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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집밖 백선생 May 25. 2022

권태기 극복을 위한 솔루션 4.

거리감: 존댓말

    권태기 부부인 우리에게, 새로움에 이어 필요한 두 번째는 적절한 거리감이다. 연애고수들이  잘한다는 밀당을 권태기 부부에게도 시도할 필요가 있다. 밀든 당기든 일단은 밀고 당길 수 있는 적절한 공간이 확보돼야 한다. 너무 붙어있으면 밀고 싶기만 해서 당길 어떤 생각도 할 수 없다. 이제는 말을 높임으로써 밀당을 위한 서로의 거리를 확보해야 한다. 서로의 거리가 확보돼야 밀고 당기는 재미를 다시금 신선하게 누릴 수 있다.


  애초에 친구였던 남편과 나는 처음 볼 때부터 말을 놓았다. 한 번 놓은 말은 애인이 돼도, 부부가 돼도 올려지진 않았다. 나를 전도하신 노우호 목사님께서는 내가 결혼할 무렵 서로 말을 올리라고 당부하셨다. 부부끼리 "너, 나"라 하는 관계는 정말 힘들어진다고. 그땐 무슨 말씀인지 몰랐다. 무엇보다 친구였던 남편에게 갑자기 말을 올리자니 어색해서 말을 할 수가 없었다. 그래서 그냥저냥 말꼬리는 수정 못한 채로 지금껏 살아왔다.

  서로가 달달하던 시절에는 편한 말씨가 좋았다. 말을 올렸을 때 느껴지는 거리감이 오히려 간지러웠다. 그러나 권태기에 접어들어 서로의 단점이 못 견뎌지자 이 반말은 점점 거칠어지고 사나워졌다. 여자들이 우유부단한 남자를 싫어하듯, 남자들도 사나운 여자를 싫어한다. 우린 서로에게 유일한 이성이지만, 가장 싫어하는 이성상으로 점점 굳어지고 있었다.

  나도 내가 뱉은 독한 말들이 감당이 안 돼서 쏟아놓고 후회할 때가 많다. 내가 뭐에 씌웠나, 내 사랑을 넘치게 뿜어주어도 모자랄 내 남자에게 뭣하는 짓거리인지 싶었다. 문제는 이게 애들한테까지도 영향이 간다는 점이다. 내가 여기서 멈춰야 한다. 악은 악을 부르듯, 악한 말은 더 큰 악한 말을 부른다. 말은 곧 그 사람이다.


  이제야 노 목사님께서 부부끼리 왜 말을 높이라 했는지가 골수에 박힌다. 말을 낮춤으로서 편한 관계가 되는 걸 넘어서서 함부로 하는 관계가 되는 걸 경계하는 것이다. 부부 사이의 존댓말은 자칫 함부로 할 수 있는 영역 침범의 제동 장치이다. 애정하는 관계에서의 높임말은 존중하는 관계로서 사랑을 주고받는 관계라는 걸 무의식적으로 일깨우기 때문에 말로서 하는 악행을 제어하는 효과가 매우 크다.

  또한 권태에 필요한 새로움의 활력에도 기여한다. 서로에게 무언가가 지긋지긋하다면 뭔가를 바꿔봄으로써 새로움을 시도하는 것이 내 권태기를 이겨가려는 기본 원리이다. 우리가 이미 익숙해진 외모나 성격을 새롭게 할 수는 없지만, 언어생활은 가장 손쉽게 새로움을 시도할 수 있는 것이다.

  말의 힘은 세상의 어떤 힘보다도 크다. 사람을 사귈 때도 서로의 언어가 불편하면, 나 같은 경우는 오래 사귀기 힘들다. 내가 남편과 친구에서 애인으로, 애인에서 남편으로 자연스럽게 관계가 호전됐던 가장 큰 이유가 내 발랄한 언어가 남편을 재미있게 해 주고, 남편의 자상한 말이 나에게 든든함을 주었기 때문이었다. 말은 곧 그 사람이다.


  결혼할 무렵 노우호 목사님께서 내게 당부하시길, 노우호 목사님께서는 입으로는 들어가는 것이든 나오는 것이든 모두 조심해야 한다고 말씀하셨다. 말을 하기 이전에 생각을 조심하라고. 서로에게 존댓말을 하다 보면 생각을 거를 찰나의 시간이 주어질 틈이 있다. 그래서 존댓말을 하는 대상에게는 비교적 말로 실수하는 경우가 적다. 생각의 필터로서 존댓말을 하는 동안 확보되는 0.00000000몇 초의 그 작은 찰나의 시간은 꼭 필요하다.

  생각이 정리되지 않은 채로 급한 맘에 말로 쏟아내다가 그르친 인간관계가 있을 법하다. 지난주 방영된 <우리들의 블루스>에 나오는 미란과 은희의 모습처럼. 내게도 그런 관계들이 꽤나 있다. 말로 먹고사는 직업이기도 하고 원래부터 말하는 걸 좋아하기도 한다. 말이 많으면 당연히 말로 인한 실수가 많을 수밖에 없다. 남편의 평소 소신이 이것이다. 말이 많으면 말로 인한 실수가 많다는 것. 그리하며 남편은 최대한 말을 아낀다. 말을 아끼다 보니 매우 신중하다. 이것이 너무 극화되면 때로는 우유부단해 보이기도 하다. 신속하고 정확한 결정을 할 타이밍을 놓치는 수가 있다. 대신 나는 말이 앞서 경솔한 결정을 할 때가 있다. 이걸 적당히 믹스해야 현재 우리가 겪는 문제의 대안이 될 수 있다.

  문제의 대안으로 내게 내는 과제는 이 순간부터 존댓말 하기이다. 넓은 거리를 확보할 것이다. 최대한 많이 밀어서 아득해질 것이다. 아련할 무렵에 확 당겨서 정신없게 만들어야지. 말은 곧 그 사람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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