K-드라마 <이 사랑 통역되나요> 결과의 언어 vs 과정의 언어
우리는 모두 같은 언어를 쓰지만
결코 같은 방식으로 말하지 않는다.
어쩌면 우리는 처음부터 서로 다른 별에서 왔는지도 모른다.
말을 뱉어야 숨을 쉬는 사람과, 말을 삼켜야 안심하는 사람이 만났다.
넷플릭스 드라마 〈이 사랑 통역되나요〉는 로맨틱 코미디라는 외피를 두르고 있지만, 그 중심을 관통하는 화두는 ‘사랑보다 어려운 번역’이다. 일본과 캐나다, 이탈리아를 오가는 이국적인 풍광 속에서 끝내 닿지 않는 두 언어의 충돌이 펼쳐진다.
“내가 알아듣게 얘기해요
약점을 숨긴다고 거꾸로 말하고
홧김에 막말하는 당신의 언어는
나한테 너무 어려워요.”
- <이 사랑 통역되나요> 3화, 주호진
“난… 정리가 돼야 제대로 말이 나오는 사람이에요.”
- <이 사랑 통역되나요> 6화, 주호진
통역사 주호진(김선호 분)은 정리가 되어야 말이 나오는 사람이다. 6개 국어에 능통한 언어의 천재지만, 정작 자신의 감정을 내뱉는 데는 지독히 신중하다. 그에게 말은 ‘결과물’이다. 충분히 고민하고, 스스로 납득하며, 완벽하게 세공된 문장만이 밖으로 나올 자격을 얻는다. 그는 말을 ‘수확’하는 황소자리형이다. 씨앗을 뿌리고 인내하며 기다린 뒤, 가장 단단하고 잘 익은 결실만을 내놓는다. 그에게 정제되지 않은 말은 소음일 뿐이다.
반면 배우 차무희(고윤정 분)는 말하면서 비로소 생각하는 사람이다. 감정이 먼저 튀어나오고, 말은 그 뒤를 다급히 따라간다. 때로는 거칠고 앞뒤가 맞지 않지만, 그것은 가벼워서가 아니라 실시간으로 자신의 세계를 처리하는 방식에 가깝다. 그녀는 말로 세상을 탐구하는 쌍둥이자리형이다. 일단 내뱉고, 흩뿌려진 언어들 사이를 유영하며 비로소 자신의 진심이 어디에 있었는지 찾아낸다.
이 두 사람이 충돌하는 이유는 성격이 달라서가 아니다.
언어를 사용하는 철학이 다르기 때문이다.
어떤 사람에게 말은 결론이고,
어떤 사람에게 말은 과정이다.
이 드라마는 바로 그 두 언어가 충돌할 때
사랑이 어떻게 오해로 번역되는지를 보여준다.
세상에 다른 언어가 몇 개인 줄 아나?
...세상 모든 사람의 수만큼 있지.
사람들은 각자 다 자기 말을 해.
그러니까 서로 못 알아먹고 거꾸로 듣고 막말을 하지.
- <이 사랑 통역되나요> 3화 김영환
세상에는 사람의 수만큼 다른 언어가 존재한다.
그것은 결국 사람의 수만큼 다른 세계가 존재한다는 뜻이기도 하다.
그런데 흥미로운 것은 우리가 대개 자신의 방식만을 ‘정상적인 언어’라고 믿는다는 점이다.
타인을 이해한다고 말하면서 정작 자신의 세계에 끼워 맞추려 하는 것처럼.
말을 아끼는 황소자리는 쌍둥이자리를 보며 “왜 저렇게 생각 없이 말하지?”라고 생각하고, 말로 정리하는 쌍둥이자리는 황소자리의 침묵에 “왜 속을 전혀 보여주지 않을까?”라며 서운해한다. 관계의 많은 갈등은 사실 감정이 아니라 이 ‘번역의 실패’에서 비롯된다.
그런데, 통역사인 주호진은 단순히 외국어만 번역하는 것이 아니다.
차무희 : 그 여자 말대로 난 한 번도 터지지 못한 안 풀리는 배우예요
주호진 : 그 여자 말대로면 앞으로는 잘 풀리겠네요.
불행한 상대에게 마음이 끌리는 남자가 당신을 떠났다는 건데
그건 앞으로 당신한테는 행복만 온다는 거 아니겠어요?
