훔치고 싶은 문장을 옮깁니다. 옮기는 김에 소설을 공부합니다. 첫 번째 소설은 김훈 작가님의 '화장'입니다.
1.
"운명하셨습니다."
당직 수련의가 시트를 끌어당겨 아내의 얼굴을 덮었다. 시트 위로 머리카락 몇 올이 삐져나와 늘어져 있었다. 심전도 계기판의 눈금이 0으로 떨어지자 램프에 빨간 불이 깜박거리면서 삐삐 소리를 냈다. 환자가 이미 숨이 끊어져서 아무런 처치도 남아 있지 않았지만 삐삐 소리는 날카롭도고 다급했다. 옆 침대의 환자가 얼굴을 찡그리면서 저편으로 돌아누웠다.
김훈 작가님의 '화장'은 산 것과 죽은 것의 대비를 냉정하게 보여줍니다. 첫 단락에서도 아내의 죽음을 당직 수련의, 심전도 계기판, 옆 침대환자의 얼굴을 대비시키면서 산 것과 죽은 것의 대비를 극명하게 보여줍니다.
...죽은 아내의 몸은 뼈와 가죽뿐이었다. 엉덩이 살이 모두 말라버린 골반 뼈 위로 헐렁한 피부가 늘어져서 매트리스 위에서 접혔다. 간병인이 아내를 목욕시킬 때 보니까, 성기 주변에도 살이 빠져서 치골이 가파르게 드러났고 대음순은 까맣게 타들어가듯 말라붙어 있었다. 나와 아내가 그 메마른 곳으로부터 딸을 낳았다는 사실은 믿을 수 없었다. 간병인이 사타구니의 물기를 수건으로 닦을 때마다 항암제 부작용으로 들뜬 음모가 부스러지듯이 빠져나왔다. 그때마다 간병인은 수건을 욕조 바닥에 탁탁 털어냈다.
죽은 아내의 신체에 대한 건조한 묘사가 시선을 끕니다. 그곳으로부터 딸을 낳았다는 사실을 언급하며 산 것과 죽은 것의 차이를 다시 드러냅니다. 수건을 욕조 바닥에 탁탁 털어내는 간병인의 객관적인 행동이 윗 문단 당직 수련의의 행동과 대구를 이룹니다.
...여자처럼, 좌변기에 앉아서 오줌을 눈 지가 여섯 달이 넘었다. 남자의 방식대로 서서 오줌이 나오기를 기다리기 힘들었다. 변기에 앉아서 방광에 힘을 주었더니, 고환과 항문 사이에서 날카로운 통증이 방사선으로 퍼져나갔다. 성기 끝에서 오줌은 고드름 녹듯 겨우 몇 방울 떨어졌다. 붉은 오줌방울들이었다. 요도 속에서 오줌방울들은 고체처럼 딱딱하게 느껴졌고, 오줌이 빠져나올 때 요도는 불로 지지듯이 뜨겁고 쓰라렸다. 몸속에 오줌만 남고 사지가 모두 떨어져 나가는 느낌이었다...
주인공인 남편은 전립선염에 걸려있습니다. 아내의 죽음과 그걸 지켜보는 개인의 고통을 대치시키며 죽은 것과 산 것의 대비를 다시 극대화시킵니다. "여자처럼, 좌변기에 앉아서 오줌을 눈 지가 여섯 달이 넘었다.", 는 장치를 넣어 개인의 고통과 외부에 드러나는 신체의 대비를 확장시킵니다.
"아침에 엄마 돌아가셨다."
딸아이는 흑, 숨을 몰아쉬더니 한동안 대답이 없었다.
"너도 회사에 알리고 준비해서 병원으로 와라. 파출부 아줌마한테 연락해서 집 봐달라고 하고, 오기 전에 개밥 줘라."
아내는 투병 중에 개밥을 주라는 말을 여러 번 합니다. 개의 이름은 보리입니다. 다음 생에 인간으로 환생하라는 뜻으로 아내가 지어 준 이름입니다. 보리라는 개가 이 소설에서 중요한 역할을 하는 것은 확실하지만 정확하게 어떤 역할을 하는지는 제 능력에서 파악하기가 어렵습니다. (소설의 마지막에 보리를 안락사시키며 소설이 끝이 납니다) 주인공 내면의 변화를 보여주는 장치로 쓰인다고 추측됩니다. 다만, 죽어가는 아내가 혼절상태에서도 개밥 줬냐고 묻는 장면, 딸에게 엄마의 죽음을 알리며 개밥 줘라, 라며 전화를 끊는 장면은 산 것과 죽은 것의 차이가 얼마나 하찮은 것인지에 대해 묻게 합니다.
...종양은 생명 속에서만 발생하는 또 다른 생명이다. 죽은 조직 안에서 종양은 발생하지 않는다. 종양의 발생과 팽창은 생명현상이다. 생명 안에는 생명을 부정하는 신생물이 발생하고 서식하면서 영역을 넓혀간다. 이 현상은 생명현상의 일부인 것이다. 종양과 생명을 분리시킬 수는 없다. 그래서 치료는 어렵다. 고생할 각오를 하고 환자의 마음을 준비시켜라.
그때, 나는 의사의 설명을 알아들을 수가 없었다. 그의 말은 비어 있었다. 그의 말은, 죽은 자는 종양에 걸리지 않고, 살아 있는 자만이 종양에 걸리는 것인데 종양 또한 삶의 증거이기 때문에 이도 저도 아니라는 말처럼 들렸다. 나의 이해가 아마도 옳았을 것이다. 뻔한 소리였고, 하나마나한 소리였지만, 나는 그때 그의 뻔한 소리의 그 뻔함이 무서웠다. 그리고 그 무서움은 그저 무덤덤했다. 그의 설명은 뻔할수록 속수무책이었다.
