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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김커선 May 24. 2022

혼자라 다행인 치앙마이 가는 길

후에에서 치앙마이 가는 길

3월이었지만 봄이고 자시고 베트남의 도시 후에(Hue)는 하루 종일 뜨거웠다. 후에는 베트남 마지막 왕조의 수도로 산과 바다가 맞닿은 곳에 위치하고 있었다. 우리나라로 치면 경주와 비슷한 분위기를 지닌 고즈넉한 도시였다. 스쿠터와 버스를 이용했던 베트남 여행은 호찌민에서 시작해 마지막 종착지인 후에에 이르고 있었다. 하루 종일 혼자서 자전거를 타며 평온하고 고요한 후에를 열심히 쏘다녔다.

후에는 하루 종일 자전거로 돌아다녀도 매일 새로운 볼거리가 나타났다

후에에서 며칠 동안 정중동(靜中動)의 시간을 보내고 있자니 슬슬 몸이 들썩들썩하기 시작했다. 모험이 필요했다. 그럴 땐 바로 히치하이킹. 사실 대중교통수단을 이용해 정해진 시간에 맞춰 딱딱 타고 내리고 하는 식의 여행은 편안하고 안전했지만 또 그만큼 지루했다. 차 안에서 할 수 있는 거라곤 멍 때리기나 잠자기 뿐이었다. 반면 '이번엔 길 위에서 어떤 이들을 만나게 될까, 무슨 일이 생길까, 그럼 나는 어떻게 헤쳐나가야 하나' 히치하이킹을 상상하는 것만으로도 내 가슴이 두근거렸다. 아드레날린이 샘솟는 모험이라니, 교통비를 아끼는 것은 덤에 불과했다.

이번 여정의 최종 목적지는 태국의 '치앙마이'였다. 먼저 베트남의 후에를 출발한 뒤 라오스를 가로질러 다시 태국으로 돌아가려면, 장장 1300km가 넘는 거리를 이동해야 했다. 그것도 국경을 두 번이나 넘어가면서 말이다. 오로지 히치하이킹으로만 도전해 보고 싶은 마음이 굴뚝같았지만, 히치하이킹이 여의치 않은 동남아시아에서 잠깐씩 대중교통을 이용해야 할지도 모르겠다. 그때 그때 사정을 보아가며 판단하기로 하고 길을 나섰다.     

베트남 후에-라오스 사반나켓-태국 치앙마이를 잇는 1300km의 히치하이킹 여정

 


드디어 출발

일단 베트남-라오스 국경까지는 대중교통을 이용하기로 했다. 베트남 체류허가 마지막 날이었기 때문에 길에서 어영부영 보낼 시간이 없었기 때문이다. 게스트하우스 주인장 말에 따르면 후에에서 가장 가까운 국경은 '라오 바오(LAO BAO)'였다. 오랜만의 히치하이킹인 데다 갈 길이 멀었기에 새벽에 선잠을 깨어 이른 아침을 챙겨 먹고 서둘러 길을 나섰다.

국경행 미니버스에 몸을 싣고 이리 치이고 저리 치이며 드디어 라오스 국경에 다다랐다. 국경에는 출입국 도장을 받으려는 사람들이 이미 줄지어 늘어서 있었다. 여행하는 동안 수도 없이 국경을 넘나들었음에도 국경 앞에 설 때마다 가슴이 조마조마해지는 건 어쩔 수 없었다. 생각지도 못한 일들이 어디선가 툭툭 튀어나와 발목을 잡았기 때문이었다. 만약을 대비해 통장 잔고 증명서, 각국 비자 협약에 관한 조항 등을 인쇄해 소지하기도 했다.

이번에도 괜히 긴장된 얼굴을 하고서 길게 늘어선 줄 끝에 합류했다. 시간은 걸렸지만 다행히 아무 문제없이 베트남 출국 도장과 라오스 입국 도장까지 일사천리로  받을 수 있었다. 이제 본격적인 히치하이킹에 나서기만 하면 되었다.    

