난 폐경을 반길 줄 알았다. 매달 귀찮고 아프기까지 한 굴레에서 빨리 빠져나오고 싶었다. 그래서 처음엔 좋았다. 그러나 시간이 갈수록 억울해졌다. 폐경이라기엔 너무 이른 나이였기 때문이다. 아직 내 나이보다는 십 년은 젊게 보는데, 마감재만 짱짱하지 내부는 다 낡아빠진 몸이라는 자각. 난 어쩌다 이렇게 빠른 노화가 온 걸까?
내가 나를 너무 혹사시켰다. 아이를 키우면서 돈을 벌어야 하는 건 해본 사람들은 다 안다. 워킹맘, 그중에서도 어린아이를 키우며 일을 한다는 게 얼마나 극한직업인지를.
아무도 도와주지 않았다. 시어머니는 늘상 전업주부인 딸이 애 둘 키우는 거 힘들어한다며 딸네 집으로 내빼기 일수였고, 애 데리고 친정 가면 싫은 내색 역력한 동생들은 각자 방에 들어가 문 걸어 잠그고 자기 일수였다. 엄마한테 애 맡긴다고 싫어라 하는 동생들 보고 있자면 엄마한테 애 맡기느니 차라리 남이 나을 때가 많았다. 어린이집에 어떤 전염병이 돌아도 애를 꾸겨넣고 일하러 가야 했다. 어린이집 쉬는 날이면, 심청이 동냥젖 얻어먹듯 이 집사님, 저 집사님께 동냥 보육을 맡기는 심봉사 신세였다. 그렇게 그렇게 뚜벅뚜벅 앞만 보며 걸었다. 눈물도 흘릴 틈 없이.
막내는 5개월 때부터 종일 보육반에 맡겼다. 연년생이었던 둘째와 셋째를 업고 안으며, 얘네들도 울고 나도 울고. 큰애는 너무 일찍 애아빠 자리를 대신하고, 너무 일찍 철이 들었다. 큰애의 유년시절은 그렇게 모조리 날아간 채로 나와 함께 동생 육아에 동참하고 있었다.
이젠 어느 정도 애들이 커서 지들끼리 놀게 되면서 내게도 어떤 틈이 생겼는데, 이 시기에 폐경과 더불어 그동안 밀린 골병들이 쓰나미로 밀려와서 내 전신을 할퀴고 있었다. 난 이게 억울했다.
모든 불똥은 남편에게 튀었고 한동안 남편을 마구 괴롭히는 걸로 분풀이를 했다. 그러나 이젠 이게 내 양심을 쥐어뜯는다. 남편도 나이상 열심히 살아온 사람이다. 세상을 쫒지 말고 의미를 쫒자고 시작한 우리가 아니던가! 소명받은 우리 가족 주님께 내어드리리라 다짐했던 내가 아니던가... 남편도 주께 귀한 사람인데, 남편을 학대하는 것도 주님의 자녀를 학대하는 것 아니던가. 생판 남도 사람이라 귀하여 함부로 못할진대, 내 옆지기를 조롱하며 생채기 내는 건 이젠 더 이상은 못하겠다. 사람을 괴롭히는 건 하나님을 괴롭히는 것이다. 이 죄를 받을 생각을 하니 겁도 난다.
이런 생각까지 닿았다는 건 내가 아마 회복되고 있다는 증거일 것이다. 난 많이 아팠다. 맘이 아프니 몸도 아프고, 몸이 아프니 맘이 아팠던 악순환이 계속 나를 망가뜨리고 있었다. 이젠 이 악순환을 끊어야 한다. 때가 되면 다시 피어 내 맘을 환하게 밝혀주는 장미 넝쿨처럼.
몇 년 전부터 남편에게 장미꽃 받기에 그렇게 집착했던 것이 신호였다. "난 이미 젊지 않다."는. 그 무렵 병원에서 갱년기 진단을 받았다. 그 전에는 쳐다도 안 보던 꽃들이 그렇게도 이뻤던 이유가 그것이었나 보다. 이미 젊지 않은 내 몸은 한창 시절의 이쁜 것들에 그렇게 집착하고 있었던 것이다. 내 몸은 내 의식보다 이미 먼저 알아차렸던 것이다. 난 더 이상 젊지 않다는 사실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