김훈 작가님 특유의 물고 뜯으며 해체시키는 문장이 잘 드러나있습니다. "뻔한 소리였고, 하나마나한 소리였지만, 나는 그때 그의 뻔한 소리의 그 뻔함이 무서웠다. 그리고 그 무서움은 그저 무덤덤했다. 그의 설명은 뻔할수록 속수무책이었다." 물고 뜯으며 해체시키는 문장이 종양이 생명현상이라는 키워드와 절묘하게 어우러집니다.
나는 허리를 들었다. 간호사가 바지와 팬티를 한꺼번에 끌어내렸다. 간호사는 고무장갑 낀 손으로 애무를 해주듯 손을 움직여 내 성기를 키웠다. 고무장갑 낀 간호사의 손 안에서 내 성기는 부풀었다. 성기는 내 몸의 일부가 아닌 것처럼 낯설었지만, 내 몸이 아닌 내 성기가 나는 참담하게도 수치스러웠다. 간호사가 그 구멍 안으로 긴 도뇨관을 밀어 넣었다. 도뇨관은 한없이 몸 안으로 들어갔다. 요도가 쓰라렸고 방광 안에 갇혀 있던 오줌이 아우성을 쳤다.
아내의 장례 일정을 치러야 하는 주인공은 방광에 찬 오줌을 빼러 병원으로 갑니다. 아내의 신체에 대한 묘사와 주인공의 신체에 대한 묘사가 대구를 이룹니다.
2.
...세상의 모든 감각들이 관능화되고 세분화되는 세월 동안에 사장의 회사는 번창했다. 지금은 기초화장품 이십여 종에 색조화장품 삼십여 종을 생산하고 유통시키는 시점점유율 1위의 회사로 성장했다. 기초화장품은 클렌징로션, 폼클렌징, 스킨로션, 밀크로션, 메이크업베이스, 자외선차단용 선블록, 리퀴드파운데이션, 콤팩트파운데이션 들이었고 색조화장품은 립스틱, 립글로스, 아이섀도, 아이라이너, 마스카라, 블러셔, 매네큐어 들이었다. 색조화장품들이 다시 울트라 마린블루나 쇼킹 핑크 또는 인디언 레드, 헌터스 그린 같은 색의 계통별로 분류되면 출시되는 상품 종수는 훨씬 더 다양했다. 작년부터 사장은 화장품이 아니라 의약부외품인 질 세척제와 질 방향제 개발사업에 연구비 오십억을 투입하면서 임원진을 다그쳤다...
장례식장을 지키는 주인공에게 사장이 전화를 걸어 화장품 광고 전략에 대한 결정을 마무리하라고 지시합니다. (주인공은 화장품 회사의 임원입니다.) 이어 다양한 종류의 화장품이 서술됩니다. 아내의 죽음에 대한 냉정한 묘사와 화장품 종류에 대한 건조한 나열식 서술이 대비를 이룹니다. 아내의 장례 일정 중에 여름 화장품 광고의 전략을 선택해야 하는 주인공의 입장이 소설의 제목인 화장의 중의적 표현과 어우러집니다.
...건더기는 없고 껍데기뿐이었지만, 이 업계에서 건더기와 껍데기가 구별되는 것도 아니었고 껍데기 속에 외려 실익이 들어 있는 경우는 흔히 있었다. 여름시장에 내놓을 이 재고상품 여덟 가지 전체의 선전과 광고에 적용될 리딩 이미지와 문구를 결정하기 위한 회의는 부서별, 직급별로 다섯 차례 열렸다. 그 회의에서 논의된 리딩 이미지의 문구는 '여름에서 가을까지 -여자의 내면여행'과 '여름에 여자는 가벼워진다', 그렇게 두 가지로 압축되어 중역회의에 제출되었다...
주인공은 장례 일정 중에 '여름에서 가을까지 -여자의 내면여행'과 '여름에 여자는 가벼워진다'는 두 가지 컨셉 중 하나를 선택해야 합니다.
3.
당신의 이름은 추은주. 제가 당신의 이름으로 당신을 부를 때, 당신은 당신의 이름으로 불린 그 사람인가요. 당신에게 들리지 않는 당신의 이름이, 추은주, 당신의 이름인지요.
제가 당신을 당신이라고 부를 때, 당신은 당신의 이름 속으로 사라지고 저의 부름이 당신의 이름에 닿지 못해서 당신은 마침내 삼인칭이 되었고, 저는 부름과 이름 사이의 아득한 거리를 건너갈 수 없었는데 저의 부름이 닿지 못하는 자리에서 당신의 몸은 햇빛처럼 완연했습니다. 제가 당신의 이름과 당신의 몸으로 당신을 떠올릴 때 저의 마음속을 흘러가는 이 경어체의 말들은 말이 아니라, 말로 환생하기를 갈구하는 기갈이나 허기일 것입니다. 아니며 눈보라나 저녁놀처럼, 손으로 잡을 수 없는 말의 환영일 테지요.
당신의 이름은 추은주. 오 년 전 신입사원 공채 때 인사과장이 가져온 최종합격자 이력서에서 당신의 이름을 읽었을 때, 이제는 지층 밑에 묻혀버린 먼 고대국가의 이름이 내 마음에 떠올랐습니다. 그리고 당신의 몸은, 구석자리에서 컴퓨터 자판을 두드리며 결재서류를 작성하고 있던 당신의 둥근 어깨와 어깨 위로 흘러내린 머리카락과 그 머리카락이 당신의 두 빰에 드리운 그늘은 내 눈앞에서 의심할 수 없이 뚜렷했고 완연했습니다. 아, 살아 있는 것은 저렇게 확실하고 가득한 것이로구나 싶어서, 저의 마음속에 조바심이 일었습니다...