후에에서 라오 바오(베트남-라오스 국경도시)로 단박에 데려다 줄 미니버스. 히치하이킹에 비하면 참 쉽다 간단하다.


라오스 사반나켓행 히치하이킹

라오스 출입국관리사무소에서 비자를 받자마자 나는 도로 출구로 달려 나갔다. 왼손엔 라오스와 태국의 국경도시 '사반나켓'이라고 쓰인 사인보드를 들고 오른손은 위로 들어 올려 휘휘 저었다. 많은 동남아 국가에서 히치하이킹이라는 개념은 매우 낯설어서 거의 없는 거나 마찬가지였다. 낯선 이의 차를 얻어 타는 게 위험하냐 아니냐는 두 번째 문제였다. 현지인들이 "너 지금 돈이 없어서 그래?"하고 물어오면 마땅히 할 말이 떠오르지 않았다.

'사반나켓' 사인보드를 들고 도로가에 서 있자마자 사람들의 눈길이 일제히 나에게로 쏟아졌다. 국경을 수비하는 군인들마저 '저거 저거 뭐하는 짓이지?' 하는 의혹의 눈초리를 보내왔다. 후에에서 함께 미니버스를 타고 왔던 젊은 청년 하나가 나에게로 불쑥 다가왔다. "버스를 타려면 저~쪽으로 돌아가 우선 버스표를 구입하라"라고 충고를 해왔다. 조금 더 서 있다가는 나를 지켜보는 사람들에게 끌려 강제로 버스에 태워질 것 같은 예감이 엄습했다. 너무 늦지 않게 마침, 대형트럭 한 대가 다가오더니 서서히 멈추어 섰다. 설마? 젊은 운전자가 문을 열더니 "사반나켓으로 가니 타라"라고 말을 건네는 게 아닌가? 기대치도 않게 시작이 쉬웠다. 아무리 신이 나도 중요한 질문 하나를 잊어서는 안 되었다. "공짜로 태워 주는 거 맞죠?" 젊은 운전자는 환하게 웃으며 고개를 끄덕끄덕했다. 운전자는 베트남 사람으로 덴마크 운송회사에서 일하고 있었다. 원활하지는 않았지만 영어로 어느 정도는 소통이 가능했다. 운전자 역시 후에에서 오는 길이었는데 아내와 아들 둘 가족은 모두 후에에 살고 있다고 했다. 나는 후에야말로 참으로 고요하고 아름다운 도시였다고 조금 과장되게 칭찬을 늘어놓았다. 물론 아름다운 건 사실이었다.

'베트남-라오스 국경'에서 '라오스-태국 국경' 사반나켓까지의 거리는 140킬로미터, 트럭은 바쁠 것 없다는 듯 천천히 길을 달렸다. 트럭 높은 곳에 올라앉아 여유를 부리며 바깥 풍경을 즐기는 재미가 쏠쏠했다. 길가를 지나가는 소, 하교 길 소녀들, 도로포장 공사현장마저도 모두 정겹게 느껴졌다.  

한산한  도로 풍광, 정겹다

라오스 남부를 천천히 가로지르던 트럭이 드디어 사반나켓에 다다랐다. 장장 다섯 시간을 달려온 길이었다. 아침 일찍부터 시작된 여정이었는데 어느덧 해가 어스름하게 지고 있었다. 아무래도 당일 태국 국경을 넘기에는 늦은 감이 있었다. 일단 사반나켓 시내로 들어가 요기를 좀 하고 묵을 곳을 찾아보기로 했다. 운전자에게 시내로 들어가는 길 아무 데나 좀 내려다 달라고 부탁했다.

