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혼 없는 수저놓기의 변신
점심 시간을 이용해 병원에 다녀오느라 식사 때를 놓치는 바람에 오후 1시쯤에서야 혼자 회사 근처 분식집에 갔다.
테이블이 몇 개 없는 작은 식당이라 원래도 자리에 여유가 많은 편은 아니지만, 나처럼 늦은 식사를 하러 오는 사람들이 많은지 그 시간에도 테이블이 꽉 차 있었다. 마침 들어가자마자 운 좋게 자리 하나가 비는 바람에 다행히 나는 기다리지 않고 바로 테이블 하나를 차지할 수 있었다.
하지만 그것이 손님 물갈이 타이밍의 마지막 테이블이었던 모양이다. 그 뒤로는 쉽게 자리가 나지 않았다. 점심시간을 더 초과하기 전에 후다닥 먹고 사무실로 돌아가야 하는 사람들은 오래 지체할 수 없어 금세 포기하고 나가버렸다.
4명이 앉을 수 있는 테이블을 혼자 떡하니 차지하고 있던 나는 좀 민망해졌다. 그래서 주인 아주머니가 다른 손님 한분이 합석해도 괜찮냐고 물어보자 기다렸다는 듯 냉큼 상관없다고 말했다. 곧 한 여성분이 쭈뼛쭈뼛 내 맞은편 대각선에 앉았다.
이런 합석은 혼밥을 하다보면 종종 일어나는 일이라 딱히 어색할 것도, 반가울 것도 없다. 이내 앞에 사람이 있다는 것조차 잊고 음식이 나오길 기다리며 핸드폰을 들여다보는 데 열중하고 있던 찰나...
어느 순간 내 앞에 뭔가가 조심스럽게 쓱 내밀어 진 것을 느꼈다. 냅킨 한장, 그리고 그 위에 올려진 숟가락과 젓가락 한 쌍이었다.
너무 뜻밖이라 제대로 말도 못하고 감사함과 놀라움이 뒤섞인 톤으로 "어머나" 한마디만 겨우 내뱉었다. 맞은 편 여성이 멋쩍은 듯 수줍게 웃었다. 목에 사원증을 걸고 있는 걸 보니 근처 빌딩에서 근무하는 직장인일 테고, 대학생 같아 보이는 앳된 얼굴을 보니 막내 직원인 것 같았다. 어쩌면 인턴사원일지도 모르겠다.
직장에서 밥 먹으러 가면 한창 수저를 놓고 다닐 때이다보니 과장님처럼 보이는 나에게 습관적으로 무심코 건네준 걸까. 아마도 내가 자리를 공유해준 게 고마워서 보은(?) 차원에서 그런 것일테지. 어느 쪽이든 그 상황이 너무 재밌었다.
나도 뭔가 이대로 질 수 없다는 생각마저 들어서 적당한 타이밍을 노려 공손히 물을 따라 드렸다. 컵으로 졸졸 흐르는 물을 지켜 보면서 그 여성분도, 나도 다소 민망하고, 웃기고, 재밌는 이 상황 때문에 함께 쿡쿡 웃었다. 남의 컵에 물을 채우고 남의 수저까지 챙겨줘야 하는 그 영혼 없는 행동들이 이렇게나 즐거운 진심이 될 수 있다니.
내가 먼저 다 먹고 일어나야 했을 때 우리는 서로 두 눈을 마주치며 진심을 담아 헤어짐의 인사를 나눴다.
뉘신지는 모르지만, 근처에서 일하니 언젠가 또 이 분식집에서 마주칠 날이 있겠죠. 우리 그때 반갑게 인사해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