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계정을 잊어버리셨나요?
by
혜일
May 26. 2021
봄의 둘레
일 년 열두 달 중 오월을 참 좋아한다.
어릴 때부터 내게 오월은
긴팔 옷에서 반팔 옷으로 갈아입는
공식적인 달로 기억된다.
그 해 처음 반팔 옷을 꺼내 입고
책가방을 맨 채 학교 정문을 들어설 때면
팔꿈치 아래로 맨 살에 닿는 따뜻한 햇빛이 기분 좋았다.
어린 내 몸을 타고 흘러내린 햇살은
운동장 모래까지 눈부시게 비췄다.
오월은 봄과 여름 사이,
두 계절을 다리처럼 이어주는 달이다.
아이는 유치원에서 어린이 날 선물로 받은
노란색 반팔 티셔츠를
처음
입고서
단지 내 풀 숲에서 한참을 웅크려 앉아 놀았다.
어린 내 아이의 뒤통수와 목덜미,
팔꿈치와 야물게 쥔 두 주먹 위로
하늘은 오월의 햇살을 아낌없이 끼얹는다.
뾰족했던
겨울나무들은
몇 달 새
풍성한 볼륨을 자랑하는 초록 옷들로 갈아입었다.
아이의 웅크린 등도, 햇빛에 일렁이는 나무들도
어쩐지 둥글둥글하다.
오월과 함께
봄이라는 계절의 한 바퀴도 거의 다 돌아간다.
겨울이 싫은 것은 아니지만 앙상한
나뭇가지를 보는 시간이 너무 길게 느껴질 때가 있다.
그럴 때 혼자서 '봄이 오고 있어!' 하며
발이 달린 것도 아닌 봄을 재촉하며 불렀던 것 같다.
많은 사람들이 나처럼 똑같이 이 계절을 기다리기에
봄은 유독 '오다'라는 동사와 자주 어울린다.
어쩌면 네 계절 중 가장 오랜 시간 기다린 봄이 끝나간다니 아쉽기만 하다.
봄에도 둘레가 있다면
둥글게, 둥글게 매년 더 넓어졌으면 좋겠다는 상상을 해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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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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봄
혜일
아둘 맘. 지워지고 잊혀지는 하루하루가 그리워 기록합니다. 글이라는 거울로 스스로를 종종 비춰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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