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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도시 언니 Mar 14. 2023

30대 후반에 ‘굳이’ 개명했다.

 인생을 1/3쯤 살아온 요즘, 나는 개명했다. 원래 이름은 특별히 이상하지도, 그렇다고 이목을 끄는 비범한 이름도 아니었다. 굳이 가르마를 타자면 평범하진 않지만 그렇다고 흔하지도 않은 이름이었다. 덕뿐에 이제껏 살면서 내 세대에서 동명이인을 단 한 번도 본 적이 없다.


 내 이름의 유래는 첫 딸을 낳은 기쁨에 아빠가 손수 '당신이 생각하기에 1980년대에 기준으로 가장 예쁜 여자 이름'으로 지어준 것으로 거슬러 올라간다. 그래서 내 이름은 ‘우리 고모, 혹은 이모대'에서 종종 발견된다. 당시 가장 예쁘고 세련되었던 내 이름은 애석하게도 1980년대를 이후로 그 명맥이 끊긴 것 같다. 요즘 여자 아이 이름으로 유행하는 이름들과는 한참 거리가 있다.   


 재밌는 점은 다소 올드한 느낌을 풍기는 내 이름에 비해 되려 우리 엄마의 이름은 극강의 세련됨을 자랑한다는 사실이다. 10남매의 막둥이었던 우리 엄마는 띠동갑이 훨씬 넘는 나이차를 가진 큰언니, 즉 내겐 큰 이모 되시는 분이 고심해서 지어 준 이름 덕뿐에 1960년대생에서는 흔하지 않은 이름을 보유했다. 요즘 여자아이들에게도 가끔 보이는 이름이며 심지어 현재 활동 중인 여자 아이돌의 이름으로 쓰이기까지 하니 말 다했다.


 큰 이모 덕분에 엄마 이름은 또래 친구들이 아들 낳아야 한다고 ‘~자’ 돌림이거나, 그저 딸이라고 괄시받아 대충 성의 없어 보이는 이름들 사이에서 단연 군계일학이다. 이름이 촌스럽다고 불리는 것도 쓰는 것도 꺼려하는 친구들 사이에서 늘 당당하게 존재감을 뽐내는 엄마 이름. 그래서 그런지 엄마는 늘 주변 아줌마들 사이에서 세련되고 소녀 같다는 소리를 들었다. 한 사람의 이름은 그 사람의 자존감이나 성격 형성에 지대한 영향을 미친다는 사실은 이렇듯 아주 가까이에서, 우리네 엄마대의 이름을 통해서도 알 수 있다. 


 잠깐 이야기가 샛길로 빠졌는데 다시 내 이름 이야기로 돌아와 보자. 아빠가 애정을 듬뿍 담아지어 준 이름에도 불구하고 성장기간 내내 스스로 나의 자아와 내 이름이 묘하게 어울리지 않는다고 느껴왔다. 뭐랄까, 늘 2% 정도 이질감이 느껴졌달까. 좀 더 솔직히 말하면 나는 오랜 시간 내 이름이 나 같지 않다고, 내 이름이 나를 온전히 대변한다고 생각하지 않았다. 그냥 그 이름으로 내가 불리니까 사용하는 것이지, 나의 외면과 내면을 찰떡같이 대변하는 느낌은 아니었다.


 그러나 부모가 지어준 이름에 100% 만족하는 자식이 얼마나 될까. 그래서 나도 그냥 숙명처럼 주어진 내 이름을 품고 살아왔다. 그러나 불 난 집에 기름 붓듯 한 번씩 내 마음에 도화선을 당기는 일들이 있었으니, 바로 무속신앙. 그놈의 사주팔자를 보고 올 때였다. 신기하게도 어릴 때부터 제법 꾸준히 무속인들에게 개명을 권유받았다. 크리스천이 된 이후 신점 혹은 사주팔자에 흥미도, 믿음도 딱 끊어졌지만 방황하던 20대부터 30대 초반까지 나는 잊을 만하면 한 번씩 무속인들이나 명리학자들을 찾았다.

 

 한 달 이상을 기다려야 한다는 용한 집에 예약을 걸어놓고 연차를 내고 찾아 간 적도 있었고, 3명만 모으면 어디든 온다는 '출장 사주'의 가성비를 높이기 위해 직장 동료들과 삼삼오오 무리를 지었다. 나는 대부분 음양오행이 두루 조화롭고 말년으로 갈수록 사주가 좋다는, 소위 '팔자 좋은 편'이라는 피드백을 받았지만 '혹시 개명할 생각이 없냐고', 잊을만하면 꼭 개명 권유를 받았다. 이유를 물어보면 대부분 '본인이 가진 기운이나 재능에 비해 이름이 너무 약하다'는 맥락의 답이 돌아왔는데 그럴 때마다 나는 속으로 생각했다.


