항화장실 레이아웃이 맘에 들이 않는다며 내게 추가의 일을 부탁했고 나름 발전된 안을 제시하고 회의를 했다. 오전 일과를 끝내고 오후 2-3시경 HR에서의 메시지를 받고도 아무런 의심을 하지 않았다. 바로 확인하지 못하고 있다가 확인했는데 10층 남동쪽 미팅룸으로 와달라는 이야기.. 아무 생각 없이 갔더니, 메니징 사장, 상사, 그리고 HR사람 셋이 않아 있었다. 

그때서야 나를 부른 이유를 알 수 있었다.

멍한 생각.. 

2009년 전체인원의 1/3을 10차례 넘는 감원으로 줄일 때 살아남았던 나였는데.. 그 트라우마로 매년 열심히 백업을 했었던 나였는데.. 한동인 잊고 살고 있었다.


지나고 나서 생각해 보면, 

작년에 나와 10년 넘게 일했던 디자인 사장의 은퇴, 그리고 올 5월 나와 일하던 윗사람의 중국오피스로의 이동으로 인한 스튜디오의 통합이 몇 주 전에 있었고, 내가 주로 했던 중국과 동남아 프로젝트 마켓이 점점 줄어드는 상황에서 뉴욕에서 새로 온 디자인 사장과 별다른 교류가 없었던 것 등등.. 여러 요인들이 감원을 생각한 회사입장에서는 내가 대상이 될 수 있었단 생각이 든다.

더욱, 나로서는 내가 하는 일이 점점 내 상사의 일과 점점 겹치면서 실질적으로 일은 내가 다하는데 공은 내 상사에게만 가는 것이 불만이었고 그 사람과 너무 오랜 관계 속에서 벗어나고 싶어 다른 스튜디오 프로젝트로 옮겨간 상황이었다. 

그럼에도 나는 내가 대상에 오를 것이라는 것은 생각하지 않고 있었다.

 

너무나 매정한 미국 직장의 해고, 2주 치 월급과 내가 쓰지 않은 연차휴가만큼의 돈을 주는 것으로 금전적인 관계가 정리된다. 다행이었던 건 내가 임원이었고 18년을 일해서 그들의 계산으로 11 week(2+9) 월급을 더 받을 수 있었다는 것.. 결국 이것이 내게 큰 도움이 되었다.


제일 먼저 들었던 생각이 첫사랑의 결혼 통보를 받을 때와 군 제대 후 아무 곳에도 속하지 않은 상황일 때였다.

오랫동안 쌓아놓았던 공든 탑이 무너지는 느낌.. 조금 다르다고 생각한 건 지나간 첫사랑의 이야기를 내놓고 할 수 없지만 지난 18년의 직장일은 말해도 된다는 것 정도..


18년간 매일 보았던 풍경



하루에도 몇 번씩 보았던 풍경, 무지개가 뜬 어느 날

그 후의 과정은 먼 미래를 위해 기록으로 남겨 놓는다.

1. 미국보험은 정말 문제였다. 회사가 없으면 보험이 없다. 애들이 있는 상황에서 무보험으로 사는 것은 너무 큰 리스크였다. 회사 없이 보험을 유지하려면 보험료로 매달 $2,800(350만 원)을 직업이 없는 사람이 스스로 부담해야 했다. 나도 한 달을 이렇게 했는데 미국에서의 구직 과정의 느림을 생각하면 너무 큰 부담이 된다.

2. 제일 먼저 나는 정리된 레주메와 샘플워크가 없었다. 작업할 프로그램이 없어서 G-Slide로 작업을 했다. 미리미리 준비하자..

3. 노트북은 반납해야 했지만 들고 나왔다. 자료 정리를 위해서. 원래는 정리해고 통보 후 바로 IT에 의해 컴퓨터에 로그인을 할 수 없게 하지만, 나는 인터넷 연결을 끊어버려서 노트북에 저장된 자료는  백업받을 수 있었다.

4. 과거의 나에게 땡큐.. 최근에 했던 자료들은 주로 G-Slide로 회사 클라우드에 저장해서 사용했다. 너무 많은 자료들이었고 내가 밑에 사람들에게 가르치기 위한 자료들을 모아놓은 거라 내겐 정말 중요한 자료였다. 하지만 해고 후 회사 드라이브에 접속을 할 수가 없어서 모든 것을 날려버리는 것 같아 너무 걱정이었던데, 옛날, 어느 날 이런 경우가 생길 수도 있다는 생각이 들어서 내가 자료를 만들 때 접속할 수 있는 권한을 내 개인 이메일에게도 주었었다. 이로 인해 내가 만든 대부분의 자료를 얻을 수 있었다.