갑자기 추은주라는 이름이 등장하며 문체가 경어체로 바뀝니다. 당신의 이름은 추은주,라는 문장은 반복되며 주술 문구처럼 독자를 끌어들입니다. 앞선 문장들의 건조함과 냉정함이 이 문장들의 경어체와 뜨거움과 대조를 이루고 있기 때문에 독자들은 주술처럼 이 문구들에 빠져들 수밖에 없습니다. 앞서 늙은 남성과 여성의 신체에 대한 세밀한 묘사, 그리고 아내의 죽음에 대한 주인공의 냉담한 서술이 추은주라는 신입 사원에 대한 묘사와 주인공의 내밀한 서술이 극을 이룹니다.
...당신은 목둘레가 둥글게 파인 블라우스를 입고 있었고, 당신의 목 아래로 당신의 빗장뼈 한 쌍이 드러났습니다. 결재서류가 올라오기를 기다리던 나는 내 자리에서 일어서서 칸막이 너머로 당신을 바라보았습니다. 당신의 가슴의 융기가 시작되려는 그곳에서 당신의 빗장뼈는 당신의 가슴뼈에서 당신의 어깨뼈로 넘어가고 있었습니다. 그 빗장뼈 위로 드러난 당신의 푸른 정맥은 희미했고, 그리고 선명했습니다. 내 자리 칸막이 너머로 당신의 빗장뼈를 바라보면서 저는 저의 손으로 저의 빗장뼈를 더듬었지요. 그때, 당신의 몸을 생각했습니다. 여자인 당신, 당신의 깊은 몸속의 나라, 그 나라의 새벽 무렵에 당신의 체액에 젖는 노을빛 살들, 그 살들이 빚어내는 풋것의 시간들을 저는 생각했고, 그 나라의 경계 안으로 제 생각의 끄트머리를 들이밀 수 없었습니다...
빗장뼈, 가슴의 융기, 푸른 정맥, 체액, 노을빛 살들, 풋것의 시간 등 추은주의 신체에 대한 묘사가 투병 중인 아내의 몸에 대한 묘사와 극을 이뤄 더욱 선명하게 보입니다.
...고개를 숙일 때마다 흘러내리는 머리카락을 한 손으로 쓸어 올리면서 당신은 젓가락질을 했습니다. 당신은 휴대백에서 실핀을 꺼냈습니다. 당신은 앞니로 실핀 끝을 벌리고, 그 실핀을 귀밑머리에 꽂아 흔들리는 머리타래를 고정시켰습니다. 빗장뼈 위로 솟아오른 당신의 목은 흰 절벽과도 같았습니다. 당신은 계속 먹었습니다. 볶음밥을 한 숟갈 입에 넣고 나서 국물을 한 숟갈 떠 넣기를 당신은 반복했습니다. 당신이 밥을 먹는 모습에서는 끼니때를 놓친 시장한 노동자의 식욕이 느껴졌습니다. 당신이 음식을 넘길 때마다 흔들리는 당신의 턱 밑의 흰 살들을 저는 칸막이 너머로 보았습니다. 그리고 또 제 손으로 제 턱 밑 살을 더듬어보았지요. 사무실 안에 인공 조미료의 느끼한 냄새가 가득 찼고, 당신이 젓가락질을 할 때마다 당신의 목걸이 구슬들은 마구 흔들렸습니다. 당신의 몸속으로 들어가서 당신의 체액과 비벼지면서 당신의 몸속을 흘러가는 볶음밥 낱알들의 행로를 저는 생각했습니다. 아니지요. 그 고대국가의 지층 밑을 저는 엿볼 수 없었습니다. 내 두 눈을 찌를 듯이, 그렇게 확실하게 살아서 머리타래를 흔들며 밥을 먹고 있는 당신의 모습은 매몰된 지층 밑의 유적이나 풍문처럼 아득하고 모호했습니다. 그 확실함과 모호함 사이에서 저는 아둔하게도 저 자신의 빗장뼈와 목 밑 살을 더듬고 있었지요...
소설의 세 번째 파트는 계속해서 문단이 길게 이어집니다. 머리타래를 고정시키는 장면, 야근을 하면서 밥을 먹는 사무실의 풍경, 후각과 미각에 대한 자극, 주인공의 고백조의 문장이 앞선 파트들의 감정을 절제한 메마른 죽음에 대한 묘사와 극을 이루며 파장을 극대화시킵니다. 길게 이어지는 문단과 경어체의 문체가 어우러져 주인공의 고백이 더욱 절절하게 느껴집니다.
...그때 당신은 결혼을 앞둔 신부의 정장 처림이었습니다. 돌아선 당신의 몸은 블라우스와 스커트 속에서 완연했고 반팔 블라우스 소매 아래로 노출된 당신의 팔에는 푸른 정맥이 드러났습니다. 당신의 정맥은 먼 나라로 가는 도로처럼 보였습니다. 그 정맥 속으로 내가 확인할 수 없는 당신의 시간이 흐르고, 저와 사소한 관련도 없을 당신의 푸른 정맥이 저의 눈앞에 드러나서 이 세상의 공기에 스치게 되는 여름을 저는 힘들어했습니다. 저는 여름에도 당신이 긴팔 블라우스를 입기를 바랐고 당신은 여름마다 짧은 팔 블라우스를 입었습니다...
후각 효과를 사용한 묘사가 계속해서 작동합니다. 정맥에 대한 묘사를 이어가며 생명력을 강조합니다. 당신의 정맥은 먼 나라로 가는 도로처럼 보였습니다,라는 표현이 주인공의 복잡한 내면을 보여줍니다.
...제가 "잘 아시면서 왜들 이러십니까?"라고 말하면, 총판장들도 똑같은 말로 대답했습니다. 아무런 소득도 없이 술에 취했습니다. 여자들이 옷을 벗었고, 술 취한 총판장들이 여자들의 사타구니 밑으로 손을 넣었습니다. "너는 낯짝을 보니까 구멍 속이 인디언 레드겠구나. 너는 쇼킹 핑크겠고." 전주 총판장이 여자 사타구니를 더듬던 손을 코에 대고 냄새를 맡았습니다. "좀 씻고 다녀라, 이 더러운 년아." "사장님 그게 조개 냄새가 좀 나야 맛있는 거예요." "이게 지금 조개 냄새냐? 썩은 곤쟁이젓 냄새지."