 ‘아무리 내가 사주가 좋다고 해도 뭔가 답답하고 막힌 구석이 있으니 여기까지 온 것 같아서 개명을 권하는 것 아닐까?‘라는 나름의 합리적 의심과 개명 작업은 생각보다 매우 크고 번거로운 일이라 주기적으로 개명 권유를 받았어도 선뜻 행할 수 없었다.


 또 마음 한 편으로는 비록 조금 올드한 느낌이 들지만 예전 이름으로 제법 많은 것을 일궜기 때문에 굳이 긁어 부스럼을 만들고 싶지 않은 마음도 있었다. 어찌 되었든  그 이름으로 간절히 원하던 학교, 직장에 합격했으며, 최근에는 책까지 출간했으니 이만하면 그래도 이름값치곤 나쁘지 않은가? 싶었다. 아빠의 바람대로 세련된 여성이름은 못되었고 사주팔자와도 잘 안 맞는다지만 분명한 사실은 부모님이 사랑으로 손수 지어준 이름이다. 내가 마음에 안 든다고 확 바꿔버리면 뭐랄까, 부모님의 마음을 내 손으로 저버리는 것 같기도 했다. 과거의 나는 뼛속까지 K장녀이자 유교걸이었다.


 그런데 몇 년 전, 나는 내가 인지하지도 못하는 사이에 큰 병을 얻어 큰 수술을 받았고 이후 물리적 상처회복보다 더 큰 정신적 데미지를 입었다. 심각한 우울증과 불안장애에 시달렸던 나는 돌이켜 보면 큰 수술을 받기 이전부터 이미 내 안에 무언가 철저히 망가진 상태였다. 암은 다만 그것이 표면적으로 드러난 것일 뿐이었다.


 암을 겪으며 나는 그동안 고집했던 삶의 방식과 태도와 가치관에 대해 큰 변화가 생겼다. 비록 겉으로 보기에는 별 차이가 없으나 과거에 비해 나는 분명히 변했다. 그것도 폭풍처럼, 아주 많이. 그러자 내 안에서도 겉으로도 무언가 변화를 꾀하고 싶은 욕망이 강하게 일기 시작했다. 과거의 결실, 영광과 상처를 꼭 같이 짊어져야 한다면 나는 오히려 그 둘을 모두 버리고 원점에서 새롭게 시작하고 싶었다. 


 마음이 한참 너울처럼 일렁일 때쯤 운명 같은 사건도 터졌다. 바로 작년에 사랑하는 할머니를 잃었다. 그로 인해 내 이름의 원작자인 아빠의 마음에도 큰 변화가 생긴 것 같았다. 소중한 이의 상실 과정에서 아빠는 인생의 덧없음, 혹은 가족을 위해 평생 자신을 희생하고 정작 본인이 하고 싶은 것들, 배우고 싶었던 것들은 제대로 하지 못했던 할머니의 삶에서 안타까움을 느끼셨는지 뜬금없이 내게 뭐든 너 하고 싶은 대로 하라고 하셨다. 그전에는 은근히 개명 의사를  흘려봐도 못 들은 척하거나 수동적으로 반대하는 제스처를 취했는데  갑자기 '이름도 바꾸고 싶으면 바꿔라. 너 하고 싶은 대로 살아라.' 하시는 게 아닌가. 덧붙여 '이름 촌스럽게 지어서 미안하다'는 셀프 자아 반성까지 하시니 나는 속으로 ‘드디어 때가 됐다.'라고 생각했다.


 개명을 하는데 타고난 사주와 본 이름이 잘 안 맞는다는 것은 사실 작은 핑겟거리일 뿐이었다. 그보다 더 큰 동인은 사실 어릴 때부터 오랜 시간 과거의 내 이름이 나란 존재와 이질감이 있다고 스스로 느껴왔다는 점과 큰 병의 치유과정 속에 남은 인생의 터닝포인트를 맞은 점이 주요한 이유다. 곁들여 목구멍에 생선 바늘 같던 아빠에 대한 미안한 마음까지 ‘원작자의 컨펌'과 함께 눈 녹듯 사라졌으니 더 이상 망설일 이유가 없었다. 그래서 작년 겨울 법원에 바로 개명 신청을 했고 30대 끝자락에 ‘굳이’ 새로운 이름을 얻었다.


 이름을 바꾸면 운명이 바뀐다던데 과연 내 삶에도 큰 변화가 생겼는지는 다음 편에 이어보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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