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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월급쟁이 보보 Dec 31. 2020

모성애, 잔인하지만 가장 큰 축복

영화 '케빈에 대하여' 리뷰

넷플릭스에서 우연히 발견한,

나의 정신을 한 동안 멍하게 만든 영화가 있다.


'케빈에 대하여 (We need to talk about Kevin)'


청소년 총기 사건이라는 미국 사회의 고질적 문제를 다루고 있는 영화이다. 충격을 주는 장면들, 배우들의 훌륭한 연기, 선과 악에 대한 고찰 등 다룰만한 내용이 많은 영화이다.

하지만, 영화를 본 후 내 머릿속 자리 잡은 질문은

"모성애는 절대적인 악함까지도 포용해야 하는가?"이다.

바로 이 부분에 초점을 맞추어 감상평을 써 보았다.

*영화의 스포일러가 감상평에 포함되어 있습니다!





'케빈에 대하여' 넷플릭스

소시오패스의 범죄, 부모의 책임인가?


영화의 내용은 이렇다.

자유로운 삶을 살아가던 '에바(틸다 스윈튼)'는 토마토 페스티벌을 즐기던 중 예상치 못하게 아들을 갖게 된다. 성장과정 내내 반항적이던 아들, '케빈(에즈라 밀러)'.

처음에는 투정에 가깝던 그의 행동은 시간이 갈수록 악해진다. 그러면서 점점 에바와의 갈등은 심해진다. 청소년이 된 케빈 행동은 더욱 교묘하게 에바를 괴롭힌다.

결국 가족과 교우들을 대상로 살인라는 끔찍한 범죄를 저지르게 된다. 케빈의 행동은 절대적인 악함에 가깝다. 에바는 절대악의 어머니가 되어 심한 죄책감을 느끼고, 이웃들은 그녀에게 책임을 묻는다.


이 영화를 보면 많은 사람들에게, 특히 미국인들에게 머릿속에 떠오르는 것이 있을 것이다.
해가 갈수록 더욱 심각해지는 미국 내 총기 사건이다. 영화에서는 총이 활로 바뀌었을 뿐, 영화 속 참사는 미국에 자주 발생하는 사건들과 매우 닮아있다.
이를 조금 더 확장시키면 사회 부적응자, ‘소시오패스’ 대입하여 생각해 볼 수 있다.


우리나라에서도 연쇄적으로 살인을 저지르거나 아무 이유 없이 대낮에 흉기를 휘두르는 범죄들이 늘어나고 있다. 사람들은 이에 대한 책임을 주로 사회구조나 불우한 가정환경에 돌린다.


이 영화는 ‘소시오패스들의 범죄에 대한 책임은 그들의 부모에게 있다.’ 가정에 의문을 던지게 한다.

'케빈에 대하여' 넷플릭스

우리는 어린 아이나 학생들이 잘못을 저지르면 그 아이보다는 부모를 먼저 욕한다.
특히 한국사회에서는 이러한 일들이 더욱 자주 생긴다. 물론 부모에게도 예방을 할 수 있었다는 책임이 있지만, 근본적인 책임은 잘못을 저지른 학생 본인에게 있다.


마찬가지로 끔찍한 범죄가 발생했을 때, 이것을 주변의 환경에 책임으로 돌리게 되면 죄의 본질적인 악함이 희석된다. 영화 속 에바는 순식간에 남편과 딸을 잃은 피해자지만 가해자처럼 사회의 비난을 받는다.
평소에 케빈에게 학대를 일삼던 부모도 아니었고, 좋은 관계를 유지하려고 노력하지만 약간은 부족한 어머니일 뿐이다.


우리는 에바에게 모든 책임을 물을 수 있을까?


모든 책임이 있다고 볼 순 없다.

하지만, 어머니는 자식의 악한 행동 바로 잡을 수 있는 존재라고 생각한다. 특히 아들에게 있어 어머니라는 존재는 아버지보다 더욱 강력하다.



모성애, 잔인하지만 가장 큰 축복


'어머니'라는 단어를 생각하면 무엇이 떠오를까?

가장 처음 나오는 단어는 아마 '헌신'일 것이다.
어머니들의 헌신은 어떠한 사랑보다 강하며 사회적으로 당연시된다.
하지만, 어머니들도 감정을 지닌 인간이며 아무리 사랑한다고 해서 자식들이 밉지 않을 때는 없을 것이다. 그리고 에바와 같이 원치 않은 임신, 자신의 인생에 대한 회의감 등으로 남들에 비해 약한 모성애를 가지고 있는 어머니들도 분명 존재한다.
그리고 아이들은 어머니에 대한 애정을 항상 갈구하며 확인받고 싶어 하는 본능을 갖고 있다.

'케빈에 대하여' 넷플릭스

지금도 나는 무언가 잘한 일이 있을 때, 어머니에게 먼저 전화를 걸게 된다. 어린 시절에 했던 공부들, 착한 일들 모두 어떻게 보면 어머니에게 인정을 받기 위해서였다고 볼 수 있다.


영화 속의 케빈은 이러한 본능이 남들보다 강했던 반면에 에바는 약했고 이는 둘의 관계를 악화시켰다. 케빈이 어릴 때 했던 극단적인 반항들이 사실은 어머니에게 관심을 받고 싶은 행동이었을지 모른다.
이러한 모습들은 기저귀를 계속 차고 있는 모습, 동생에 대한 질투 등으로 영화 구석구석에서 나타난다.
케빈의 활에 대한 집착도 아팠을 때 에바의 품에서 들었던 로빈훗 이야기가 원인인 것 같다.


마지막 장면을 제외하면 영화 내내 에바는 케빈을 안아주지 않는다.
유일하게 케빈에게 따뜻하게 대했던 때가 로빈훗 동화책을 읽어주었을 때였고, 무의식적으로 크게 각인된 것으로 생각된다. 에바는 ‘악한 엄마’는 아니었지만 ‘좋은 엄마’도 아니었다. 그렇기 때문에 아들의 죄를 자신의 죄로 받아들이고 속죄하며 살아간다.

모성애라는 잔인하지만 축복인 운명을 결국 받아들이게 된다.

'케빈에 대하여' 넷플릭스

희망의 존재, 어머니


모성애는 이성적으로 이해할 수 없는 본능이라고 생각한다.
우리가 아무리 큰 잘못을 해도 어머니는 결국 우리의 편이 되어준다. 영화 속 에바처럼 “왜?”라는 질문만을 던진다. 어머니에게 답은 중요하지 않다. 어떠한 대답을 하여도 영화 속 장면처럼 말없이 안아주는 그런 존재이다.
세상 사람들이 모두 미워하는 끔찍한 범죄자라도 모성애라는 본능은 쉽게 사라지지 않는다.


영화가 담고 있는 의미가 많고, 강렬하게 표현을 하였기 때문에 모든 얘기를 다 정리하지는 못하였다.
하지만, 계속해서 머릿속에서 기억나는 영화로 자리 잡았다.



소시오패스 범죄자들을 옹호하고 이해하고 싶은 마음은 전혀 없다. 하지만, 이들의 이유가 어떻든 자신이 무슨 일이 있어도 믿어주는 존재 한 명이 있다는 사실만으로도 그들에게 아주 작은 개선의 여지라도 있지 않을지 희망을 가져본다.
또한, 내가 어떤 상황에 처해도 말없이 안아주는 사람이 아직 나에게 존재한다는 점에서 새삼 감사함을 느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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