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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혜일 Jun 15. 2021

할머니는 무얼 그리 닦고 닦으셨나

주부로 살며 선명히 알게 되는 것

지난 오월은 한 달의 절반이나 비가 왔다고 한다. 유월 중순의 날씨 역시 오락가락한다. 하지만 비가 오든 해가 나든 "미세 먼지만 없으면 좋겠사옵니다." 하고 날씨에 대한 나의 자세는 지극히 겸손해진 지 오래다. 그 누구도 달가워할 리 없는 고농도 미세먼지는 초여름의 문턱도 가뿐하게 넘어 눈앞을 흐리멍덩하게 한다.


미세먼지와 더불어 살아간 지 수년 째, 나는 아침마다 베란다 창으로 확인하는 것이 한 가지 있다. 다닥다닥 붙은 무채색 아파트들 사이로 그것이 보이는지 안 보이는지, 보이면 얼마나 선명하게 보이는지 잠시 서서 가늠해본다. 그것의 정체는 빨간색 다리. 베란다를 통해 감상할 수 있는 것 중에서 가장 멀리 보이는 사물이다. 차를 타고 이 다리가 위치한 곳을 지날 때면 실제 크기가 상당하다. 하지만 집 안에서 볼 땐 손톱만큼 앙증맞은 장난감 다리를 세워놓은 것 같다. 이 빨간 다리가 선명하게 보인다는 것은 가시거리가 좋은 맑은 날이라는 뜻이다.


간 밤에 비가 오더니 오늘 아침엔 미세 먼지로 며칠 동안 보이지 않던 빨간 다리가 반가운 모습을 드러냈다. 빨간 다리가 선명히 보이는 날엔 창문을 마음껏 열 수 있다. 며칠 동안 컨디션 난조를 겪던 내 몸도 덩달아 살아난다. 결혼을 하지 않았다면 이런 날엔 나풀거리는 원피스를 입고 쏘다니기 바빴겠지. 그러나 주부의 사명감은 이렇게 맑은 날 얄궂게 불타오른다.


잦은 비와 미세 먼지로 묵혀뒀던 집안일들을 이런 날엔 외면할 수가 없다. 빨래는 기본이고 앞 베란다, 뒷 베란다 활짝 열어놓고 청소를 시작한다. 물때 낀 화장실부터 언제 열어봤는지 기억도 나지 않는 세탁기 필터 청소,  커버를 미처 씌워두지 못해 일 년 치 먼지를 뒤집어쓴 선풍기까지. 모두 닦고 씻는 종류의 일들이었다.


닦고 씻겨내는 청소, 그것은 흔적을 남기지 못한다. 이내 또 다른 먼지가 쌓여갈 것을 알지만 가족들을 위해 그래도 닦는다. 주부가 된 지 십 년이 다 되어가지만 집 안 청소 스킬과 실력은 지난 시간에 비해 미비하기만 하다. 살림의 고수, 중수는 커녕 여전히 한 치 앞을 내다보지 못하는 하수 느낌이다. 집안 살림이 이렇게 어려운 것인지 주부가 되기 이전엔 알지 못했다.




할머니는 집안 살림에 있어서 고수 중의 고수셨다. 어릴 때 나는 할아버지, 할머니와 함께 살았다. 형제도 네 명이나 되니 지금은 보기 힘든 대식구였다. 할아버지는 형제 중 맞이셨고 아버지는 외아들이셨기에 우리 집은 연중행사가 늘 끊임없었다. 어른들의 생신이 돌아오면 현관 바깥까지 신발이 터져나갈 만큼 손님들로 북적였다. 그러니 나의 할머니와 엄마는 손에서 늘 물기 마를 새가 없으셨다. 특히 할머니는 손이 무척 크신 여장부 스타일이셨다고나 할까. 동네 아주머니들까지 합세하셔서 여름엔 마당에서 진짜 돼지 창자로 순대를 만드시거나, 겨울엔 땅콩과 깨가 박힌 엿을 어마어마하게 만드시곤 어린 손주들을 먹이셨다.


