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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신푸름 Apr 29. 2024

'집중'은 좋지만 '매몰'되지 마

  지난 토요일에 10년 지기 친구를 만났다. 나와의 만남 직전, 전 직장 동료분의 결혼식을 다녀온 친구는 같이 참여했던 다른 동료로부터 여성분을 소개받아 연락 중이라고 했다. 친구는 최근 좋은 기회가 생겨 금융업 쪽으로 이직을 했고 안정적인 직장을 갖춘 상태였다. 누구보다도 잘 되길 응원하는 친구였기 때문에 새로운 만남 또한 좋은 결과로 이뤄지길 응원했다. 


  SNS에서 찾고 저장해 놓은 아기자기한 카페들 중 마음에 드는 곳 한 군데에 가기로 했다. 점심시간이 한참 지나서인지 손님들이 없어서 조용한 분위기였다. 얼음이 가득 담긴 커피를 빨대로 휘저으면서 소용돌이를 만들고 있었는데 문득 이 커피가 내 마음과 비슷한 느낌이 들었다. 마음이 편치않고 이리저리 요동치는 느낌. 나느 바로 마음을 차분히 정리하는 시간을 가지기로 했다. 


  전에는 이런 결정을 하면 침묵 속에서 상대방 모르게 나 혼자 정리를 했었다. 문제는 티가 나도록 얼굴이 굳어지고 분위기도 싸늘해진다는 것에 있었다. 요즘 달라진 것은 일단은 정리가 안되더라도 내뱉어보기로 했다는 것이다. 그러면 대부분은 스스로 정리되는 경우가 많고, 이야기를 듣는 상대방은 나와는 다른 시선에서 본인이 경험했던 것을 토대로 상황을 다시 해석해주는 경우도 있었다. 그래서 내가 경험한 세계에서 협소하게 생각했던 것들을 확장시켜 줬다. '왜 이렇게 마음이 소용돌이치고 야단스러울까?' 이 질문에 답하기 위해서는 최근 나의 모습들을 돌아봐야 했다. 


① 직장에서 큰 일은 없지만 내 능력에 비해서 돌아오는 것이 부족하다는 생각을 계속하고 있다.

② 여자친구 친오빠가 최근에 결혼을 하면서 집을 구하기 위해 준비하신 돈의 금액을 듣고 지금 내 재산 상황과 비교되어 위축되는 마음이 컸다.

③ 최근 부동산 공부를 하면서 '억'단위의 집들을 보러 다녔다. 멋진 매물들을 보여주면서 거래를 성사시키려는 부동산 중개업자들과 그것을 보면서 당장 할 수 있는 게 없어 뒷걸음질 치는 내 모습이 안타까웠다.

④ 이제는 여자친구 부모님을 정식적으로 뵙고 결혼 준비를 진행하기 위한 이야기를 해야 하는데 '미래에 대한 계획'을 물어보실 때 자신 있게 답할 수 있는 부분이 많지 않아 그런 상황을 생각하면 의기소침해진다.


  이런 나의 최근 근황을 친구한테 이야기하고 나니 마음이 정리가 되면서 대부분의 상황에 대한 나의 근원적인 감정이 무엇인지 보였다. '자격지심, 열등감'. 그것이 아닐까 싶었다. 내가 바라는 이상적인 모습이 타인과 사회적인 현상에서 만들어졌고, 현재 내 모습과는 차이가 큰 탓에 위축되기도 하고 안타깝고 의기소침해졌다. 결국에는 불만이 쌓였던 것 같다. '난 왜 아직까지 이런 모습일까, 언제 나는 내가 원하는 삶에 도달할 수 있을까?' 등의 질문으로 동떨어진 이상에 대한 무기력감을 느낀 것이다.


  친구는 내 이야기를 가만히 듣더니 이렇게 이야기했다.


친구 : "네가 답을 찾아가고 있으니 내가 따로 덧붙여할 말은 없는 거 같아. 그런데 이거 하나는 분명한 것 같아. 내가 요즘 느끼는 너는 전보다 굉장히 멋있어."


나 : "(민망하게 웃으며) 내가 전보다 멋있는 부분이 있어?"


친구 : "전에 너는 어디에 내놔도 잘 어울리고 적응하는 사람이었어. 좋게 이야기하면 그렇지만 다르게 말하면 무색무취 혹은 개성이 없다고 볼 수도 있었지. 그런데 이제 지금 너는 하고 싶은 것을 찾아가면서 개성이 생겨서 멋있어지고 있어. 마라톤도 하고, 브런치에서 글도 쓰고, 이런 것들이 사소할 수 있지만 네가 어떤 사람인지 정의 내릴 수 있는 것들이 많아지는 것 같아 좋아 보여."


나 : "그 부분은 나도 전보다 많이 인지하고 나아졌다고 생각하는 부분이야. 다만 이직하는 것도 오래 준비하면서 쉽지 않아 지고 집 구하는 것도 경제적 상황을 봤을 때 어려우니까 남들과 비교하면서 계속 나를 괴롭힌 것 같아."


 친구 : "네가 할 수 있는 능력 안에서 너는 최선을 다하고 있어. 계속 공부도 하고 부동산도 보러 다니고 경제공부도 하고... 나머지는 이제 네가 통제할 수 없는 것들이야. 대부분 시간을 가지고 기다려야 하는 거 아니야? 운도 있어야겠지만, 이제는 네가 할 수 없는 부분에 스트레스받아가면서 책임감을 혼자 짊어지려고 하지 않았으면 좋겠어. 네가 '집중'하는 건 좋지만 거기에 '매몰'되지 않았으면 해."


  친구의 말은 굉장한 힘이 되었다. 그 덕분에 내가 해야 할 일들에 대해서 방향을 잡을 힘이 생겼다. 친구와 헤어지고 집으로 돌아가는 길, 너무 많은 걸 생각하느라 놓치고 있던 것들을 점검하기 시작했다. 욕심부리지 않고, 차근차근. 친구는 나를 응원해 줬고 덕분에 나 스스로를 믿을 수 있는 내적 동기가 생겨났다. 이래서 그 친구를 오래보게 되는 것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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