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계시민으로서 공유하는 공통의 가치
세계시민주의는 모든 인류를 인종, 민족, 종교, 사상, 문화 등의 차이와 상관없이 공통된 도덕적 가치 및 정치 · 경제적 체제를 공유하는 하나의 공동체로 만들어가고자 하는 이념이라고 정의할 수 있습니다.
세계시민이라는 용어를 처음으로 구사한 인물은 고대 그리스 키니코스(cynic)학파(우리에겐 견유학파라는 번역어로 더 잘 알려진)의 디오게네스(Diogenes)로 알려져 있습니다. 디오게네스 라에르티오스가 쓴 『유명한 철학자들의 삶과 사상』에 따르면 그는 누군가에게 “어디 출신이냐?”는 물음을 받고서 “자신은 세계시민(kosmopolites)이며, 이 세상이 자신의 도시”라 답변했다고 합니다. 이는 어느 폴리스에도 속하지 않은 세계의 구성원으로 해석할 수 있는 동시에 서로 다른 폴리스의 구성원 간의 조화와 공존을 지향하는 시민이란 의미로도 해석이 가능할 것입니다.
당대의 키니코스 학파의 학자들은 자신이 속한 도시 국가를 뛰어넘어 우주(cosmos)와 연관을 맺는다고 선언하고 다녔다 하는데요, 물론 이상의 언급이 현재의 세계시민 개념과는 동일하지 않고, 어느 한 곳에 연고를 두지 않음으로 앎과 지혜라는 우주와 연관을 짓고 살아가는 이를 지칭하는 것이지만 세계시민이라는 인식의 시작점으로서 디오게네스의 선언은 큰 의미를 지니고 있다 할 수 있겠습니다.
세계시민주의가 정교화된 것은 이후 스토아학파 단계에서부터라고 합니다. 스토아학파는 로고스(logos)에 따라 ‘덕성 있는 삶’을 사는 것을 가장 우선시하였습니다. 그들이 추구한 인간관은 자신이 속한 현실적(지역적: polis)인 삶과 자신이 나아가야 할 보편적 삶(세계적: cosmos)을 동시에 추구하는 것이었습니다.
그래서 그들은 전 우주야말로 올바른 이성에 의해 질서 지워진 것이며 온 인류가 사는 진정한 의미의 폴리스라고 주장했습니다. 이에 스토아적 도덕 이념을 가지고 스토아적 삶의 양식을 사는 사람이기만 하면, 그리고 더 나아가 실제로 이런 삶의 양식을 완전히 실현하고 있지는 않더라도 이런 실현의 가능성을 내재하고 있는 사람이기만 하면 기존의 국적, 혈통, 가문, 성, 나이, 신분, 교육 수준과 관계없이 하나의 동일한 폴리스의 시민이라 칭할 수 있다고 말했죠.
이후 로마는 과거 그리스 민족만을 위한 배타적 개념으로 해석될 수도 있는 세계 시민의 개념을 재해석하여 그 대상을 새롭게 규정했습니다. 대표적으로 키케로(Cicero)는 “타인은 그가 나와 같은 인간 종이란 이유 하나만으로 비록 그와 나 사이에는 어떤 혈연적, 지역적, 개인적 관계가 없다 하더라도 나는 그에 대해서 우애와 배려의 관심을 가질만한 충분한 이유를 가진다. 그는 나와 동일한 시민, 즉 동일한 공동체 구성원이기 때문이다”라고 선언하기도 하였다죠.
하지만 키케로 또한 고대 사회의 전통적이고 인습적인 분리에 의한 차별을 받아들이는 입장이며 해당 제도의 철폐 또한 주장하지 않았습니다. 인류의 단일성에 관한 그의 언급은 다분히 수사적인 의미이지 사회개혁에 대한 주장은 아니었으므로 여성에 대한 편견, 노예제도에 대한 인정에 있어서 당대의 일반인들과 마찬가지였습니다.
세계시민에 대한 개념이 현재의 의미로서 이해되고 확대된 것은 18세기 칸트(Kant)의 『영구평화론』을 기반으로 합니다. 칸트는 해당 저서에서 “이방인을 적대시하거나 차별해서는 안된다”고 말하면서 포괄적이고도 통합적인 세계시민권을 주장하였습니다. 또한 문명상태를 유지하기 위해 국가를 구성하는 것이 불가피하듯이, 국가들 사이의 자연적 자유상태인 전쟁상태로부터 평화상태로 진입하기 위해서는 세계시민사회를 구성하는 것이 불가피하다고 보았죠. 칸트는 국가들 사이의 관계는 일시적인 전쟁을 끝내는 평화조약(pactum pacis)을 넘어서 영원히 전쟁을 종식시킬 수 있는 평화연맹(foeduspac cum)을 이루는 것이어야 한다고 주장했습니다. 그는 이러한 이성적 사회가 인간의 자유와 권리를 보장하는 국내법을 요청하고, 그것에 근거하여 시민사회가 구성되며, 그것을 전 세계로까지 확장하면 ‘세계시민사회’, ‘세계시민법’이 실현될 수 있다고 보았으며 누구라도 이성을 공적으로 사용할 때 완전한 공동체나 세계시민사회의 일원이 되리라 생각했습니다.
자, 세계시민이라는 개념이 형성된 과정을 살펴보았으니, 이번에는 세계시민의 핵심역량에 대해 이야기해보죠.
세계시민주의 이념이 21세기에 들어 보다 적극적으로 논의가 시작된 데에는 20세기 후반 이후에 증대된 세계화 · 지구화로 인해 어느 한 개인이나 집단, 국가의 힘만으로는 해결할 수 없는 복합문제를 합리적이고 민주적으로 해결하기 위해 인류 전체의 보편적 가치를 찾아낼 필요가 있었기 때문입니다.
이를 위해서는 현대적인 의미로서의 세계시민성에 대한 기준이 현실적으로 필요해졌습니다. 세계시민성에 대한 논의가 무엇보다 중요한 것은 앞서 언급한 시민의 역할과도 동일하게 이것이 후천적인 학습을 통해 구성될 수 있으며, 이를 위해 제도권 교육안으로 편입되어야 하는 목적이 있기 때문입니다.
이와 관련한 대표적인 학자인 히터(Heater)와 포크(Falk)는 세계시민성에 대한 구분과 층위적 논의를 진행한 바 있습니다. 먼저 히터는 세계시민성을 네 가지로 구분하였는데, 첫 번째는 ‘하나의 인류공동체라는 의식’이며, 둘째는 ‘지구와 지구인에 대한 책임감과 그들을 보호하기 위한 참여의식’, 셋째는 ‘자신이 속한 공동체보다 더 상위에 있는 도덕법칙을 인정하고 수용하는 태도’, 넷째는 ‘세계정부에의 헌신’을 꼽았습니다. 비슷한 논의로 포크 또한 이를 다섯 가지로 확대해 구분하며 ‘전 지구적인 개혁 활동’, ‘경제적인 영역에서 초국가적 활동’, ‘지구 질서의 관리’, ‘지역적 정치의식의 고양’, ‘초국가적인 사회운동’을 꼽았죠.
물론 세계시민성에 대한 기관 및 학자 간 다양한 측면의 논의들이 존재하지만, 핵심적으로 세계시민성을 ‘문화다양성에 대한 이해와 존중을 바탕으로 나와 세계 간의 상호연관성을 비판적으로 인식하여, 지속가능하고 정의로운 세계를 위하여 권리와 책임을 행사할 수 있는 마음가짐’으로 정리할 수 있을 것 같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