지금은 할머니를 떠올리면 가장 먼저 집 안 구석구석을 걸레질하시던 모습이 생각난다. 사실 할머니는 노년에 걷지 못하셨다. 나는 태어나면서부터 할머니와 살았지만 도무지 두 발로 건강히 걸으셨던 기억이 나지 않는다. 할머니는 골다공증에 관절염이 무척 심하셔서 늘 앉은 자세로 다니셨다. 걷지 못하셨기에 돌아가시기 전까지 거실 마루며 안방, 주방까지 손걸레로 바닥을 훔치셨던 기억이 난다. 할머니는 자세가 불편하셨고 그 모습을 지켜보던 어린 나는 마음이 불편했다. 하지만 할머니가 내게 심부름을 시키시면 귀찮을 때가 많았다. 특히 할머니가 오르시지 못했던 2층이나 집 안 계단을 걸레로 닦으라고 하시면 그게 그렇게 싫어서 툴툴거렸다.


엄마에게 부엌살림을 맡기시곤 할머니는 그래도 기력이 좋으셨을 때 책을 종종 읽으셨다. 어떻게 구입하셨는지는 모르겠지만 책 겉표지는 종이 포장지로 한 번 더 정성스럽게 덮여있었다. '한중록' 같은 소설의 제목이 검은색 손글씨로 쓰여있었다. 아마도 할머니의 손글씨였을 거다.


"혜일아, 다음번에 서점에 가거든 할머니가 돈 줄 테니 별주부전 좀 사다 다오."


바깥 활동이 자유롭지 못하셨던 할머니는 내게 책을 사다 달라고도 하셨다. 한중록, 구운몽, 사 씨 남정기... 할머니가 좋아하셨던 한국 고전 소설들이다. 어린 내겐 어려워서 거리감이 느껴지던 책들이었다. 집 앞 가게에서 담배, 쿨피스 같은 음료수를 사다 드린 기억은 나는데 책 심부름을 진짜 해드렸는지는 모르겠다. 기력이 쇠하시고 걸레질마저 하실 수 없을 만큼 아프셨을 땐 그저 누워만 계셨던 할머니. 방문 틈으로 엿본 할머니의 마지막 모습이 아직도 생각난다. 활짝 문을 열고 들어가 어린아이의 생기 가득한 목소리로 책을 읽어드렸어야 했다. 그때나 지금이나 살갑지 못한 성격이다 나는.  

 



지금처럼 미세먼지도 없었을 시절에 할머니는 무얼 그리 날마다 닦고 닦으셨나. 편히 누워 좋아하시던 책이나 읽으시지. 하지만 할머니가 마지막까지 하실 수 있으셨던, 그리고 놓고 싶지 않으셨던 집안일은 아마도 걸레질이 아니었을까 싶다. 집안일은 열심히 해도 티가 나지 않는다고들 하지만 해본 사람은 안다. 흐트러진 일상을 정돈하고 정갈히 하는 일들의 즐거움과 보람을. 특히 걸레질처럼 닦아내고 씻겨내는 작업은 고되지만 분명히 티가 난다. 아니, 빛이 난다. 나처럼 집안 살림 하수도 깨달은 것을 할머니 같은 고수가 모르셨을 리 없다.  

선명해진 것은 저 멀리 빨간 다리뿐만이 아니었다.


청소를 끝마치고 앉아 집 안을 채우는 맞바람을 쐰다. 주부가 되기 이전 시절, 원피스로 한껏 멋을 내고 한강 공원이나 인사동 거리를 쏘다닐 때 맞던 바람이 이렇게 개운했을까. 집안일은 해본 사람만 아는 작은 통쾌함이 있다. 걸레질할 때 안성맞춤인 헐렁하고 낡은 티셔츠 사이로 유월의 맑은 바람이 뚫고 지나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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