'사반나켓'은 메콩강을 사이에 두고 태국과 국경을 마주하고 있어서 태국과의 무역이 활발한 작은 국경도시였다. 그래서인지 숙박이나 먹거리 물가가 베트남보다 비싼 감이 있었다. 호주머니에 있던 라오스 돈을 탈탈 털어 생선국수 한 그릇을 사 먹었고 비교적 깨끗한 숙소도 구했다. 아무리 길바닥을 전전하고 있어도 낯선 곳에서의 잠자리는 늘 뒤숭숭한 기분을 들게 했다. 물론 한낮의 피로 덕분에 뒤척임은 채 5분을 넘지 못하는 것도 사실이었다.

운전자와 기념사진을 찍고 작별인사를 건넸다. 내일도 오늘처럼 순조롭고 안전하고 수월한 히치하이킹을 할 수 있다면 얼마나 좋으려나.


멀고 먼 사반나켓 국경 사무소 가는 길

태국과 라오스 국경에는 메콩강이 흐르고 있었다. 메콩강은 수백 킬로미터에 걸쳐 있었고 그 자체가 국경 역할을 했다. 나의 최종 목적지 치앙마이로 가려면 흙빛 메콩강에 놓인 제2 타이-라오 우정의 다리를 건너야 했다. 숙소 앞에는 허름한 버스 터미널이 있었는데, 여기서 국경 버스는 매 시간에 한 대꼴로 하루 12차례 운행되고 있었다. 국경 사무소까지 가려면 버스를 타야 했는데, 왠지 쉬이 버스를 이용하기가 망설여졌다. 실은 어젯밤 마지막 남은 라오스 동전 하나까지 몽땅 털어 숙박비를 지불하는데 써 버렸었다. 고작 1800원 버스비 때문에 또 환전을 하자니 귀찮은 생각이 들었다. 버스 말고 그냥 걸어서 건너면 안 되나? 메콩 강을 가로지르는 국경 다리를 도보로 건너는 건 얼핏 생각해도 쫌 낭만이 있어 보였다. 지도를 확인해 보니 넉넉 잡아 한 시간이면 국경을 건널 수 있을 것 같았다. 나는 얼른 배낭을 들쳐 메고 국경 다리가 보이는 방향을 향해 길을 나서기 시작했다.  

라오스 국경 사무소는 지도에서 확인한 것보다 훨씬 멀리 위치하고 있었다. 게다가 내가 지름길이라 여기며 따라갔던 길은 국경까지 이어지지 않았다. 국경 사무소를 코 앞에 두고서 길은 공장의 높디높은 담벼락으로 가로막혀 있었다. 하는 수 없이 무거운 배낭을 짊어지고 땀을 뻘뻘 흘리며 돌아 나와야 했다. 어림짐작으로 다시 길을 찾기 시작한 나는 어느덧 논두렁처럼 좁디좁은 길로 들어 서고 있었다. 주변에 인적은 없고 온통 쓰레기만 나뒹굴고 있었는데 그 사이로 버려진 주사기도 보였다. 어째 기분이 으스스한 게 식은땀이 나고 걸음이 자꾸만 빨라졌다. 그나마 아슬아슬하게 이어지던 오솔길은 곧 아예 끊겨 버렸다. 돌아 나가는 길은 더 아득했다. 사면초가. 어쩔 수 없이 나는 덤불을 헤쳐가며 없는 길을 만들어 가며 꾸역 구역 앞으로 나아갔다. 어차피 길은 통한다는 말이 맞는구나 싶게 마침내 국경 사무소가 코 앞에 모습을 드러냈다. 그런데 웬걸, 또다시 높고 긴 담벼락이 내 앞을 막아섰다. '그냥 버스 탈 걸' 하는 후회를 두 시간째 곱씹으며 나는 담벼락을 따라 다시 걷기 시작했다. 마침내 높이가 나지막한 지점을 찾아낼 수 있었고, 밤손님 담 넘듯 혹은 구렁이 담 넘어가듯 나는 거침없이 담벼락을 타 넘었다.

