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 인생의 여행들
2014년 6월. 회사에서 2주간 휴가를 받아 스웨덴과 스페인에 다녀왔다. 스웨덴에 유학 중인 친구 집을 베이스로 스페인 여행을 가는 것이 메인이벤트. 대학교 때, 바르셀로나에 다녀왔지만 바르셀로네타라는 해변이 있다는 것을 몰랐던 나. 언젠가 다시 방문해서 바다를 봐야지라고 다짐했다. 그리고, 행동에 옮긴 것이 14년 6월. 3년 전에 한 달 지냈다고 코펜하겐에서 내려서 트리앙엔역으로 오는 길이 익숙했다. 기내식에 지친 속을 달래기 위해, 도착하자마자 쌀국수를 한 뚝배기씩 먹고, 마리메꼬에서 50주년 세일을 해서 에코백과 파우치를 구입했다. 이때 산 에코백들은 나의 최애 백으로서 지금까지 잘 사용하고 있다. 역시 살까 말까 할 때는 사야 해. 옷장 속에서 잠자고 있는 수많은 가방들을 흐린 눈으로 바라보면서 적어봅니다.
말뫼에 도착하고 3일 뒤에 바르셀로나로 혼여행을 떠났다. 여행 가기 전에 네이버 유랑카페에서 이벤트 응모 한 것이 당첨되어 가우디 집중투어도 무료로 듣게 되었다. 럭키 보돌. 숙소는 번화가에 있는 한인민박으로 정했고, 스페인 도착 후 저녁을 먹으러 스타벅스로 갔다. 카페 곳곳에 소매치기 조심하라는 안내문이 적혀있는 곳을 보니, 10년 전 배낭여행 때 현우가 가방을 통째로 도둑맞았던 에피소드가 생각났다. 바르셀로나, 여전하구먼. 첫날 저녁은 같은 방을 쓰는 한국인 여행자들과 수다 좀 떨다가 잤다. 내일은 가우디 투어 들어야 하는데 왜 비 예보가 있지.
아침에 같은 방분들이 비가 와도 잘 보고 오라고 응원해 주셔서 아침식사를 하고 오전 10시에 약속장소인 하드락 카페로 갔다. 구엘 저택, 레알 광장의 가로등은 도보로 이동해서 구경을 하고, 카사 비센스는 지하철을 타고 이동했다. 노란색 꽃과 초록색 잎의 타일이 예뻐서 인상적이었다. 컬러감이 어쩜 그래. 세상에나. 그리고는 전철을 타고 그라시아 거리로 이동. 가이드님이 지하철에서 가방 조심하라고 당부의 말씀. 여기 거주자들은 매일 지하철에서 긴장되겠다. 아님, 나같이 어리바리하게 생긴 관광객만 노리는 것일까. 후자가 맞을 듯.
명품 샵이 즐비한 그라시아거리에서 설명을 들은 곳들은 카사 밀라와 카사 바뜨요. 카사 밀라는 다음 날 혼자 오기로 했고, 카사 바뜨요는 그렇게까지 관심이 없어서 패스. 점심 먹고는 사그라다 파밀리아로 이동했다. 2026년에 완공 예정이라는 얘기를 듣고 까마득하다는 이야기를 나눴었는데, 이제 내후년이다. 세월의 흐름 무슨 일이야. 완공되면 구경하러 바르셀로나 가고 싶다. 가이드님이 각 파사드의 의미와 비하인드 스토리들을 알려주셔서 재밌었다. 가이드 투어의 유용함을 이곳에서 가장 체감했다. 앞으로도 유럽 여행 갈 때는 일일 가이드 투어 이용 해 봐야겠다고 생각했다. 그 후로 13년 넘게 유럽 근처도 못 가고 있는 나.
성당에서 지하철 타고, 버스 갈아타고 구엘 공원으로 이동했다. 이쯤 되니까 다리가 너무 아파서 관광버스로 구경하던 다른 팀들이 부러워지기 시작했다. 차 타고 내리고, 또 타고 내리고. 부럽잖아. 구엘 공원 올라가는 언덕이 진짜 힘들다고요. ‘꽃보다 할배’에서도 할배들이 또 언덕이냐고 성질냈었다고요. 사람들 인솔하고, 설명하면서 걸어가는 가이드님 체력에 진짜 감탄할 따름이었다. 구엘 공원은 01년에 배낭여행 왔을 때도 방문했던지라, 추억이 방울방울. 촬영 스팟인 도마뱀 동상 앞에는 여전히 관광객들이 바글바글. 구엘 공원이랑 원수가 졌는지, 공원 맨 위에 있는 운동장에 있을 때부터 비가 내리기 시작해서 비를 맞으며 하산했다. 01년에 왔을 때도 비가 왔었는데 말이다. 그래도 이 날은 우산을 가지고 있어서 다행이야.