5. 세상에서 떨어져 나온 기분.. 외벌이로 올해 대학에 들어가는 아이를 둔 가장의 무게는 적지 않았다. 아이들에게 사실을 말하는 것도 부끄러웠고..

6. 매일 생각나는 사람에게 이메일 돌리고 LinkedIn구직사이트에서 지원하는 것이 일상이었다. 18년 차는 뽑는 회사에서 볼 때는 부담되는 연차였다. 처음에는 이름 있는 몇몇 개만 돌렸지만 나중에는 점점 늘려갔다. 주변사람들의 격려.. SOM 18년 차인데.. 쉽게 될 거야.. 하는 말들을 많이 들었지만.. 상황은 그리 쉽지 않았다. HR에 연락이 닿아 인터뷰를 잡는 데까지 1달이 걸렸다. 그리고 대부분의 회사들은 내 직급은 한 번의 인터뷰로 끝나지 않고 여러 번 잡아서 첫 인터뷰 후에도 또 많은 시간이 지나간다. 

결국에 정리해고 후 한 달 반 만에 새로운 직장을 잡고 지금은 새 직장출근 전 시간을 보내고 있지만 내가 원했던 몇몇 회사는 이제야 인터뷰를 하자고 연락이 오고 있다. 결국에는 시간 싸움이었다. 얼마나 내가 버틸 수 있는지가 내가 원하는 곳에 갈 수 있는지를 결정하고 얼마나 버틸 수 있는지는 경제력과 정신력에 달린 것 같다.

7. 항상 긍정적인 사고로 나 자신을 합리화시켰다. 이런 상황이 5년 후에 발생했다면 더욱 힘든 상황이었을 것이다. 이번일로 새로 레주메도 정리하고 했던 일들을 정리하는 시간을 갖게 된 것은 잘된 일이라 생각했다. 시련이 온다면 일 년이라도 젊었을 때 마주하는 게 더 좋은 거라 생각했다.

8. 인터뷰를 한 회사들은 내 포트폴리오에 대부분 좋은 반응이었지만 인터뷰까지 가는 건 정말 힘들 일이었다. 결국 인터뷰를 잡기 위해 그 회사에 다년던, 혹은 다니고 있는 SOM 출신을 찾아 그들을 통해 지원한 것이 효과가 있었다.

9. 매일매일 감정이 폭이 많아졌다. 유명회사와 인터뷰가 잘된 날은 기분이 좋았다가 어떤 날은 연락이 없으면 동네 작은 사무소 홈페이지까지 돌아다니게 된다. 내가 어디에서 일을 할지 내가 결정할 수 없고 주어지는 상황에서 어디든 잡아야 했던 내 모습에,  나 스스로 작아짐을 느꼈다.

10. 내가 했던 프로젝트들과 작업들이 너무나 High-end라는 것을 알게 되었다. 그로 인해 다른 회사에서는 써먹을 일이 별로 없다는 것이고 그로 인해 내가 가지고 있는 경험이 필요가 없다는 것이었다. 이는 내게 큰 장벽이었다. 그리고 내가 공들였던 낮은 직급에 대한 교육과정도 그리 쓸모가 없어지는 것을 느꼈다. 허무함이 많이 들었다.

11. 누구에게나 그럴싸한 계획은 있다. 처음 처맞기 전까지는..이라는 마이클 타이슨의 이야기가 생각났다. 10년 전부터 직장 바꾸라는 아내의 성화에도 나는 이직장에서 은퇴를 생각했었고, 승진은 더 올라가긴 힘들지 몰라도 아랫사람들 교육하며, 자료들 정리하면서 회사에서의 입지를 만들 생각 했었다. 

12. 홀가분한 마음도 든다. 나를 움직이지 못하게 잡고 있던 줄 하나가 끊어져 버린 느낌.. 처음 하기가 힘들지 그다음은 쉽다는 앞서 간 사람들의 말처럼.. 왠지 다른 곳에도 적용될 것 같은 생각도 들고.. 지금 나를 잡고 있는 다른 세 개의 줄들도 사라진다면.. 

13. 한 달 반의 시간이 나를 한 번 더 성장시켰다고 생각한다.

14. 다음 회사에서는 좀 더 나를 표현하자.. 그리고.. 아닌 것 같으면.. 먼저 나가자.. 

  

재택근무날 조용히 짐 빼러 가서 찍은 회사에서 마지막 사진



Architectural Record 잡지에서 나오는 매년 미국 건축회사 순위. 내가 다니던 회사 위에 있는 모든 회사에 지원을 했고 그중에 제일 먼저 오퍼를 준 회사를 선택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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