마침내 대로를 사이에 두고 라오스 국경 사무소를 마주할 수 있었다. 햇살은 뜨거웠고 땀과 먼지가 범벅된 내 몰골은 이미 말이 아니었다. '그냥 버스 탈걸'하는 후회를 다시금 곱씹으며 마지막으로 대로를 횡단하는 것으로 국경 사무소를 향한 대장정이 마무리되었다. 이 모든 여정은 만약 내가 좀 더 지각 있고 현명해서 버스만 탈 줄 알았더라면, 단 5분 만에 끝낼 수 있던 길이었다.

메콩강을 가로지르는 국경 다리의 길이라봤자 고작  2~3km에 불과했다. 충분히 걸어서 건널 수 있는 다리라고 생각했다, 처음에는.


어우씨, 진작 버스 탈걸

가까운 길을 멀리 돌고 돌아 힘들고 어렵게 국경 사무소에 다다른 것과는 별개로 출국 도장은 신속하게 받을 수 있었다. 지친 몸을 의자에 기대에 잠시 쉬다가 나는 다시 길을 나섰다. 아직 치앙마이까지는 1000km도 넘게 남아 있었다. 길을 헤매느라 오전 시간을 다 까먹어 버렸더니 마음이 조급해졌다. 멀리서 국경다리를 내다보니 몇몇 사람이 그 위를 걸어서 오가는 모습이 보였다. 나 역시 배낭을 짊어지고 서둘러 다리를 향했다. 메콩강에 놓인 이 다리를 호주가 건설했다던가, 웅장한 멋이 있었다. 내가 국경 다리에 인접하던 찰나 주변을 지키던 몇몇 경찰들이 당황한 기색을 보이며 나에게로 다가왔다. 그런데 서로 말이 통하지 않았다. 경찰들은 이내 돌아갔고 나는 가던 길을 계속해서 가는 중이었다. 어느덧 톨게이트를 지나 본격적으로 메콩강 위를 지나갈 즈음이었다.

그때 다시 오토바이를 탄 경찰이 황급히 나에게로 달려오더니 멈추어 섰다. 이번에는 영어가 통하는 사람이었다. 그는 나에게 상냥하고 친절한 목소리로 안내를 건네 왔다.
"이 다리는 도보로 건널 수 없습니다. 국경 사무소로 돌아가 버스를 타야 해요."
전혀 예상치 못한 소리에 나는 어리둥절했다. 아침부터 여기까지 온다고 개고생을 한 것도 억울한데 타이 국경을 바로 코앞에 두고서 다시 돌아가 버스를 타야 한다니. 어질어질했다. 마침 맞은편에서 아주머니 세 명이 다리를 건너오고 있는 중이었다.  
"지금 저 사람들은 도보로 다리를 건너고 있잖아요?"
나는 경찰에게 반문해 보았다. 그러자 "저들은 국경 인근 주민으로 다리를 건너도 되는 사람들"이라는 답이 돌아왔다. 이쯤 되면 단념해야 했다. 오전 내내 덤불을 헤치고 담벼락을 타 넘은 보람도 없이 나는 맥없이 경찰 오토바이 뒷좌석에 실려 검문소로 돌아가야 했다. 마침 어제 내가 묵었던 숙소 바로 '코 앞'에 위치했던 버스터미널에서 출발한 국경 버스가 검문소에 막 도착하는 중이었다. 심지어 버스비는 태국 바트화로도 지불이 가능했다. 오전 내내 나는 무엇을 위해 걸었던가? 밀물처럼 밀려온 허무감에 사로잡힌 채 나는 버스에 실렸다. 시원한 에어컨 바람을 맞으며 잠시 눈을 감았다 뜨는가 싶었더니 벌써 태국 묵다한 국경검문소로 들어서고 있었다. 내 머릿속에는 오로지 단 한 가지 생각밖에 없었다. '이럴 줄 알았으며 진작 버스 탈걸... 하...'      