공원에서 시내로 돌아와서는 야경투어 시작 전까지 1시간 30분의 저녁식사 시간을 주셨다. 혼자 왔던 지선 씨와 같이 타파스 바에 가자고 의기투합. Orio라는 바에 입장했다. 스페인산 스파클링 와인 cava에 맛있는 안주들을 골라서 먹는데 순도 100퍼센트로 행복했다. 혼자서 타파스 바에 오기는 망설여졌는데 일행이 생기니 마음이 든든한걸. 수다 떨면서 바게트 위에 올라간 하몽에 연어에 절인 올리브 안주들을 먹었다. 아아 너무 좋다 진짜. 야경투어까지 마치고 숙소로 돌아오니 밤 10시. 민박집 사람들이 라운지에 모여서 술을 마시고 있었다. 보돌씨도 와서 같이 한 잔 하자고 했지만, 물리적으로 다리가 안 움직여서 침대에 누워 있을 수밖에 없었다. 오전 10시에 나가서 밤 10시에 귀가했는데 25,000보는 걸었던 것 같다. 그래도 가이드님 설명을 들으면서 다니니까 몰랐던 내용들도 알게 되어 즐거운 시간이었다.
가이드 투어 이후로는 혼자서 사브작 거리면서 고딕 보른지구 산책도 다니고, 그렇게 궁금했던 바르셀로네타 해변도 가 봤다. 백사장 옆으로 W호텔이 보이는데 풍경이 정말 멋진 걸. 네이버 검색하다가 알았는데, W호텔 근처로 가면 누드비치가 있다고 한다. 아, 난 아직도 바르셀로나에 대해 모르는 것이 많구나. 멀리서만 바라봐야지. 바닷가 구경을 하고는 까사 밀라에 올라가서 스타워즈의 ‘스톰트루퍼’ 닮은 옥상의 장식도 보고, 예전의 생활 모습을 재현해 놓은 아파트먼트 구경도 했다. 주인님의 서재 방 보다, 하녀복이 걸려있는 하녀의 방에서 콧날이 시큰 해 지는 것을 보니 나는 전생에 하녀였나 봐. 방이 너무 좁잖아.
많이 걸었다 많이 걸었어. 바르셀로나에서는 하염없이 걸었다. 휴식을 위해 cacao sampaka에 가서 핫쵸코를 주문했다. 진짜 맛있더라. 진짜. 다음에 바르셀로나 갈 일이 있다면 꼭 마셔야지. 매장에서 내가 먹을 초콜릿이랑 케이코랑 마사에 언니 줄 선물도 좀 사고 숙소로 컴백. 혼자 여유롭게 다니겠다고 했지만, 밖에 나가면 별천지라 또 20,000보는 걸었던 것 같다. 내 다리 내놔.
다음 날은 쇼핑의 날. 이때 한창 바르셀로나 가면 에스파드류라는 신발을 사 오는 것이 유행이었다. 충동구매의 여왕인 내가 질 수는 없지. 매장에 가서 세 켤레나 사 와서는 결국 제대로 신고 다닌 것은 빨간색 한 켤레. 지난날을 반성합니다. 보케리아 시장에 가서 체리도 사 먹고, bubo라는 디저트 카페에 가서 상 받은 초콜릿 무스케이크도 먹고 신나게 다녔다. 바르셀로나는 볼거리와 맛있는 음식이 많아서 걷기만 해도 즐거웠다. 스웨덴은 할 일 진짜 없었는데. 몬주익 언덕 산책도 하고, 분수 쇼도 보면서 마지막 날 밤을 보냈다. 01년에 일행들이랑 다 같이 왔던 분수 쇼를 혼자 와서 구경하려니까 약간 쓸쓸했다. 다음에는 사랑하는 사람이랑 와야지. 01년, 14년에 왔으니 13년 뒤인 27년에!? 사그라다 파밀리아 완공된 것 보려면 26년에 와야겠지? 완공되려나? 결국 27년에 오는 것 아니냐. 언제라도 좋으니 바르셀로나는 꼭 다시 가고 싶다.