차무희 : 통역만 잘하는 줄 알았는데 해석이 더 좋은데요.
- <이 사랑 통역되나요> 1화
주호진은 차무희의 언어를 번역해 준다. 단단하게 뿌리내린 사람(황소자리)은 흔들리는 사람(쌍둥이자리)에게 현실이라는 지면을 제공한다.
드라마는 중반부로 들어서며 차무희의 ‘가벼운 말’ 뒤에 숨겨진 서늘한 진실을 드러낸다. 그녀는 7살 생일날 엄마가 아빠를 살해하는 장면을 목격했고, 자신을 죽이려는 엄마를 피하다 추락했다. 아이의 정신은 감당할 수 없는 고통 앞에서 두 갈래로 찢어졌다. ‘살해하는 엄마’와 ‘나를 사랑하는 엄마’라는 정보를 처리하기 위해 아이는 기억을 분리(해리, dissociation)했다. 그녀는 생존을 위해 ‘기억하지 못하는 척’하는 연기를 선택했고, 배우가 된다.
촬영 중 사고로 6개월의 공백 후 얻은 호러퀸, 천만 팔로워의 명성도 그녀에겐 가짜처럼 느껴진다. 내가 아닌 다른 존재, ‘도라미’가 이룬 성공이기 때문이다. 그녀는 또 한 번 해리를 선택한다.
이때 그녀가 쓰는 언어는 가면의 언어다. 농담으로 진심을 희석시키고, 막말로 상처를 가린다. 그녀의 말이 깃털처럼 가볍게 흩날렸던 이유는, 그 안에 담긴 진실이 차마 입 밖으로 내어놓기엔 너무도 무거웠기 때문이다.
차무희 씨가 마음에 담아 두고 못 하는 걸
그쪽이 해 버린다는 거네요.
- <이사랑 통역되나요> 주호진
주호진은 그녀의 말과 침묵, 표정과 거짓말 사이에서 진심을 읽어 낸다. 그리고 흩어진 자아를 다시 한곳으로 모으는 ‘닻’이 되어 준다.
흥미로운 반전은 주호진 역시 언어로 상처 입은 존재라는 점이다. 복잡한 가족 관계를 이해하려 썼던 그의 첫 소설이 어머니에게 비난받은 뒤, 그는 자신의 감정을 통제하고 타인의 언어만 정확히 옮기는 통역사가 되었다. 13년 만에 마주한 엄마 앞에서 아무 말도 못 하는 그에게, 이번엔 차무희가 통역사를 자처한다.
두 사람 다 이 나라 말, 저 나라 말 잘하는데
어떻게 아무 말을 못할까?
이번에는 아무 말 전문 통역사가 잘해 볼게요, 믿어 봐요.
-<이 사랑 통역되나요> 차무희
침묵 속에 머물던 황소자리의 감정을 밖으로 끌어내는 것, 닫힌 세계에 균열을 내어 숨 쉴 구멍을 만드는 것. 그것은 ‘과정의 언어’를 쓰는 쌍둥이자리가 해줄 수 있는 구원이다.
결국 사랑이란 서로의 언어, 서로의 세계를 배워가는 기나긴 여정이다.
말이 느린 사람은 상대의 속도에 맞춰 조금 더 말해야 하고,
말이 빠른 사람은 상대를 위해 조금 더 기다려줘야 한다.
번역은 단번에 완성되지 않는다.
수없이 해석하고 고쳐 쓰는 과정을 거친다.
관계도 그렇다.
우리는 모두 다른 별에서 온, 다른 언어를 가진 존재다.
그래서 이해는 ‘일치’가 아니라 ‘번역’에 가깝다.
완벽하게 알아듣는 상태가 아니라
끝내 번역을 포기하지 않는 것,
어쩌면 그것이 사랑인지도 모른다.
[2편 예고]
번역이 멈춘 자리에는 흉터가 남는다. 나의 울타리를 지키기 위해 타인의 세계를 짓밟은 게자리 박연진과, 그 폐허 위에서 서늘한 침묵으로 복수의 칼날을 간 전갈자리, 송혜교가 격돌하는 이야기.
02. 언어의 상처] 말은 어떻게 흉터가 되는가? 〈더 글로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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