메콩강에 놓인 '라오스-태국' 국경다리를 건너기 직전의 톨게이트 모습

 

 

나 혼자 여행이라 다행이다

돌이켜 생각하면 수록 '걸어서 국경을 통과한다' 오전 내내 길바닥에 쏟아부은 나의 시간과 노력이 무척이나 허망하게 여겨졌다. 그렇다고 아주 의미 없는 일만은 아니었던  이럴 때일수록 위로가 되는 도 있 마련이었다. 그건 바로 ' 혼자 여행'이라 얼마나 다행인가 다시금 확인하게 되는 것이었다.

만약  옆에 여행 동반자가 있었더라면 그래서 함께  시행착오를 겪었더라면 어떠했을까? 아마 절대로 그냥 넘어가지는 않았을 것이다. 버스 터미널을 눈앞에 두고도 버스를 타지 않겠다고 고집을 부린 , 없는 길을 만들어가며 헤매는 쓸데없이 창의적이고 황당한 상황을 맞이한 , 결국 귀한 오전 시간을 몽땅 허비하고  , 알고 봤더니 태국 돈으로도 버스비를 결제할  있었던  등등 싸울 거리가 도처에 넘쳐나는 아침이었다. 나는 여행 동반자에게 사과를 하느라 손발이 닳았을 것이고 그럼에도 불구하고 상대는 투덜거림을 멈추지 않았을 것이다. 가뜩이나 뜨거운 햇볕 아래 무거운 배낭을 짊어지고 걷느라 몸과 마음 모두 지쳐 있는 상태에서 나는 나대로 불쑥 짜증이 올라왔겠지. 감정싸움으로 번질  불을 보듯 뻔했다.
무더운 날씨 속에 배낭여행을 하며 이성과 냉정을 유지하기란 정말 어려운 일이었다. 게다가 원래 여행은 시행착오의 반복이고 연속이기 마련이. 특히 나는 그 정도가 지나친 감이 없잖아 많았다. 그때마다 짜증과 화를 있는 대로 부리다 보면 서로가 서로에게 상처 입히기 아주 좋은 날씨이고 상황이다. 이런 일들이 하나둘 반복될 때마다 서로 간에 감정이 쌓이고 불신도 쌓이게 마련이다. 머잖아 "그래, 니는 니대로 나는 나대로 여행하자" 작별을 고하기란 수순일 것이다. 비록 너무 비관적인 면도 없잖아 있지만 현실적인 이야기이다. 생각만으로도 벌써 피곤한 기분이 들었다.

그러나 봐봐, 생각보다 나는 운이 좋은 사람임에 틀림없었다. 아무리 멍청하고 어리석은 결정을 내리고 뻘짓을 저지르고 돌아다녀도 눈치챌 사람이 곁에 없었다. 옆에서 잔소리들을 일은 더더군다나 없었다. 얼마나 운이 좋아야 '혼자 여행'을 할 수 있는 것일까? 나의 비합리적인 고집과 멍청함을 목격한 사람이 없어 천만다행인 아침이었다. 사과할 일도 싸울 일도 없으니 참 다행이라며 나는 곧 싱글벙글한 채 국경 버스에서 내렸다.  



돈 없어요?