회사 법인카드로 술값과 팁을 계산했습니다. 김제 들판이 끝나는 만경장 어귀의 포구마을에 전주 지사장이 저의 여관을 잡아놓았습니다. 저는 대리운전을 불러서 여관으로 갔습니다. 당신이 결혼하던 날, 저의 하루 일과는 그렇게 끝났지요. 여관 창문 밖으로 썰물의 개펄이 아득히 펼쳐져 있었고 흰 달빛이 개펄 위에서 질척거리며 부서졌습니다. 바다는 개펄 밖으로 밀려나가 보이지 않았고, 거기에는 아무것도 없었습니다. 저승에 뜬 달처럼 창백한 달빛이 가득한 그 공간 속으로 새 한 마리가 높은 소리로 울면서 저문 바다로 나아갔습니다. 저는 제가 어디에 와 있는지 알 수가 없었습니다. 그 여관방에서 당신의 몸을 생각하는 일은 불우했습니다. 당신의 몸속에서, 강이 흐르고 노을이 지고 바람이 불어서 안개가 걷히고 새벽이 밝아오고 새떼들이 내려와 앉는 환영이 밤새 내 마음속에 어른거렸습니다. 당신의 이름은 추은주. 제가 당신의 이름으로 당신을 부를 때, 당신은 당신의 이름으로 불린 그 사람인가요. 당신에게 들리지 않는 당신의 이름이, 추은주, 당신의 이름인지요.
대비효과가 파트 내에서도 이루어집니다. 총판들에게 접대를 하는 주인공의 외면과 내면이 극을 이룹니다. 당신의 이름은 추은주, 로 시작되는 문장들이 다시 반복되며 몽환적인 효과를 가져옵니다.
4.
저녁 일곱 시가 지나자 문상객들이 몰려왔다. 사장이 어른 키만 한 조화를 보내왔다. 사장의 조화는 영정 가까이, 거래처 대표들이 보낸 조화는 영정 좌우로 진열되었다. 동창회와 향우회, 전우회에서 만장을 보내와 빈소 입구에 세웠다. 회사 경리직원이 나와서 부의금 접수업무를 맡았다...
다시 장례식장으로 돌아와 사무적 서술이 계속됩니다.
...추은주는 블루진 바지에, 양말을 신지 않은 맨발이었다. 추은주의 머리가 바닥에 닿을 때 머리타래가 흘러내렸고 맨발의 뒤꿈치가 도드라졌다. 뒤꿈치의 각질과 엄지발가락 밑의 둥근 살도 보였다. 엎드린 추은주의 등과 엉덩이는 완연한 몸이었다. 세상 속으로 밀치고 나오는 듯한 몸이었다. 그리고 그 몸은 스스로 자족해 보였다. 추은주가 결혼하던 날, 만경강 개펄가의 여관방에서 보낸 밤이 생각났다. 나는 고개를 흔들어서 생각을 떨쳐냈다. 생각은 떨어져 나가지 않았다. 영정 속에서 아내는 엷게 웃고 있었다. 미소 띤 사진은 영정으로 쓰지 말라고 미리 유언이라도 남기고 싶었다. 나는 추은주와 맞절했다. 절을 마친 추은주는 내 앞으로 다가왔다.
"상심이 크시겠습니다. 너무 일찍 가시는군요. 저희 어머님하고 동갑이신데..."라고 추은주는 말했다.
"뭐, 병원에서 해볼 만큼 다 해봤으니까..."
나는 겨우 그렇게 대답했다.
화자의 눈을 통한 묘사로 실제 뒤꿈치가 보이는 것 같습니다. 이어지는 영정 사진 속 아내의 미소와 추은주의 인사, 그에 대한 주인공의 답례도 롤러코스터를 타는 듯 이어집니다.
"황망 중에 예의가 아닙니다만, 여름 광고 이미지 문안을 시급히 결정해 주셔야겠습니다. 경쟁사들이 먼저 치고 나올 기세입니다."
2과장 정철수가 말했다.
"딴 중역들은 별 의견이 없으실 겁니다. 상무님하고 저희들이 결정해서 밀어붙이면 될 겁니다."
1과장 박진수가 말했다. 과장들은 스스로 회사의 실력자임을 의식하고 있었다.
"알고 있네. 아침에 사장께서도 전화로 지시하시더군."
2과장 정철수는 까만 양복 윗도리를 벗고 넥타이를 느슨하게 풀었다. 넥타이를 풀 때 그는 고개를 좌우로 힘있게 흔들었다.
"그런데 말입니다. '여자의 내면여행'은 너무 관념적이고 스모키하지 않겠습니까? 오히려 가을 시즌에 맞는 이미지가 아닐까 싶은데. '내면여행'을 채택한다면 영상제작도 쉽지 않을 겁니다. 이미지를 돌출시켜 내기가 어려울 것 같습니다."
"영상연출로 이 관념성을 넘어가야 합니다. 사인화된 정서가 도시여성에게 어필합니다. 도시로부터 이탈하려는 게 여자들의 여름 정서의 핵심이라고 봅니다."
"그게 문제지요. 밖으로 뛰쳐나가지 못해 안달인 판에 '내면'이란 고루하고 폐쇄적인 느낌이 듭니다. 화장품은 내면사업이 아니라 외면사업입니다."
"전 '여름에 여자는 가벼워진다' 쪽으로 가야 한다고 봅니다. 올여름은 유례없이 질척거리고 끈끈할 것이라는 예보가 나와 있습니다. 한국 여성들의 심성에는 물기가 너무 많지요. 물주머니들이 돌아다니는 거예요. 여자들은 자신들의 이 대책 없는 물기를 증오하는 겁니다. 그러니, 이걸 거꾸로 타 넘어가려면 역시 '가벼움'의 이미지를 밀고 나가는 게 좋을 겁니다."
