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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민태형 Aug 25. 2022

니트 양말을 신고 온 싸가지

작아서 큰 세계 (3)

  면접은 12월 20일 즈음이었다. 그해 겨울은 유난히 추웠다. 

  면접 날 아침, 난 아이를 낳기 전까지 입었던 감색 코트를 꺼내 입었다. 팔뚝이 꽉 끼어 겨드랑이가 몸에 착 붙지 않고 살짝 떴다. ‘이두박근 삼두박근 운동을 열심히 한 사람이 이렇겠군’ 이란 생각이 들었다. 앞 단추는 정말 간신히 잠길 정도라 그냥 잠그는 걸 포기했다. 그렇게 조금은 불편한 몸을 이끌고 어린이 도서관으로 향했다.

  앞사람이 면접을 보러 들어갔는데 면접관 목소리가 우렁찼다. 문 밖에까지 들렸다. “머리를 잘랐네요!”라는 사적인 얘기가 들렸다. ‘헙, 틀렸군. 아는 사람이 분명해’라는 생각이 드니까 이상하게 안 떨렸다. 책장에 꽂힌 책 중에 『샬롯의 거미줄』을 꺼내들었다. 책 읽을 여유까지 생겼다. 

  곧 내 차례가 되어 면접실으로 들어가니, 젊은 여자와 좀 나이든 남자 분이 면접관으로 앉아 있었다. 젊은 여자 분이 거의 질문을 했는데 정말 엄청나게 쾌활했다. ‘이렇게나 쾌활할 수 있을까’란 생각이 들 정도였다. 그 쾌활한 분이 자꾸 내 다리를 쳐다봤다. 그것도 뚫어져라. 치마를 입고 간 난 혹시 스타킹에 구멍이 난 게 아닐까, 계속 신경이 쓰였다. 그렇게 면접을 보고 후다닥 도서관 밖으로 나왔다. 다행히도 스타킹에 구멍이 나진 않았다.


  예상을 뒤엎고 머리를 자른 그분이 아니라 내가 붙어서 1월 2일자로 출근을 하게 되었다. 그리고 다시 며칠 뒤 나는, 어린이도서관 관계자분들 사이에서 내가 ‘니트 양말을 신고 온 싸가지’로 통했다는 걸 알게 됐다.

면접 날, 감색 코트를 어렵사리 찾아 입고 가방까지 신경 쓴 나는, 아이 엄마가 되면서 길들여진 습관 때문에 두 가지 결정적 실수를 했더랬다. 아이를 키워본 사람이면 알 것이다. 어정쩡하게 머리를 풀고 있을 수 없다. 아이를 안고 젖을 먹이다 보면 당연히 머리를 묶어야 하고 내 어깨로 아이 머리를 받쳐 트림을 시켜야 한다. 재울 땐 아예 머리를 틀어 올리는 게 가장 좋다. 육아는 처음이라 재울 때나 먹일 때나 거의 아이를 안고 있었더랬다. 내 치렁치렁한 머리칼이 아이 얼굴을 덮도록 둘 수 없지는 않은가? 그러니 내 머리 스타일은 언제나 커다란 집게 핀으로 틀어 올리거나 질끈 묶기였다.  

  또 한 가지, 당시 난 하늘하늘한 스타킹만으론(그것이 비록 기모스타킹이라도!) 절대 밖에 나가지 않았다. 겨울에 니트 양말이야말로 사랑이다. 그렇게 난 아이를 키우며 길들여진 니트 양말과 틀어 올린 머리를 아무렇지도 않게 고수하며 당당히 어린이도서관에 입성했던 것이다. 그래서 그 쾌활하신 분이 내 다리를 뚫어져라 보았던 것이다. (면접 보러 온 사람이 ‘니트 양말’이라니!)

  그리고 면접을 마치고 나오는 내게 다른 직원 두 분이(비교적 가까운 거리에서) 잘 가라고 인사를 했지만, 내가 정말 쌩하니 그냥 나갔다고 했다. 그래서 직원 분들은 니트 양말을 신고 온데다 인사도 받지 않는 내 태도에 적잖이 놀라고 당황했다고 한다. 그런데도! 내가 붙은 건 역시 운명이다. ‘니트 양말을 신고 온 싸가지’인데도 말이다. 그런 상황에서도 편견 없이 붙여주신 관계자 분들께 감사한 마음을 갖고 있다.

  인사에 관해 덧붙이면 어린 시절, 내겐 네 살 터울의 친척언니가 있었다. 언닌 귀에 참 관심이 많았다. 내가 놀러 가면 늘 내 귀를 조물딱조물딱 만지며 잠을 청했다. 내 귀가 일종의 자장가인 셈이었다. 그리고 나를 보면 어김없이 귀이개로 귀를 파주었다. 그러다 어느 날인가 한번은 왼쪽 귀에 귀이개가 너무 깊숙이 들어가 버렸다. 정말 너무 아파 눈물이 왈칵 쏟아질 정도였지만, 언니한테 화낼 수는 없었다. 내가 정말 좋아하는 언니였고 고의가 아니라는 걸 알고 있으니까. 그리고 이건 왠지 비밀로 해야 할 것 같았다. 알려지면 언니가 많이 혼날 것 같은 생각이 들었다. 그렇게 병원도 안 가고 그 치료시기를 놓쳐버렸다.

  이때부터다. 나는 특정 음역대의 소리를 잘 못 듣거나, 습기 차고 축축한 날이나 웅웅거리는 넓은 공간에서는 사오정이 되곤 했다. 그렇다고 그게 삶에 큰 영향을 끼친 건 아니었다. 못 들으면 못 듣는 대로 그냥 지낼 만했다. 그런데 가끔 면접 날과 같은 오해가 생기곤 했다. 

  아주 사소한 에피소드이긴 하지만 난 왠지 ‘니트 양말을 신고 온 싸가지’ 이미지가 마음에 들었다. 도도함과는 거리가 멀고, 개성이나 독특함과도 거리가 먼 난, 뭔가 자기만의 세계가 있는 자존심 센 여성이 된 것만 같았다. 숨겨진 로망이 실현된 듯한 뿌듯함도 살짝 느꼈다. 그런데 이런 베일은 얼마 가지 않아 벗겨졌다. 아니나 다를까 너무도 빨리 내 허당끼를 들켜버린 것이다. 역시 사람의 본질은 쉽게 가려지지 않는다. 아무리 애를 써도 말이다. 도도하고 싶은 욕망은 헐렁한 본질을 앞서지 못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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