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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부. 균열의 시작

03화. 나의 좌표가 흔들릴 때

2016년 어느 날 새벽, 세상은 아직 잠들어 있었지만 나는 늘 그랬던 것처럼 깨어나 마라톤 준비를 하고 있었다. 오늘따라 흐린 날씨, 짙은 안개, 그리고 바람 한 점 없는 고요함이 문고리 잡는 것을 방해했다.


‘오늘 같은 날은 몸도 찌뿌 두둥 하니 쉴까?’


내면의 갈등에 아랑곳하지 않고 이어폰에서는 부드러운 클래식 선율이 흘러나왔고, 그 음악 사이로 새어 나오는 중얼거림만이 내면의 갈등을 확인해 주고 있었다.

하지만, 달림에 대한 나와의 약속이 갈등에 문을 냈고 수변으로 향하게 했다.


수변의 수풀 사이 희미한 안개는 보이는 모든 것을 몽환적으로 만들었다.

나는 그 희뿌연 안갯속으로 빨려 들며 천천히 송도 1교 위를 달리고 있었다.

안개는 눈에 보이는 모든 것들을 생각과 차단했고, 오롯이 근육, 숨소리, 생각과 감정과의 대화에 집중하게 했다.

안개가 걷히며 달림과 몽환적인 분위기에서 깨어났다.

하얀 해가 붉은색으로 변하고 있었다.

오묘한 변화의 순간, 멈춘 듯 고요하게 흐르던 물이 눈에 들어왔고 나에게 의미가 되었다.

눈꺼풀이 셔터가 되어 깜빡이는 순간마다 멈춰진 시간 틈으로 의미가 되어 저장됐다.


하늘인지 물인지 경계마저 희미해진 안개 틈 사이로 하늘의 새가 물속을 날고 있었다.
고요한 물속에는 시뻘겋게 떠오르는 아침 태양도 있었고, 40, 50층 고층 아파트의 우월감과 단단함, 그리고 삶을 살아내고 있는 사람들의 다양성마저 녹여내고 있었다.
유연함, 아래로 향하는 겸손의 미덕은 흐르는 물에서 찾을 수 있다면, 멈춘 듯 보이는 물에서는 포용성을 느끼는 순간이었다.


변화 없이 감정 기복만으로 혼란스러운 갱춘기가 그동안 살아온 좌표를 흔들 때,

그날의 물은 내게 그 시간이 얼마나 값진지를 깨닫게 해 주었다.


멈춘 듯 보이는 그 순간은 더 넓은 풍요로움을 품기 위한 깊은 숨 고르기였다.


모든 것을 온전히 품어내는 법을 배우고, 희망과 우월함, 다양성까지 말없이 녹여내며 더 큰 나를 위한 자양분으로 삼는 시간이었다.

삶의 좌표가 갱춘기를 맞으며 균열의 소음은 시작되었지만, 그것은 무너짐이 아닌, 더 넓은 세계를 포용하기 위한 틈을 열어주는 소리였음을 알게 되었다.


그리고 모든 것을 품는 고요한 물이 지혜임을 깨달은 내 마음을 시로 옮겨 보았다.



겸손을 넘어



물은 아래로만 향해 겸손하다고 칭찬하였더니


순간 날아가는 새도 담아내고

영원할 것처럼 우뚝 선 건물도 담아낸다.


변화하는 찰나와 변하지 않을 것 같은 견고함도 담아내는 너


순간과 영원을 융합하는 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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