"여름엔, 여성 존재의 전환감을 강조해야 합니다. 존재의 전환, 낯섦과 설렘, 이런 쪽으로 가야지요. ㄱ러니 '내면여행'을 영상으로 잘 다듬어내는 것도 좋을 겁니다."
"'내면여행'은 품격 있는 이미지가 될 수야 있겠지만 도발성이 모자라요. 기초에는 어떨지 몰라도 색조까지 적용하기엔 좀 엉성할 겁니다. 꽉 조여드는 힘이 없잖아요."
"나는 '가벼워진다' 쪽이 오히려 존재의 전환감과 합치된다고 봅니다. 여기에 촉촉함과 메마름의 이미지를 함께 연출해 낼 수 있다면 먹혀들 겁니다. 여름은 무겁고 질퍽거리니까요."
"'가벼워진다'에는 이탈적 정서가 확실히 들어 있기는 하지만, 이 가벼움이 그야말로 너무 가벼워 중량감이 전혀 없는 게 문제지요. 거기에 비하면 '내면여행'의 중량감은 안정돼 있다고 봐야지요."
'내면여행'과 '가벼움' 사이에서 박진수와 정철수는 오랫동안 갈팡질팡했다. 젊은 과장 둘은 그 두 개의 리딩 이미지 중에서 어느 한편을 택할 경우에, 거기에 맞는 여자 모델들의 이름을 열거하면서, 머리카락의 질감, 눈동자의 깊이, 눈두덩의 높이, 눈썹의 긴장감, 아랫입술의 늘어짐, 아랫입술과 윗입술이 만나는 두 점의 극한감, 어깨의 각도가 주는 온순성과 애완성을 분석해 나갔다...
상중인 주인공 앞에서 다시 읽어도 무슨 말인지 모를 대화를 젊은 과장 둘이 나눕니다. 헛것에 대한 김훈 작가님의 태도를 엿볼 수 있습니다. 남한산성에서 항복을 하느냐 항전을 하느냐를 가지고 옥신각신하던 조정의 대신들의 대화가 떠오릅니다. 헛것들에 대한 갈피 없는 대화는 실체가 있는 것을 더욱 도드라지게 합니다.
슬라이드 속에서, 두개골 안쪽으로 들어찬 뇌수는 부유하는 유동체처럼 보였다. 뇌수는 아직 형태를 갖추지 못하고 흐느적거리는 원형질이었다. 인간의 지각과 기능을 통제하는 사령부가 아니라, 멀어서 아물거리는 기억이나 풍문처럼 정처 없어 보였다. 저것이 아내였던가. 저것이 아내로구나. 저것이 두통 발작 때마다 손톱으로 벽을 긁던 아내의 고통의 중추로구나. 슬라이드 속에서 종양이 번진 부위는 등불처럼 환했다. 환한 덩어리 주변으로 반딧불이 같은 빛들이 점점이 흩어져 있었다. 뇌수는 아무런 형태감이 없었다. 그것은 그저 안개나 바람 같은, 스쳐 지나가는 기류처럼 보였다. 살아 있다는 사태의 온갖 느낌을 감지하고 갈무리하는 신체기관이라고 하기에는 그곳은 꺼질 듯이 위태로웠고, 그 안에서 시간이나 말이 발생하지 않은 어둠에 잠겨 있었는데, 점점이 흩어져서 반짝이는 종양의 불빛들은 저녁 무렵인 듯싶었다...
뇌 사진이 다시 등장합니다. 아내가 느끼는 고통의 실체를 흑백 사진 속에서 찾으려고 하지만 보이지는 않습니다.
"여보... 개밥... 개밥..."
두통에서 겨우 벗어나기 시작했을 때 아내는 묶인 몸으로 가슴을 벌떡거리며 개밥을 걱정했다. 집에 파출부가 오지 않는 날 개는 하루 종일 빈집에 묶여서 굶었다. 누런 털의 순종 진돗개였는데, 콩알처럼 생긴 마른 사료는 거들떠보지도 않았고 국에 말아주는 밥만 먹었다. 딸이 취직해서 출근을 시작하가 집안이 썰렁하다고 아내가 얻어온 개였다. 아내가 입원한 뒤, 개는 하루 종일 혼자 묶여 있었다. 비 오는 날, 개는 개 집 속에 엎드려 앞발을 내밀고 앞발에 떨어지는 빗방울을 혀로 핥았다. 개는 몇 시간이고 그러고 있었다.
"여보... 개밥 줘야지,... 개밥."
간병인이 아내의 아랫도리를 벗기고, 두통 발작 때 흘린 사타구니 사이의 똥물을 닦아낼 때도 아내는 개밥을 못 잊어했다. 개의 이름은 보리였다. 내세에 사람으로 태어나라고, 아내가 지어준 이름이었다...
다시 생각해 보면, 보리는 단순히 아내에 대한 작가의 연민을 나타내기 위해 드러낸 장치가 아니라 인간에 대한 비유, 혹은 주인공 자신을 이야기하는 게 아닐까 생각이 됩니다. 어떻게 보면 김훈 작가님의 화장은 야한 소설로도 읽히고 불교 소설로도 읽힙니다. 아무튼, 죽음의 고통에서 개밥을 등장시키며 삶의 아이러니를 극대화시키는 장치로 활용이 됩니다. 하지만 보리는 단순히 극적인 상황을 극대화시키는 장치로서만 쓰이는 것이 아니라 소설 전체의 주제를 전달하기 위한 중요한 장치로 쓰이고 있다고 생각합니다.
"아이스크림에서 구린내가 나요"라고 아내는 울먹였다.
(중략)
"더운밥이 구린내가 더 심해요. 냄새가 김으로 퍼지거든요."라며 아내는 간병인을 들볶았다.
