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갱춘기와 동행하며 생각·감정 관성 탈출기 #5

낯선 나에게 익숙해지기 - 3화. 오늘 삶의 빈자리에 임플란트를 심다



현실은 예상과 달랐다


2025년 8월 26일, 화요일 오후 3시 반. 시@고 치과병원. 수술대 위로 몸을 뉘었다. 지난 6월, 7개의 상악 임플란트를 마치고 4개월의 인고 끝에 드디어 아랫니 6개를 마저 하는 날. 의치(틀니)의 불편함에서 해방될 날을 고대하며 치과 치료 중 가장 통증이 심한 마취 주사를 기다렸다. 옆에선 연가를 내고 온 아내가 지난번처럼 잘 견딜 수 있을 거라며 용기를 북돋아 주었고, 의사는 2시간이면 끝날 거라며 수술 시간의 공포로부터 해방시켜 주었다. 나 또한 지난 3개월 전 임플란트를 견뎌낸 경험이 있었기에 이번엔 더 수월하리라 믿었다. 하지만, 현실은 늘 예상과 달랐다.


예상과 다른 것이 삶의 본질이라는 사실을 치과 수술대 위에서 고통을 수반하며 다시 한번 확인했다.


윙!!! 윙!!!! 거리는 드릴 소리가 귓가를 파고들었다. 오른쪽 임플란트 수술은 의사의 예측대로 20분도 채 걸리지 않았지만, 문제는 왼쪽이었다. 염증이 많아 마취가 쉽게 풀리는 탓인지, 아니면 신경이 예민한 탓인지, 드릴이 치주에 구멍을 뚫을 때마다 찌릿한 통증이 온몸을 비틀게 만들었고 입을 통해 “아!!!”라는 말이 힘없이 흘러나왔다. 구멍 뚫을 때 들리는 소리가 고통을 상상하게 했었는데, 이번에는 날카로운 드릴이 생살을 파고드는 듯한 통증이 온몸과 생각을 경직시켰다. 몸은 땀으로 흥건해졌고, 땀이 식었다 다시 맺히기를 수차례. 나중에는 몸에서 시큼한 냄새가 날 지경이었다. 아픔을 감추려 몸을 움츠릴 때마다 간호사는 내 입술을 꽉 부여잡았다. 그 압박이 임플란트의 통증을 잊게 할 만큼 괴로웠다. 치주에 쌓여있던 염증을 긁어내는 소리, 뼈를 갈아 넣는 소리, 드릴이 뼈에 닿는 굉음, 이 모든 것이 통증을 더했다. 예상과 달리 3시이라는 긴 시간에 걸친 혈투 끝에 의사는 잇몸을 봉합하며 수술을 마쳤다. 하지만, 한 개의 임플란트는 극심한 염증으로 인해 심을 뼈가 없어 인공뼈를 이식해야 했고, 4개월 후에 다시 수술을 해야 한다고 한다. 오늘 고통을 끝내고 싶었는데 다시 수술할 생각에 지친 몸과 마음은 더 무거워졌다.



갱춘기, 삶의 재건축을 시작하다


나는 이 고통이 비단 치아만의 문제라고 생각하지 않았다. 내 삶에 들이닥친 '갱춘기'라는 거대한 홍역의 한 부분이었다. 치아를 잃고 의치를 끼고 지냈던 시간은 지난 60여 년의 세월의 방치와 무관심이 남긴 결과였다. 내 잇몸에 가득했던 염증은 버려야 할 생각, 치워버려야 할 감정의 찌꺼기와 같았다. 드릴이 긁어내는 소리는 낡고 아픈 과거를 파내는 소리였고, 그 빈자리에 인공 뼈를 채워 넣는 과정은 비어버린 열정과 도전에 새로운 가능성을 이식하는 희망적인 상상으로 채웠다. 수술 시간이 길어지며 마취가 자주 풀려 치통은 심해졌다. 그럴 때마다 의사는 망설임 없이 마취 주사를 더 놓았다. 간호사도 쉬고 싶어 하는 말을 했으나 의사는 멈추지 않고 계속 수술을 진행했다. 더 이상 마취제를 놓으면 환자의 상태가 더 나빠져 수술을 중간에 멈춰야 할지 모른다고 판단한 듯했다. 그런 의사의 판단과 행동에서 나는 내 삶의 고통과 마주할 때 멈추지 않고, 계속 나아가는 것이 결국 나 외의 사람들을 위한 고귀한 모습이라는 깨달음을 얻었다.



의사의 소명 의식, 삶의 방향키를 쥐어주다


많은 의사의 희생정신을 늘 존경하며 살아왔다. 하지만, 이번에 만난 치과 의사는 달랐다. 본인의 예상과 달리 3시간이 걸렸지만, 그는 단 한 번도 대충 하는 모습을 보이지 않았고 말도 가려가며 아껴서 했다. 늘 나를 격려하며 수술을 이어나갔고, 간호사의 투덜거림은 가볍게 넘겼다. 아프다고 하면 미안하다고 말해줬고, 금방 끝나니 잘 참으라고 말해줬으며, 수술이 어느 정도 진행이 되었는지 꼼꼼하게 설명해 안정감을 갖게 해 줬다. 더 감사한 것은 이후 치아에 문제가 생겼을 때 귀책사유를 환자에게 돌리지 않기 위해 수술하는 내내 완벽함을 위해 노력했다는 점이다. 마음에 들지 않는 부분은 임플란트를 빼고 다시 심고 조이는 열정을 보여줬고, "아, 힘든 상황이네. 쉽지 않겠어"라고 혼잣말을 하면서도 환자를 위한 의사로서의 히포크라테스 선서를 잃지 않았다. 환자와 본인을 위해 빈틈조차 허용하지 않는 세심하고 정성스러운 수술은 내게 큰 울림을 주었다. 교직에서 힘들다고 학생, 학부모, 동료에게 책임을 돌렸던 지난날을 반성하게 했다. 임플란트를 통해 내 삶과 교단에서의 아픔을 마주하는 법을 배우고, 전문가로서의 책임감과 소명의식을 되새기게 된 시간이었다.


수술대에서 일어섰을 때, 나는 단순히 새로운 치아를 얻은 것이 아니었다. '갱춘기'가 던져준 불안과 두려움이라는 낡은 생각의 찌꺼기를 모두 긁어내고, 그 자리에 감사함과 새로움, 그리고 책임감이라는 단단한 삶의 뼈대를 이식받았다. 의사에게 "이제 건강하게 잘 살 준비가 되었고, 당신을 통해 전문가의 면모를 배웠다"는 축복으로 받아들이며, 진심을 담아 “고맙습니다.”라고 정중히 인사를 했다. 마취가 덜 풀린 입술과 혀로 인사말을 전해서 정확히 들었는지는 모르겠지만 가려진 마스크 뒤로 입꼬리가 올라갔을 것으로 생각한다. 오늘 겪은 고통은 치아를 위한 것이 아니라, 노년을 위한 새로운 건강과 마음가짐을 위한 귀한 투자였다. 임플란트 수술은 그렇게 내 갱춘기의 종착역이자, 새로운 삶의 출발점이 되었으면 좋겠다.


치과 치료는 다시 받고 싶지 않을 정도의 고통이지만 반면에 내면을 단단하게 만들어주는 방향키를 쥐어줬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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