스페인 바르셀로나 Track.71 Madeleine Love - 치즈
2019. 11. 24 (일)
바르셀로나 거리와 저녁노을의 벙커
Madeleine Love – Cheeze
오늘같이 싱그러운 날엔... 길거리 차도 별로 다니지 않아
오늘같이 햇볕 좋은 날엔... 매일 걷던 거리도 지겹지 않아
- Madeleine Love -
오늘같이 싱그러운 날엔,
따뜻한 햇살을 이불 삼아 아침까지 잠을 청한다.
바람이 많이 불던 어제의 날씨와는 다르게 오늘의 날씨는 햇살이 안온하게 내리쬐고 있었다. 가우디 투어에서 꽤 피곤했는지 오전에는 잠을 몰아자고 늘그막이 일어나 하루를 남들보다 조금은 늦게 시작했다. 오늘의 BGM인 치즈의 'Madeleine Love' 노래와 날씨가 찰떡이었다. 싱그럽다고 한 마디로 표현할 수 있는 날씨였다. 안온한 기운이 창문을 넘어 호스텔에 가득 메우자, 어제보다는 조금 가벼운 옷차림을 주섬주섬 입으며 나갈 채비를 했다.
오늘같이 햇볕 좋은 날엔,
매일 다니던 거리도 지겹지 않다.
숙소와 카탈루냐 광장을 잇는 가르시아 거리는 일요일이라 한산하기만 하다. 바르셀로나에 도착해 여러 번 다녔던 거리도 오늘은 새삼스레 새롭게 느껴졌다. 분주하게 하루를 시작하던 자동차들이 없어서 그런가? 차가 별로 다니지 않는 거리를 걸음으로만 느리게 느껴보는 시간이 새로웠다. 거리를 둘러보니 일요일의 대부분 상점들은 문을 닫았다. 유럽에서 일요일은 평소와 다른 느낌의 거리를 마주할 수 있다. 주말에 더욱 북적이는 한국의 번화가와는 결이 다르다. 오히려 부적이지 않은 거리 덕분에 여유로운 발걸음을 디딜 수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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차가 별로 다니지 않는 거리이니, 발걸음 따라 마냥 걷다 보며 다니기로 한다. 버스나 지하철도 이용하지 않고 그저 앞으로 걸으며 바르셀로나의 풍경을 눈에 담아보기로 했다. 이 날은 뚜벅이 여행자가 돌아다니며 여행하기 너무 좋은 날씨였다. 걷는 행위 자체가 여행이 되는 순간, 오늘은 이 순간을 즐겨보기로 했다.
바르셀로나 개선문, 고딕지구의 골목들, 카탈루냐 음악당과 바르셀로나 대성당을 가본다. 길을 걷다 보며 보이는 골목에 잠시 멈춰 서서 사람들이 살아가는 작은 소음에 귀를 기울여본다. 나는 알아들을 수 없는 스페인어로 대화를 나누는 사람들, 주말 오후의 여유를 한껏 즐기는 생활의 소리, 광장을 잔잔하게 채우는 버스커의 음악소리까지. 느리게 걷는 뚜벅이 여행자에게 여행지의 작은 소음은 여행 기억의 훌륭한 배경음악이 된다.
한동안 걸었던 발을 잠시 쉬어줄 겸, 작은 광장의 벤치에 앉아 버스커의 음악소리를 반주삼아 나른한 햇빛을 받아본다. 딱히 어디로 갈지 정하지 않은 일요일의 오후, 바르셀로나의 일요일 그 자체를 흘려보내본다.
바르셀로나 노을은 벙커(Bunker)에서!
오늘같이 햇볕 좋은 날엔, 자고로 노을이 기대되는 법이다.
오후에는 마드리드에서 넘어온 동행과 함께 바르셀로나의 저녁노을을 보기로 했다. 자고로 바르셀로나의 저녁은 벙커에서 봐야 하는 법! 우리는 카탈루냐 광장에서 버스를 타고 벙커로 향했다. 버스기사에게 벙커라 물어봤지만, 분케르(?)라고 말해야 알아들었다. 구글맵에서 가리키는 곳과 다른 정류장에서 사람들이 먼저 내렸다. 먼저 내린 사람들과 달리 구글맵을 믿은 우리는 구글맵이 알려주는 정류장에서 내렸는데, 그곳은 벙커의 뒤편으로 이어져 올라가는 길이었다. 덕분에 벙커의 뒤편에서 바라보는 바르셀로나의 전경을 볼 수 있었다. 벙커 뒤편의 전경은 마치 서울 낙산공원에서 한성대 쪽을 보는 느낌이었다.
익숙한 서울의 느낌을 뒤로하고 벙커의 앞편으로 오니, 이제야 바르셀로나의 새로운 느낌을 받는다. 저 멀리 지중해 수평선이 보이고, 바르셀로나 전경이 눈 앞에 펼쳐진다. 바둑판 거리 블록 사이에는 사그라다 파밀리아 성당이 존재감을 뽐내고 있다. 벙커에서 노을을 기다리며 바르셀로나 전경을 보면, 계획도시로서의 바르셀로나 진면모를 바로 볼 수 있다. 정돈된 구역, 구획에 따라 블록처럼 맞춰진 건물들, 그리고 예상치 못한 지점에서 보이는 가우디의 역작들까지. 그저 심시티 게임을 좋아하는 내가 봐도 바르셀로나 맵(Map)에 빠지는데, 도시계획이나 건축 전공자들은 바르셀로나가 얼마나 멋져 보일까.
바르셀로나의 전경에 한참이나 빠져 바라보고 있으니, 어느새 하늘은 서서히 검푸른 밤을 끌어들여왔다. 검게 채워지는 하늘을 바라보며 시선을 서쪽으로 돌리니 태양은 붉은 물감을 뿌린 듯 노을을 찬란히 빛내며 바다를 넘어가고 있었다. 붉은빛은 검푸른 하늘에 점점 밀리는 듯 천천히 잠식당하고 있었다. 그 모습은 마치 하늘에 그라데이션을 준 듯한 광경이었다. 벙커 위에 서있는 사람들의 그림자로 하늘과 땅의 경계가 생기는 광경에 벙커에 오길 잘했다는 생각을 들게 해주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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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늘같이 여유 있는 날엔,
그저 잠도 푹 자고, 따뜻한 햇빛을 즐기고, 아름다운 저녁노을을 눈에 담으면 그만이다.
뚜벅이 여행자답게 느리게 걸으니, 도시가 느리게 걷는 자에게만 주는 모습을 볼 수 있었던 하루였다. 매일 걷던 거리도 지겹지 않고, 괜히 공원이라도 돌아다니고 싶었던 날씨 좋던 날이 주는 여유를 느꼈다.
이제 곧 끝나가는 여행에서, 오늘과 같은 여유는 최대한 느끼고 가야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