묵다한 국경 검문소에서는 승용차를 히치하이킹해서 약 15분가량 이동할 수 있었다. 장장 1000킬로미터나 떨어진 치앙마이를 향해 다시 본격적인 히치하이킹이 시작되고 있었다. 나는 길 한쪽 귀퉁이에 붙어 서서 손을 들고 히치하이킹을 시도했다. 5분이 채 지났을까? 승용차 한 대가 내 앞에 멈추어 서더니 젊은 남성 운전자 한 명이 내렸다.
"어디서 왔어요? 지금 어디로 가는 길이죠? 그나저나 왜 그러고 서 있는 겁니까?"
운전자는 나에게 이런저런 질문을 던지기 시작했다. 나는 머쓱한 태도로 '지금 치앙마이로 가는 길인데 차를 좀 얻어 타려는 중'이라고 대답을 건넸다. 운전자의 눈이 휘둥그레졌다.
"돈이 없어요?"
당연히 돈이 없지는 않았다. 굳이 설명하자면 여행이 좀 더 재미있자고 히치하이킹을 시도하는 중이었다. 히치하이킹이 없는 동남아시아에선 상대방의 고개를 갸우뚱하게 만드는 대답이었다. 이야기를 나누다 보니 운전자는 바로 당일 비번인 경찰이었다. 내가 차를 잡는다고 서 있던 곳이 알고 봤더니 지구대 바로 코 앞이었던 것이다. 지구대 앞을 지나는 길에 경찰은 여행자를 발견하고서 차를 멈춰 세웠고, 떠날 생각을 하지 않았다. 그는 자신이 태워주고 싶지만 멀리 가지 못해 도움이 되지 못한다며 나보다 더 나를 걱정하느라 바빴다. 경찰은 지구대 주변을 서성이며 뭔가를 골똘히 궁리하는가 싶더니, 이내 주변에 나타난 사람들과 심각한 얼굴로 대화를 나누기 시작했다.

그때 대학생쯤으로 보이는 남학생 하나가 나타났다. 또 한 번 알고 봤더니 지금 내가 히치하이킹을 하려고 서 있던 곳은 경찰지구대 앞이자 곧 버스 정거장이기도 했다. 학생은 버스를 타러 온 길이었다. 경찰은 학생을 붙잡고서 어떤 버스를 타려고 하는지, 어디까지 가는지 등등 질문을 던지는 듯했다. 두 사람은 대화를 나누는 도중에도 틈틈이 나를 힐끔거렸다. 나를 주시하는 눈빛이 아무래도 '어떻게 하면 무사히 쟤를 치앙마이로 보낼 수 있을까'토론을 하고 있는 것 같았다. 좀 전까지만 해도 '나 혼자 여행'이라 홀가분하니 뭐니 어쩌고 좋다 하고 있었는데, 난데없이 시어머니 두 명을 마주친 것 같은 기분이  들었다. 이건 히치하이킹을 하는 것도 아니었고, 아닌 것도 아니었다. 시어머니들이 눈을 희번덕거리며 긴히 의논 중인데 중간에 내 멋대로 히치하이킹을 시도하기란 몹시 눈치가 보였다. 나는 그 자리에 선채로 그만 머쓱해져 버렸다. 이러지도 못하고 저러지도 못하고, 무슨 일이 어떻게 진행되고 있는지 가늠도 잘 안 되었다. 쭈뼛대며 서 있자니 시간만 자꾸 흘러가고 있었다.

이윽고 결론이 난 건지 경찰과 학생이 내 쪽으로 다가왔다. 경찰은 "이 학생이 버스를 탈 건데 너도 같은 버스를 타면 된다"며 간곡한 조언을 건네는 게 아닌가. 마침 비번이기도 하거니와 경찰은 내가 버스 타는 걸 보기 전까지 이곳을 떠날 생각이 없어 보였다. 저렇게까지 부탁하듯 말하는데 나는 마땅히 거부할 수도, 거절할 이유도 찾을 수 없었다. 하는 수 없이 "그래 알았다, 버스 탈게"라고 대답할 수밖에.  그때 경찰은 나에게 무언가를 건네 주려는 듯 행동하다가 멈칫했다. 그리고선 몸을 돌리더니 내가 아니라 남학생에게 손에 쥔 것을 건네고 있었다. 남학생은 멋쩍은 얼굴을 하고선 작게 손사래를 쳤다. 경찰의 손을 자세히 살펴봤더니 지폐가 몇 장 들려있었다. 경찰은 혹시라도 나에게 돈이 없을까 봐 대신 버스비를 내주려 했던 것이다. 나에게 주면 안 받을 것 같으니 남학생에게 대신 내주라고 부탁하는 것이었다. 순간 나는 복잡한 감정에 얽히고설키며 들었다. 이렇게까지 여행자를 걱정해주는 낯 모르는 이의 호의가 황송하기도 하고, 내가 이렇게까지 없어 보이나 당황스럽기도 하고, 상대의 진심 어린 마음이 전해져 뭔가 울컥하기도 했다. 물론 끝까지 줬더라면 못 이긴 척 돈을 받을 수......  