(중략)
...그래서 뇌가 온전할 때 맡을 수 없었던 그 냄새가 종양이 번지자 비로소 아내에게 감지되는 것은 아닌지, 그래서 누리고 비리고 향긋하고 상큼하던 냄새들이 아내에게는 모두 구린내로 느껴지는 것은 아닌지를 나는 생각했지만, 아무런 생각도 더듬어낼 수 없었다. 먹는 것이 급격히 줄어들자 아내의 똥은 새까맣고 딱딱하게 굳어졌다. 바싹 졸여진 환약처럼 물기가 없었고 찌를 듯한 악취를 풍겼다. 아내의 똥은 창자와 음식물 사이의 사투의 고통이 응축된 사리처럼 보였다. 간병인은 아내의 기저귀를 갈아 채울 때마다 향을 피우고 마스크를 썼다. 사지가 늘어진 아내는 기저귀를 갈아 채울 때면 수치심으로 두 다리를 버둥거리며 간병인을 밀쳐내려 했지만, 이내 기진맥진했다. 아내는 제 똥이 발산하는 그 지독한 악취에는 아무런 반응도 보이지 않았다. 아내는 완전히 뒤바뀐 냄새의 세계에서 마지막 날들을 숨 쉬고 있었다.
후각의 대비가 나타납니다. 아이크림과 더운밥에 구린내가 난다는 표현, 바싹 졸여진 환약이라는 시각적 표현이 아내의 똥에서 나는 악취와 맞물리며 후각 효과가 더욱 강해집니다. 건조한 묘사입니다.
5.
당신의 이름은 추은주. 제가 당신의 이름으로 당신을 부를 때, 당신은 당신의 이름으로 불린 그 사람인가요. 당신에게 들리지 않는 당신의 이름이, 추은주, 당신의 이름인지요.
파트는 다시 추은주에 대한 2인칭 서술로 이어집니다.
...당신은 빈 그릇에 당신의 국밥을 덜어서 아기 앞에 놓았습니다. 숟가락질이 서툰 아기는 밥알을 많이 흘렸습니다. 당신은 손수건을 아기의 턱 밑에 걸어주었습니다. 당신이 숟가락으로 뜨거운 국밥을 떠서 입으로 후후 불어서 식혔고, 당신이 반쯤 먹고 숟가락 위에 남은 밥을 아기에게 먹였습니다. 아기가 입을 크게 벌렸지요. 아기의 입속은 분홍색이었고 젖어 있었습니다. 당신의 아랫입술처럼 아기의 아랫입술이 아래로 조금 늘어져서 입술의 속살이 보였습니다. 작은 혀도 보였지요. 아기의 입속은 피부로 둘러싸이지 않은 맨살처럼 부드럽고 연약해 보였습니다. 코를 들이대면 거기서 당신의 몸냄새가 날 것 같았습니다. 숟가락이 커서 아기는 자꾸만 밥알을 흘렸습니다. 당신은 아기의 뺨에 붙은 밥알을 떼어서 당신의 입으로 가져갔고 아기의 턱 밑으로 흐르는 국물을 손수건으로 닦아주었습니다. 종업원이 작은 찻숟가락을 가져다주었습니다. 당신은 찻숟가락으로 아기에게 밥을 먹였습니다. 당신은 물에 헹군 무김치를 당신의 이로 잘라서 숟가락 위에 얹어서 아기에게 먹였습니다. 자반고등어도 그렇게 먹였지요. 때때로 당신 가까이서 당신의 생명을 바라로는 일은 무참했습니다. 당신의 아기의 분홍빛 입속은 깊고 어둡고 젖어 있었는데, 당신의 산도는 당신의 아기의 입속 같은 것인지요. 그 젖은 분홍빛 어둠 속으로 넘겨지는 밥알과 고등어 토막과 무김치 쪽의 여정을 떠올리면서, 저의 마음은 캄캄히 어두워졌습니다. 어째서, 닿을 수 없는 것들이 그토록 확실히 존재하는 것인지요. 먹기를 마친 당신의 아기가 밥상 주변을 걸어 다녔습니다. 아기는 넘어질 듯이 아장거렸습니다. 아기가 저에게 와서 저의 어깨를 짚었습니다. 아기를 안아주고 싶은 충동에도 불구하고 저는 몸을 움츠렸지요.
그날 저녁때, 저는 퇴근길에 바로 아내의 병실로 갔습니다. 간병인이 오지 않는 날이어서, 저는 병실에서 딸과 교대했습니다. 아내는 두 번째 수술을 받고 나서 시각중추까지 마비되어 있었습니다. 그날 밤 병실에 딸린 욕실에서 아내를 목욕시켰습니다. 침대에 누인 채로 아내의 옷을 모두 벗겼습니다. 저도 옷을 모두 벗었지요. 아내의 몸은 검불처럼 가벼웠고, 마른 뼈 위로 가죽이 늘어져서 겉돌았습니다. 저는 벌거벗은 아내를 안고 욕실 안으로 들어갔습니다. 아내의 상반신을 저의 어깨에 걸치고, 저는 등을 구부려서 아내의 허벅지와 다리를 씻겼습니다. 습기가 빠진 피부가 버스럭거렸습니다. 유아용 아이보리 비누를 풀어서 아내의 늘어진 피부를 손빨래하듯 씻어냈습니다. "여보... 미안해요" 라면서 아내는 울었습니다. 요강처럼 가운데가 뚫린 의자 위에 아내를 앉혔습니다. 의자 위에서 아내는 사지를 늘어뜨렸습니다. 아내의 두 다리는 해부학 교실에 걸린 뼈처럼, 그야말로 뼈뿐이었습니다. 늘어진 피부에 검버섯이 피어 있었습니다. 죽음은 가까이 있었지만, 얼마나 가까워야 가까운 것인지는 알 수 없었습니다. 저는 의자 밑으로 손을 넣어서 아내의 허벅지와 성기 안쪽과 항문을 비누칠한 수건으로 밀었고 샤워기 꼭지를 의자 밑으로 넣어서 비누를 닦아냈습니다. 닦기를 마치고 나자 아내가 똥물을 흘렸습니다. 양은 많지 않았지만, 악취가 찌를 듯이 달려들었습니다. "여보... 미안해..." 아내는 또 울었습니다. 시신경이 교란된 아내는 옆을 볼 수가 없었습니다. 아내의 시각은 앞쪽으로만 고정되어 있었습니다. 울면서, 아내는 자꾸만 고개를 돌리면서 두리번거렸습니다. 아마도 수치심 때문이었을 것입니다. 저는 샤워 물줄기로 바닥에 떨어진 똥물을 흘려보내고 다시 아내를 의자에 앉혔습니다. 아내의 항문과 똥물이 흘러내린 허벅지 안쪽을 다시 씻겼습니다. 환풍기를 켜서 욕실 안의 냄새를 뽑아냈습니다. 마른 수건으로 몸을 닦아 침대에 뉘었습니다. 아내는 자꾸만 울었습니다. 아내의 울음소리는 가늘고 희미했습니다.
