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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한스 Mar 25. 2023

송태섭의 인생은 언제나 미스매치 중이었다

영화 리뷰 <더 퍼스트 슬램덩크>

<더 퍼스트 슬램덩크>를 4번이나 극장에서 봤다. 그것도 더빙판과 자막판 2번씩. 극장으로 무려 4번이나 발걸음을 향하게 만든 건 슬램덩크 팬이라서인 것도 있지만, 가장 큰 이유는 주인공인 송태섭의 서사와 함께 펼쳐지는 산왕공고 경기가 잊을 수 없기 때문이다.


송태섭의 서사를 한 단어로 요약하자면 이렇다.

'미스매치(miss-match)'


미스매치:
신장 혹은 포지션 격차가 커서 1:1 대결하기 힘든 형태. 다양한 공격/수비 전략에 활용하기 위해 변칙적으로 쓰인다


송태섭은 언제나 미스매치 중이었다.

송태섭의 키는 168cm로 작은 편에 속한다. 그는 언제나 자신보다 크고 실력이 좋은 상대들과 대결해 왔다. 영화 속 매치업 상대인 산왕공고 이명헌, 도내 최강의 포인트 가드 해남대 부속고의 이정환, 상양고교의 선수 겸 감독 김수겸 등 쟁쟁한 실력자들을 상대해 온 송태섭이다. 그리고 그의 가장 힘든 대결의 상대는 자신의 친형 '송준섭'이다.





형만한 동생은 없군


송태섭은 언제나 이 말을 이겨내야 했다. 자신보다 더 뛰어난 농구실력을 가졌던 에이스 '송준섭'을 이겨내야 했다. 초등학생 시절부터 농구부 에이스였던 형은 자신이 기댈 수 있었던 사람이자, 자신이 넘어서야 했던 상대이기도 했다.


이 영화의 첫 장면이 태섭과 준섭의 1:1 대결부터 나온 이유가 여기에 있다. 그리고 이 장면에서 이미 송태섭 서사의 결말을 알려준다. 송태섭이 송준섭의 수비를 악착 같이 뚫어내고 마침내 골을 넣는 장면에서 이미 송태섭은 형을 이겨낼 것을 암시한다.


송태섭은 자신과 함께 더 농구하지 않고 친구들과 배낚시하러 떠난 형을 미워한 어린 마음에 "영원히 돌아오지 마"란 말로 떼를 썼지만, 정말로 형이 돌아오지 않는 것에 대해 가장 큰 죄책감을 가지고 있었다. 아버지에 이어 형까지 잃은 어머니에게 태섭은 늘 죄송한 마음을 가지고 있었을 테다. 오죽하면 산왕전과의 시합 전날 어머니께 쓴 편지에 '생일을 맞이한 이 맘 때쯤 살아있는 게 자신이라서 죄송하다'라고 쓰려했을까. (물론 이 편지는 휴지통에 버려버리지만)


태섭은 형처럼 되고 싶어 한다. 형의 농구부 등번호인 7번을 다는 것도, 형처럼 월간농구 잡지를 보며 농구선수로서 꿈을 키우는 것도, 형의 손목아대를 경기 때마다 차는 것도. 팀을 승리로 이끄는 이 집안의 주장인 형처럼 되고 싶어 하는 태섭의 마음이 드러난다. 동경의 대상이자 이겨내야 할 미스매치 상대인 형을 이기기 위해 태섭은 연습하고, 연습하고, 연습한다.


그렇게 아버지가 사망하면서 집안의 부주장 역할을 맡게 된 송태섭은 주장인 준섭이 실종(사고사) 되고 난 이후에는 집의 주장이 된다. 어린 시절 꼬꼬마 태섭은 어느새 시간이 흘러 형만한 키를 지닌 고등학생이 되어 어머니의 슬픔을 보담을 수 있는 집안의 주장으로 거듭난다. 자신의 미스매치 상대인 형의 그늘에서 벗어나 태섭은 고난과 역경도 뚫어낼 수 있는 사람으로 성장한다.




문제아, 악당들을 만나 최강을 꺾다


송태섭은 농구부에 입부해 선배들로부터 문제아 취급을 받는다. 태섭은 아웃사이더 기질을 지녀왔다. 전학 오자 일진들에게 린치를 당하고, 이사 온 동네에 적응하지 못하며 같이 농구할 친구도 없이 혼자 농구하는 태섭이었다. 그런 그에게 자신의 농구를 함께할 악당들을 만난다.



독불장군 주장 채치수, 자신과 대판 붙은 정대만, 대회 전까지 말도 나눠본 적 없던 서태웅, 그리고 미워할 수 없는 농구천재 풋내기 강백호까지. 문제아는 이들과 함께 산왕공고가 이기길 바라는 관객들의 바람을 무너뜨릴 악당으로 등장한다.


자신의 성장과 실력을 믿어주는 가족, 매니저 한나, 그리고 함께하는 동료들 덕분에 태섭은 스스로를 믿고 산왕공고의 공고한 존 프레스를 뚫어낸다. 포인트 가드인 태섭 또한 동료들의 실력을 믿고 적재적소에 그들을 활용하며 고교최강 산왕을 이겨낸다. 태섭을 향한 동료의 믿음은 그의 미스매치 상대 이명헌을 이겨내게 만든다. 고교 최고의 포인트가드인 이명헌도 송태섭에게 인텐셔널 파울(고의성 파울)을 일으킬 정도로.


그렇게 문제아들로 모여있는 언더독 북산은 탑독 산왕공고를 극적으로 이긴다. 송준섭이 최강 산왕을 꺾고 TOP의 자리로 올라서는 미래를 꿈꿨던 그 자리를 송태섭이 형을 대신했다. 경기가 끝나자마자 송태섭이 하늘로 시선을 옮긴 건... 아마도 하늘에서 자신의 경기를 바라본 형에게 인사를 한 게 아니었을까.




송태섭은 언제나 미스매치 중이다


산왕공고와의 경기 이후에도 송태섭은 언제나 미스매치 중이다. 미국으로 간 이후에도 고교 최고 실력을 갖춘 동갑내기 정우성과의 매치업으로 영화는 끝맺는다. 송태섭은 앞으로도 계속 미스매치로 경기할 것이다. 자신보다 키도 크고, 실력도 좋은 선수들과 상대하는 일로 가득할 테다. 그럴 때마다 송태섭은 자신의 손바닥을 볼 것이다. 그리곤 심장이 쿵쾅거려도, 힘들어도 끝까지 있는 힘껏 강한 척할 테다. 그게 송태섭의 미스매치 승리법이니까.


송태섭의 미스매치를 극복한 이야기는 녹록지 않은 현실과 미스매치를 펼치는 우리들에게 다시금 용기를 불어 일으킨다. 언제나 자신보다 신장이 더 크고, 실력이 더 좋은 상대들과 매치업에서 이긴 송태섭처럼 우리도 할 수 있음을.



"우리들은 강하다"

송태섭이 차기 주장으로서 팀원들에게 파이팅을 건네는 말처럼. 자신을 믿고, 있는 힘껏 강한 척하며, 미스매치를 극복해 나가 봐야겠다. 좌절감과 부정적인 우려로 머릿 속이 가득할 때, 송태섭과 북산고 농구부 문제아군단의 기적 같은 이야기가 힘이 될 테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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