매장당할 것인가 싹을 틔울 것인가
나의 작은 아버지는 월남전 참전용사였다.
전역 후 취직했던 철광석을 캐는 철광에서 발파 사고로 한쪽 발의 발가락 다섯 개를 다 잃으셨다.
결혼 후 신혼일 즈음, 딱 서른 일 때였다고 했다.
그리고 세월이 흐르면서 고엽제 후유증으로 피부병을 얻으셨다.
월남전 참전 당시, 위문공연이 있었던 모양인지
아직도 활동이 활발한 노사연 가수님이랑 찍은 사진은 선명하게 앨범에 남아 그때의 젊음을 박제한 듯 증명해 준다.
그러나 작은 아버지는 국가유공자 선정에서 탈락되었다.
입대 기록은 있는데, 전역 자료를 찾지 못하겠다는 당국의 설명이 끝이었다.
어린 아들 둘, 젊은 아내. 그리고 일터에서 장애를 얻고 고엽제 후유증으로 고통받던 작은 아버지는 그 누구도 원망을 하지 않고 모든 것을 아무 거역 없이 받아들였다.
당시, 나라를 상대로 소송을 걸거나 이의를 제기할 방법이 지금처럼 쉽지 않았던 것도 한몫했을 터.
작은 아버지는 재활 후 의자 공장에 취직해 성실하고 정직하게 젊음을 보냈다.
어린 내가 봐도 멋진 삶에는 땀이 필수구나 싶었다.
아버지에게 받아보지 못한 용돈을 작은 아버지에게 자주 받았고, 시대가 변하니까 컴퓨터 배워야 한다며 방학이면 컴퓨터 학원 등록도 해주셨다.
다들 슈퍼카미트 운동화 신을 때 갈색 가죽 단화를 선물해 주고, 머리핀 같은 액세서리는 색깔별로 수십 개를 보물 상자 안에 모을 수 있게 적극 지원해 주셨다.
사촌 동생들이 아직 아기였을 때라 내가 동생들을 이뻐해 주고 놀아줄수록 나에게 더욱 큰 대가로 돌려주셨다.
내가 대학을 졸업하고 사촌들이 중, 고등학생 때.
작은 아버지 나이 쉰도 되기 전에
회사 출근과 동시에 심정지로 돌아가셨다.
많은 죽음을 겪어보지는 못했던 나였지만
작은 아버지의 죽음만큼 허무한 죽음을 본 적이 없다.
출근했던 사람이
그날부터 퇴근을 안 하는 상황을 무어라 설명할 수 있을까...
삼촌을 보낸 내 슬픔이 너무 커서
더욱 힘들었을 작은 엄마와 사촌 동생들의 아픔을 헤아릴 그릇도 못되었다.
훗날 시간이 흘러 생각하니 그때 많이 보듬어주지 못하고 위로해 주지 못한 게 참 미안함으로 남았다.
어두웠고 암담했을 사춘기를 아버지 없이 오히려 단단하게 살아 낸 사촌들이 늦게서야 대견하게 느껴졌다.
얼마나 힘든 시간이었을까.
멈추고 싶었던 적도 있었을 텐데..
누나로서 아무런 힘도 보탬도 못되어준 게 가슴에 남았다.
나는 작은 아버지에게 받은 사랑이 너무 커서 내 슬픔만으로도 감당이 힘들었다고 생각했는데
어린 동생들과 작은 엄마에겐 삶이 걸린 문제였던 것이다.
시간이 흐르고 매년 작은 아버지의 기일이 다가오면 제사에 올릴 술은 내가 준비해 간다.
작은 엄마는 술을 따르면서 "당신 이뻐하는 ㅇㅇ이가 사 온 술에 실컷 취해서 쉬다 가라"시며 한 마디 하신다.
이제는 어엿한 사회인이 되어 가정을 일군 동생들의 그 어두웠던 시간을 되짚어보면 내 마음은 쓰린데 오히려 녀석들은 덤덤하다.
매장된 시간이 아닌, 파종이 된 시간으로 보낸 듯하다.
춥고 눅눅한 어둠 속에 매장되지 않고, 꾸역꾸역 자라 나와 싹을 틔운 동생들이 대견하고 자랑스럽다.
요즘, 류시화 작가님의 에세이를 읽는 중인데
깊은 울림을 주는 문장을 만나서 힘든 시간을 잘 버텨낸 사촌 동생들의 이야기를 회상해 보았다.
혹시 힘든 시기를 지나고 있다면,
어둠 속에 나를 매장시켜 버릴 건지
씨앗이 되어 파종의 시간을 보내고
빛을 향해 자라 나올 건지는 자신이 결정해야 한다.
아무것도 하지 않는 것과 버티는 것은 다른 거라고 생각한다.
청각과 후각을 살리고 저 밑바닥으로 뿌리를 내리는 버팀을 보내야 한다.
보고 듣고 뿌리내리는 일이 나에게는
읽고, 듣고, 쓰는 일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