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 꿈으로의 초대
나는 꿈을 자주 꾼다.
어릴 적엔 소풍 전날이면 어김없이 이상한 꿈을 꿨다. 꼭 무슨 일이 생겨 소풍을 못 가는 꿈이었다. 그럴 때면 깨어나자마자 안도와 다행이다 하며 뒤섞인 기분으로 하루를 시작하곤 했다.
가끔은 똥 꿈도 꾼다. 보기엔 좀 그렇지만, 이상하게 그 꿈을 꾸고 나면 자잘한 돈이 들어오는 일이 생긴다. 마치 꿈이 “조금 힘들어도, 이득이 있을 거야”라고 속삭이는 듯하다.
지금 살고 있는 집에 이사 온 뒤엔, 이 집이 온통 새빨갛게 불타는 꿈을 꿨다. 너무 생생하고 무서워 친구에게 털어놨더니, 그 친구는 오히려 웃으며 “그거 좋은 꿈이야, 재물이 들어온다더라”라고 위로해 줬다. 꿈이란 게 참 묘하다. 불길하고 두려운 장면도 누군가의 해석에선 행운이 될 수 있으니 말이다.
지난달에는 돌아가신 어머님이 꿈에 나오셨다. 마치 살아계신 것처럼 건강한 모습으로, 따뜻한 미소로 우리를 반겨주셨다. “잘 있었니?”라는 그 짧은 인사가 눈물 나도록 고마웠다. 현실에선 할 수 없는 만남이 꿈속에서는 가능하다는 것. 그 사실 하나만으로도 꿈은 내게 기적이다.
아이들이 타주에 있는 대학에 다닐 때도 꿈은 나를 위로해 주었다. 연락이 뜸해지고, 문득 그리움이 짙어질 때면 아이들이 꿈에 나타났다. 꿈이 자세히는 기억이 안 났지만 깨어나서 기분이 좀 찝찝하면 꿈을 핑계로 아이들에게 연락해서 안부를 묻고 그랬었다, 아이들은 나처럼 엄마를 찾거나 외롭지는 않을까, 잘 지내고 있을까, 그런 염려가 꿈속에서조차 엄마의 심정으로 배어 나왔다.
한때는 연예인에게 푹 빠져 살던 시절도 있었다. 그 시절 꿈속은 말 그대로 천국이었다. 콘서트장도 되고, 팬미팅도 되고, 셀카까지 찍으며 깔깔 웃던 순간들. 현실에선 힘든 일도 많았지만, 잠든 밤만큼은 그렇게 덕질로 위안받았던 소녀 같은 나를 기억한다.
그리고 작년 가을, 내 품에서 떠난 우리 강아지.
아직도 한 번도 꿈에 나타나지 않았다.
그 아이를 그리워하지 않는 날이 없는데, 왜 꿈속에서도 그 모습은 안 보이는 걸까.
혹시 다시 만났다가, 또 헤어져야 할까 봐 내가 너무 아플까 봐 일부러 안 오는 건 아닐까.
그래도 언젠가 한 번만, 꿈에서라도 그 꼬리를 흔들며 달려와주면 얼마나 반가울까.
그 순간엔 아마 울면서도 한없이 웃을 것 같다.
꿈은 종종 내게 말을 건다.
과거의 그리움으로, 미래의 암시로, 혹은 지금의 나를 다독이는 방식으로.
때로는 나보다 나를 더 잘 아는 존재처럼, 조용히 옆에 앉아 마음을 들여다봐 준다.
그래서 나는 오늘도 잘 자고, 잘 꾸려한다.
언젠가 또 한 번, 반가운 얼굴이 나타날까 봐.
혹은 내일의 나에게 작은 힌트를 남겨줄까 봐.
꿈이 내게 전해주는 이야기를, 놓치고 싶지 않아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