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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BoBooBoo Jul 11. 2023

그저 매일 캔 커피 하나를 공짜로 먹고 싶었을 뿐이었다

재테크 01. 처음으로 돈을 모으고 싶어진 이유

2011년 봄. 대학생 2학년 때의 일이다.


대학생이라면 한 번쯤 만나게 되는 지옥 같은 9시 수업. 고작 1~2년 전인 고등학생 때는 8시가 되기도 전에 학교도 잘 갔었는데 (물론 부모님의 외침이 있었기에 가능했겠지만), 어째서인지, 왜 때문인지, 도대체 9시 수업을 가는 것도 힘들고 제대로 된 정신력으로 듣고 있기가 너무 힘들었다. 물론 지금 생각하면 다 이유가 있긴 했다. 매주 한두 번이었지만 새벽 시간에 하는 우리 형 박지성의 맨체스터 유나이티드 경기를 챙겨봐야 했고 매일은 아니었지만 저녁엔 친구들이랑 놀아버려서 과제는 항상 새벽까지 해야 했다. 그래도 나는 학점을 잘 받고 싶은 훌륭한 학생이니까 이겨내야만 했다. 이때부터 커피와의 인연은 시작되었다.



한 줄기의 빛. 고카페인 캔커피 "조지아 오리지널"


아침 수업 시간을 버티기 위해서 정말 온갖 커피를 다 마셔본 것 같다. 그래봐야 가난했던 당시의 나에겐 1500원 이상 넘어가는 커피는 보기에 없었긴 하지만 매점에는 생각보다 수많은 커피들이 있었다. 게다가 학교 안 매점은 세금이 일부 면제되던가 뭐라던가 해서 외부의 마트들보다 더 저렴했다. 여러 가지 커피로 나의 피곤함을 저지할 수 있는지 실험을 해봤다. 조지아 맥스, 카페라테, 레쓰비, 맥스웰 그리고 우유 속에 뭐 어쩌고 저쩌고 시리즈들... 그 어떤 것도 피곤함을 날려주지 못했다. 그러던 중 드디어 나에게 딱 맞는 캔커피가 나타났다. 조지아 오리지널 240ml. 드디어 찾았다!



600원짜리 캔 커피를 매일 마셔야만 해


지금의 내가 그때의 나를 만난다면 돈도 없으면서 무슨 커피를 그렇게 마셔대냐고 한 소리 했을 것 같다만 12년 전의 나는 그 캔 커피가 아니면 수업에 집중할 수 없다는 이상한 신념을 가지고 있었던 것이 틀림없어 보인다. 커피를 마시지 않고 일찍 잘 생각은 단 한 번도 안 한 것 같다. 그런데 이것도 한두 번이지 매일매일 최소 1번 이상 커피를 마시려니 고작 600원짜리였음에도 고정수입이 적은 학생인 나에겐 굉장히 부담스러운 가격이었다. 특단의 조치가 필요했다. 물론 커피를 마시지 않는다라는 보기 따윈 없었다. 빨리 마시멜로를 먹어버리고 싶었던 거다.


캔 커피의 가격이 10년 전보다 2배는 비싸졌다



재테크라는 것을 해봐야겠다


21살의 내가 알고 있는 재테크 수단이라고 해봐야 예적금 그리고 CMA (Cash Management Account, 종합자산관리계좌) 정도가 전부였다. 많지 않지만 고정수입이 생긴 이후로 적금과 청약저축은 매 월 10~20만 원씩 넣고 있었다. 그리고 우연한 기회로 CMA 계좌도 이미 만들어서 20만 원 정도 입금해 둔 상태였다.


당시에는 온라인이나 모바일로 계좌 개설이 힘들어서 증권사에 직접 찾아가서 만들어야만 했다. 아직도 증권사 입구에서 내가 여기 들어가도 되는지, 들어가서 무슨 말을 해야 되는 건지 쩔쩔매고 있었던 게 기억이 난다. 그리고 상담해 주던 분이 21살 동갑내기의 여성분이셨는데 계좌 개설이 완료되는 동안 나는 CMA에 대해서 물어보고 그분은 대학교란 곳에 대해서 물어보면서 한동한 수다를 떨었던 것도 기억이 난다. 그나저나 지나고 보니 예전엔 계좌 만들기도 참 오래 걸렸던 것 같다.