"여보 울지 마... 내가 있잖아"라고 나는 말해주었습니다...
아기가 밥을 먹는 장면과 환자의 몸을 씻기는 장면이 강하게 대비됩니다.
...새벽 두 시였습니다. 누군가가 또 숨을 거두려는지, 당직 수련의와 간호사들이 복도 저쪽 끝으로 급히 달려갔습니다. 그 새벽 두 시의 병원 복도에서 당신의 아기의 입속을 생각했습니다. 당신께 달려가서, 사랑한다고 말하고 싶었습니다. 사랑한다고, 시급히 자백하지 않으면 아내와 저와 그리고 이 병원과 울트라 마린블루의 화장품과 이미지들이 모두 일시에 증발해버리고 말 것 같은 조바심으로 저는 발을 구르고 싶었습니다. 그리고 당신께서 저의 조바심을 아신다면, 여자인 당신의 가슴은 저를 안아주실 것만 같았습니다. 당신의 이름은 추은주. 제가 당신의 이름으로 당신을 부를 때, 당신은 당신의 이름으로 불린 그 사람인가요. 당신에게 들리지 않는 당신의 이름이, 추은주, 당신의 이름인지요.
6.
유리창 너머로 마스크를 쓴 화장장 직원이 유족들을 향해 거수경례를 보냈다. 직원은 버튼을 눌러 소각로 입구를 열었다. 소각로 바닥에 열판 코일이 깔려 있었다. 소각로는 엘리베이터 식이었다. 직원은 아내의 관을 소각로 안으로 밀어 넣고 입구를 닫았다. 딸이 약혼자의 등에 기대어 울었다. '소각중... 완료 예정시간 오후 2시'라는 빨간 글자가 소각로 문짝 위에 켜졌다. 염을 할 때, 아내의 몸은 한 움큼이었다. 염습사는 기를 쓰듯이 염포를 끌어당겨 아내의 시신을 꽁꼬 묶었다. 염이 끝난 아내의 몸은 긴 나무토막처럼 보였다. 그 나무토막의 아내 쪽에 꽃신이 걸려 있었다.
소각이 끝나려면 두 시간 이상을 기다려야 했다. 나는 우는 딸을 데리고 대기실로 나왔다...
당신의 이름은 추은주, 라는 주술적인 반복문들과 함께 다섯 번째 파트가 끝나고 이내 화장을 하는 장면으로 넘어갑니다. 병원에서 누군가의 죽음이 자연스럽게 화장식장의 장면으로 연결되지만, 문체와 화자 내면의 대비는 강렬합니다.
...여기저기서 유족들은 울었다. 소복 차림의 젊은 여자들이 가슴을 쥐어뜯으며 울었고, 울다가 실신한 노인을 밖으로 옮겨갔다. TV 화면에서 전쟁특보는 계속되었다. 바그다드 진공작전이 지연되자 뉴욕 증시에서 주가가 폭락했고, 코스닥 지수도 바닥으로 내려앉았다. 바퀴벌레들이 대기실 바닥을 기어 다녔다. 바퀴벌레는 TV 화면에까지 기어올라갔다. 파리채를 든 화장장 직원이 바퀴벌레를 때려서 잡았다. 바퀴벌레가 터지면서 생긴 얼룩을 직원은 대걸레로 밀었다. 대기하는 두 시간은 그렇게 지나갔다. 오후 두 시에 아내의 소각은 완료되었다. 염을 한 직후에 아내의 시신은 다시 병원 냉동실로 들어갔었다. 언 상태에서 탔을 것이다. 얼음과 불 사이는 가깝게 느껴졌다. 나는 딸을 데리고 다시 관망실 유리창 앞으로 갔다. '소각완료'라는 글자가 소각로 문짝에 켜져 있었다. 유리창 너머에서 화장장 직원이 다시 거수경례를 해 보였다. 직원은 버튼을 눌러 소각로 입구를 열었다. 바람에 불려 가다가 멎은 듯한 뼛조각 몇 점과 재들이 소각로 바닥에 흩어져 있었다. 뼛조각들은 신체의 어느 부위인지를 알아볼 수 없이 흩어져 있었다. 대퇴부인지 두개골인지 알 수 없이, 흩뿌려진 조각들이었다. 희고, 가벼워 보였다. 아내의 뇌수 속에서 반짝이던 종양의 불빛은 보이지 않았다. 유리창 너머로 소각로 속은 아직도 뜨거워 보였다. 빗자루를 든 직원이 소각로 안으로 들어갔다. 그는 땀방울이 유골에 떨어지지 않도록 이마에 수건을 동이고 있었다. 직원이 빗자루로 뼛가루를 쓸어서 쓰레받기에 담아서 유골함에 넣었다. 직원은 가루부터 먼저 담고 큰 뼛조각들은 유골함의 위쪽에 담았다. 유골함 뚜껑을 닫고 나서 직원은 다시 거수경례를 보냈다. 직원은 유골함을 흰 보자기에 쌌다. 유리창 아래쪽 작은 구멍을 열고 직언은 유골함을 내밀었다. 나는 유골함을 받았다. 딸이 울었다.