바르셀로나를 만끽하고 스웨덴 말뫼로 돌아왔다. 스페인의 활기참에 비교하니 (소매치기에 주의해야 한다는 스릴까지) 스웨덴이 너무나 심심해서 옆 동네인 코펜하겐에 놀러 갔다. 스웨덴 말뫼 역에서 열차를 타면 40분이면 덴마크 뇌레포트역까지 갈 수 있는데, 이때 마침 스웨덴 남부와 덴마크를 잇는 철도회사가 파업을 해서, 버스와 전철을 갈아타느라 1시간 30분이나 걸렸다. 내가 귀국하는 6일 뒤까지도 파업이 계속돼서 캐리어에 짐을 이고 지고 또 이 루트로 카스트럽 공항까지 가야 했다는 후기. 하여간에, 이 날 친구의 추천으로 먹은 수제 버거가 지금까지 기억날 정도로 맛있었다. 트러플 마요와 감자튀김의 콜라보. 옴뇸뇸. 코펜하겐 관광은 3년 전에 코펜하겐 카드를 사서 한번 돌아봤으니 이때는 백화점 가서 식료품관과 인테리어 플로어 구경을 실컷 했다. 로열 코펜하겐을 박스채로 사가던 중국인 관광객들이 얼마나 부럽던지. 나도 나중에 신혼여행으로 와서 그릇들 세트로 사가야지.라고 생각했지만 10년이 지난 지금까지 싱글인 나. 야, 그냥 인터넷으로 사.
14년 유럽 여행 때 적었던 일기장을 발견한 김에 적어본다.
유럽여행을 다녀온 지 벌써 2주일이나 지났다. 다녀와서는 시차적응 때문에 일주일 동안 너무 고생을 해서 앞으로는 시차가 있는 나라로 여행을 가고 싶지 않다고 생각했지만, 나는 알지. 기회만 있으면 언제든지 튀어 갈 것이라는 것을. 우헤헤. 일본은 이제 얼마 남지 않은 장마철을 지나 무더위를 향해 달려가고 있다. 내 방은 벌써 찜통. 어휴.
1. 비행기에서 본 영화들
*용의자: 너무 재미없어서 보다가 껐다가 다시 보다가 껐다가의 반복.
박휘순 연기 어쩔. 공유랑 유다인 마저....
*월터의 상상은 현실이 된다: 최고의 영화. 내용도 영상도 연기도 완벽했다. 재밌는데 교훈까지 주는 영화.
2. 비행기에서 읽은 책
*높고 푸른 사다리: 흥남 철수에 대한 궁금증이 있어서 읽었는데 생각보다는 그냥 그랬다. ‘내가 주인공이었으면 평양냉면집 물려받아서 잘 먹고 잘 살았을 텐데’라고 생각.
3. 여행 중 감동적이었던 순간
*바르셀로나에서 에스파냐 광장 뒤로, 미술관 있는 쪽까지 산책했던 일. 바람에 나뭇잎이 사각거리던 소리와 청량감이 아직도 생생하다.
*귀국 전날, 말뫼에서 entre 쇼핑몰을 가면서 강가를 따라서 하염없이 걸었던 일. 날씨가 환상적이었다.
*코펜하겐 magazin 백화점 위의 리빙 플로어 갔을 때. 세상에나. 예쁜 소품들이 이렇게나 많다니 나중에 신 혼집이 생기면 여기 와서 tax free 받아서 집을 채워야지라고 야무지게 망상을 해 봤다.
*바르셀로나 사그라다 파밀리아 성당 내부에 들어갔던 순간. 아! 이런 성당이 있을 수 있구나. 햇살 가득한 그 내부. 건물 안이었지만, 숲 속에 들어와 있는 듯한 기분이 들었다.
*말뫼의 바다사우나에서 몸을 식히려고 바다에 입수한 그 순간. 냉탕이 바다인 사우나라니. 멋지다.
4. 맛있었던 음식
*바르셀로나 cacao sampaka에서 먹었던 생크림 얹은 핫쵸코. 큰 컵에 나왔던 애보다 얘가 짱짱맨이었다.
*바르셀로나 orion의 핀쵸스와 스파클링 와인. 연어랑 올리브가 진짜 최고였다. 또 먹고 싶네.
*코펜하겐의 HACHE 버거. 버거도 버거지만 트러플 마요네즈가 진짜 캬아. 또 먹고싶다.
*말뫼 chez madame의 프렌치토스트. 정말 다른 메뉴말고 이것만 두 접시 시켰어야했어.
Best french toast ever! (표지 사진의 토스트가 바로 이 것!)