알고 있는 재테크 수단이라고 해봐야 예적금 그리고 CMA 정도가 전부였다.


적금은 2년 만기로 4~5% 정도 되는 이자율이 책정되어 있었다. 당시에도 꽤 높은 이자율이긴 했다. 그러나 만기까지 기다려야 하고 당장 나에게 커피를 내어줄 수 없었기 때문에 대안이 될 수 없었다. 훗날...이라고 해봐야 고작 2년 뒤이지만 태어나서 처음으로 적금 만기 이자를 받은 상품이 바로 이 적금이다. 아직도 만기 날에 받은 계산서를 가지고 있다.


잊고 있던 CMA 계좌를 열어봤다. 20만 원 하고도 1~2천 원 정도가 잔액으로 찍혀있었다. 거래내역을 살펴보니 계좌를 만든 이후 매일 10~20원 정도씩 입금되고 있었다. 이거다. 바로 이게 내 커피머신이었다.


부자가 부자가 되는 이유...
자산 부문이 지출을 상쇄하고도 남을 정도로 충분한 수입을 창출하기 때문이다. 남는 돈은 다시 자산 부문에 재투자된다. 그러면 자산 부문은 계속해서 불어나고 자산이 창출하는 소득 역시 함께 증가한다.
- 로버트 기요사키 『부자아빠 가난한 아빠』 (P.135)



매일 캔 커피 하나를 공짜로 얻으려면 어떻게 해야 할까


나만의 커피 머신을 찾았으니 이젠 원하는 만큼 커피를 뽑아내기 위해 원두를 넣어야 했다. 당시 CMA의 이자율은 2% 초반으로 기억한다. 매일 이자가 들어오기 때문에 하루 단위로 계산해 보면 대략 0.01%. 쉽게 생각하기 위해서 그냥 매일 원금의 1/10,000 ~ 1/15,000 정도가 입금된다고 계산을 했었다. 수업에 집중이 안되거나 하면 혼자 노트에 이런 계산이나 하고 시간을 보냈다.


100만 원을 입금하면 매일 약 70원 ~ 100원 정도가 들어오는구나.

600만 원만 입금하면 많이 들어온 날에는 커피를 마실 수 있다!

900만 원이면 평생 매일 아침을 커피로 이겨낼 수 있잖아?

어차피 내가 가입한 CMA는 1000만 원까지만 지금의 이자를 준다고 했으니깐 이거 완전 나를 위한 상품인데?!


원하는 만큼 커피를 뽑아내기 위해서 CMA 커피머신에 최소한의 원두인 600만 원을 넣어야 했다


이때부터 나는 CMA에 돈을 모으기 시작했다. 이미 2011년의 학기는 이미 끝나가고 있었어 9시 수업은 없어졌었다. 어쨌든 그건 중요하지 않고 일단 나는 빨리 900만 원을 채워서 마시멜로를 먹어야 했기 때문에 열심히 돈을 모으기 시작했다. 버는 것이 거의 없으니 안 쓰는 것만으로는 답이 없었다. 이후 여러 가지 잡다한 아르바이트와 장학금 그리고 학교의 연구실이나 사무실에서 근로를 하면서 꾸역꾸역 채워 넣었다. 게다가 CMA를 채운다고 해도 적금과 청약 납입을 포기하지도 않았다. 그렇게 큰 변화 없이 약 2년의 시간이 지났다.



나는 나 빼고는 모두 가만히 있는 줄 알았다


2년 뒤 나는 CMA 계좌에 600만 원보다 조금 많은 금액을 가지게 되었다. 2년 전의 나는 600만 원의 계좌에서 매일 나오는 600원으로 조지아 오리지널을 매일 하나씩 마시면서 아침 수업을 열심히 듣게 될 것을 꿈꾸었을 거다. 과거의 내가 바라던 커피머신을 2년 뒤 결국 가지게 되었지만 나는 결과적으로 실패했다. 2년 동안 너무 많은 것이 바뀌었던 것이다.