정말 건조합니다. 화장장에서 바퀴벌레의 시신이며, 바그다드 진공작전, 주가 폭락을 서술하면서 정작 주인공의 행동은 유골함을 받는 것 하나입니다. 감정 묘사는 딸이 울었다, 하나로 끝냅니다.
"상무님, 추은주가 오늘 사직서를 내고 회사를 떠났습니다."
납골당에 유골함을 맡기고 돌아오는 버스 안에서, 거기까지 따라온 인사담당이사는 그렇게 말했다.
"추은주라면, 그 기획과의 여직원 말인가? 얼굴이 갸름한..."
"그렇습니다. 남편이 외무공무원인데, 워싱턴으로 발령을 받아 간답니다."
"그렇게 됐군..."
"상무님이 상중이라서 말씀드리지 못하고 떠난다고 했습니다."
"그렇군. 그 친구 근무 평점은 어땠나?"
"뭐, 중하쯤 됐을 겁니다. 담당부장이 별 아쉬워하는 기색도 없더군요."
"그럼 후임을 충원해야 하는가?"
"아닙니다. 담당부장이 충원 없이 일하기로 했답니다."
"그렇군. 사표 처리합시다."
추은주가 사표를 내고 떠납니다. 건조한 서술은 추은주에 대해서도 예외가 없습니다. 근무 평점, 사표처리. 앞선 파트들의 추은주에 대한 고백조의 문장들과 대비를 이룹니다.
...아내의 장례가 끝나는 날까지 나는 '내면여행'과 '가벼워진다' 사이에서 아무런 결정도 못 내리고 있었다. 초상을 치른 다음날 나는 출근했다. 여름 광고 이미지 결정을 위한 마지막 중역회의가 있는 날이었다. 인사부 직원이 추은주의 사직서 처리와 퇴직금 정산을 위한 결재서류를 내 책상 앞에 가져다 놓았다. 과장부터 담당이사까지 이미 도장이 찍혀 있었다. 나는 추은주의 퇴사서류에 사인했고, 사직서를 수리했다. 퇴직금 정산서에 '신속집행 요망'이라는 의견을 첨부해서 경리과로 보냈다. 빈소에서 부의금 접수를 맡았던 경리담당 직원 접수결과를 보냈다. 오천육백만 원이 접수되었다. 경리과 직원은 돈을 수표 한 장으로 바꾸어서 봉투에 넣어왔다. 부의록 장부를 내 책상 위에 올려놓고 경리과 직원은 돌아갔다. 부의금으로 딸의 혼수를 장만하느라고 빌려 쓴 은행빛을 갚아야겠구나라고 나는 생각했다. 그날 중역회의에서도 여름 광고 이미지는 확정되지 못했고 사장은 나의 판단과 집행에 따르겠다고 말했다. 나는 판단할 수 없었다. 그날 저녁에는 일찍 퇴근했다. 퇴근길에 비뇨기과에 들러서 방광 속의 오줌을 뺐다. 성기에 도뇨관을 꽂고 두 시간 동안 누워서 오줌이 흘러나가기를 기다렸다. 침대 밑 오줌통 속으로 오줌은 쪼르륵 쪼르륵 흘러내려갔다. 오줌이 빠져나간 방광은 들판처럼 허허로웠다.
집에는 아무도 없었다. 묶인 개가 개집에서 뛰쳐나오면서 허리까지 뛰어올랐다. 아내가 없는 집에서 개를 기를 수는 없을 것이었다. 나는 개를 끌고 동물병원으로 갔다. 오랜만의 나들이에 개는 흥분해서 마구 줄을 끌어당기며 앞서갔다. 나는 수의사에게 안락사를 부탁했다.
"좋은 종자군요. 길러보지 그러십니까."
수의사는 개머리를 쓰다듬으며 말했다.
"개를 기를 형편이 못 되오. 밥 줄 사람도 없고..."
수의사는 개를 쇠틀에 묶었다. 겁에 질린 개는 온순하게도 몸을 내맡기고 있었다.
"개 이름이 뭡니까?"
"보리입니다."
"보리라면?"
"사람으로 태어나라는 뜻이라고 우리 집사람이 그럽니다."
의사는 개 목덜미 살을 움켜잡고 주사를 찔렀다. 의사가 피스톤은 밀자 개는 천천히 아래로 늘어지더니, 굳은살 박인 발바닥을 내밀며 앞발을 쭈욱 뻗었다. 개의 사체는 수의사가 처리해 주었다. 집에 돌아와서 나는 광고담당이사에게 전화를 걸었다.
"이봐, 지금 지지고 볶을 시간이 없잖아. '가벼워진다'로 갑시다. '내면여행'은 아무래도 너무 관념적이야. 그렇게 정하고, 내일부터 예산 풀어서 집행합시다."
"알겠습니다. 모델과 카메라 모두 스탠바이 상태입니다. 로케이션 섭외도 끝났으니까 별 어려움 없을 겁니다."
그날 잠, 나는 모처럼 깊이 잠들었다. 내 모든 의식이 허물어져 내리고 증발해 버리는, 깊고 깊은 잠이었다.
<끝>
어떻게 읽으셨나요?
지금까지 김훈 작가님의 단편 "화장"이었습니다.
2014년에 임권택 감독님께서 영화화도 하셨습니다. 안성기 배우님과 김규리 배우님, 김호정 배우님께서 출연하셨습니다. 영화는 저도 지나가는 장면으로만 봤습니다. 김훈 작가님의 문장과 글을 좋아하지만 따라 할 수는 없겠다는 생각이 계속 드네요. 귀한 소설을 토막글로 올려서 죄송합니다. 기회가 되신다면 전문을 읽어보시길 추천드립니다. 칼의 노래와 남한산성도 좋지만 저는 화장도 좋더라고요. 강력 추천드립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