금리, 인플레이션 이런 건 나랑 상관없는 이야기인 줄 알았다


먼저 금리와 이자다. 대략 2% 초반대였던 나의 CMA 금리는 어느새 1.5%로 떨어져 있었다. 어쩐지 평소보다 이자가 좀 적게 들어온다 했지만 무지에 가득 찬 당시의 나는 이런 걸 꼼꼼하게 확인하지 않았던 거다. 떨어진 이자율만큼 예상한 최대 이자였던 600원보다도 훨씬 적은 400원 내외를 받고 있었다. 용량이 적은 레쓰비 한 캔도 먹을 수 없는 금액이다. 그냥 눈만 끔뻑끔뻑하다가 상대적으로 가난해졌다.


그리고 물가와 인플레이션. 나는 나에게만은 조지아 오리지널은 평생 600원인 줄 알았나 보다. 평소에는 무심코 넘기던 100원, 200원씩 오르던 음식료 가격을 왜 이 시기에는 무시하고 있었는지 모르겠다. 조지아는 어느새 700원으로 약 16%가 올라있었다. 너무한 거 아닌가. 1.5%가 된 이자율에 700원을 안정적으로 공급받으려면 CMA 계좌에만 약 1000만 원의 금액이 들어 있어야 했다. 또 한 번 가난해진 거다.


금리, 인플레이션 이런 건 나랑 상관없는 이야기인 줄 알았다. 머리로만 알지 체감한 적이 없으니까...

(10여 년 뒤인 지금 내가 경제학을 진심으로 공부하게 된 이유 중 하나라고 생각한다)



매일 600원짜리 캔 커피 하나를 마시려다가 1000만 원을 모았다


다행인 것이 하나 있다. 캔 커피라는 마시멜로를 빨리 먹어버리고 싶었음에도 불구하고 적금만은 포기하지 않았다는 거다. 2년이 지나 적금도 만기가 되었다. 게다가 청약 저축에도 약 10만 원씩 꾸준히 납입했다. 나만의 커피머신인 CMA 계좌의 600만 원이 넘는 자금과 함께 결과적으로 1000만 원이라는 돈을 가지게 되었다. 목돈 1000만 원의 시드머니가 생긴 것이다! 

(나중에 다른 글에서 이야기하겠지만 사실 이 돈은 투자를 위한 시드머니로써 전혀 작동하지는 못했다...)


효율적인지는 모르겠지만 일단 최소한 나는 재미있게 시드머니를 모은다



일단 시드머니를 모아라?


시드 머니의 중요성은 여러 재테크 입문 책을 보면 어디에서나 나온다. 그런데 아쉽게도 어떻게 모아야 되는지를 말해주는 책은 거의 없다. 그럴 만도 한 게 책을 써낼 정도의 사람들이면 이미 돈을 모아 본 사람이고 그들의 입장에서 보면 첫 시드머니라는 것이 되돌아 보면 사실 그렇게 큰 금액이 아니기 때문에 이해는 된다. 그냥 뭐가 됐든 일단 시드머니를 모아라는 소리를 한다. (확실히 이유야 어떻든 모아보면 달라지는 건 맞는 것 같다.)



돈을 모으는 게 재밌어졌다


운이 좋게도 나는 재미있게 시드머니를 모으는 방법을 지금까지 말한 방법을 통해 체득했다. 10여 년이 지난 지금도 새로운 계좌를 개설하면 같은 방법을 적용한다. 효율적인지는 모르겠지만 일단 최소한 나는 재미있게 시드머니를 모은다. 최근 만든 계좌에서 나오는 배당금도 매달 단체 카톡방에 지인들에게 자랑을 하는데, "지난달에는 메가커피 아메리카노 5잔이었는데 이번 달에는 8잔이 되었어요"라는 식이다. 이 외에도 다양한 나만의 퀘스트를 만들어서 하나씩 클리어하는 기분으로 자산을 모아가는 게 이 또한 정말 재미있다. 나중에 이제 막 재테크를 시작하려는 사람들을 위한 글도 나의 경험을 이용해서 한 번 작성해보려고 한다.



《재테크 01. 처음으로 돈을 모으고 싶어진 이유》 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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