히치하이킹 대신 버스에 실렸다

그때 버스 한 대가 부아앙 먼지바람을 일으키며 저 멀리서 달려오는 게 보였다. 버스는 우리 앞에서 서서히 속도를 멈추었고 이윽고 앞문이 열렸다. 이번에는 경찰과 남학생과 그리고 버스 기사까지 합세해서 셋이서 이야기를 쑥덕쑥덕 주고받기 시작했다. 마침내 경찰이 나에게 말했다.

"이 버스 타고 종착역에 내리면 돼요. 거기서 치앙마이 가는 버스를 탈 수 있을 거예요."
'치앙마이 가는 길'의 모험에 들떠있던 야심 찬 히치하이커는 그렇게 경찰과 남학생과 그리고 버스기사의 등에 떠밀려 마침내 버스에 실리고 있었다. 사실 그간 인도네시아, 말레이시아 그리고 태국에서 히치하이킹을 하려고 길가에 서 있으면 정말로 많은 사람들이 내 앞에 멈추어 섰었다. 그들 중 대다수는 "히치하이킹 그런 건 모르겠고 버스터미널이 저기 있는데, 넌 여기서 대체 뭐 하는 거니" 혹은 아예 "내가 버스터미널로 데려다줄게, 얼른 타라"는 반응을 보이긴 했었다.

그런데 이렇게 불시에 버스에 실리기는 또 처음이었다. 창밖으로 나를 마중하고 서 있는 경찰에게 나는 어색하게 손을 흔들어 작별 인사를 건넸다. 어리둥절함도 잠시 막상 버스에 올라앉으니 피곤함 때문인지 졸음이 쏟아져 내렸다. 버스에는 에어컨이 시원하고 나오고 있었다. 뜨거운 땡볕에서 종일 걷다 서다를 반복하다 비로소 시원한 곳에 궁둥이를 붙이고 앉았더니 이곳이 천국이구나 싶었다. 눈꺼풀이 절로 거불 거불 하고 있었다. 역시 버스가 좋긴 좋았다. 괜히 사람들이 버스로 이동하는 게 아니었다. 한편으로는 나름 야심 차게 시도했던 1000킬로미터 치앙마이 히치하이킹이 이렇게 막을 내리는구나 싶어 마음 한 구석에서 아쉬움이 번져가고 있었다.   

나는 재빨리 주머니를 뒤져 전에 쓰고 남겨둔 태국 돈을 꺼내보았다. 넉넉지는 않았지만 버스비를 지불하기에는 충분한 것 같았다. 아무래도 다음 터미널에 내리면 환전을 좀 해야겠다고 생각했다. 나는 연신 하품을 해대며 꾸벅꾸벅 졸다 말고 이내 짧지만 깊은 단잠에 빠져들었다.  



이토록 친절한 사람들

한잠 자고 났더니 피로가 풀리는 기분이었다. 시원한 좌석에 앉아 창밖을 구경하며 선물처럼 주어진 버스 안에서의 여유를 즐겼다. 버스 안에는 승객이 그다지 많지 않았다. 나와 같은 버스에 올랐던 남학생은 내 대각선 편에 앉아 있었다. 그때 남성 한 명이 서류철과 볼펜을 들고 버스 안을 돌아다니고 있는 모습이 보였다. 버스 차장쯤으로 보였다. 뒷좌석에 앉아 있던 나 역시 버스비가 될 만한 금액을 들고서 차례를 기다렸다. 그런데 차장은 나와 함께 버스에 올랐던 남학생과 한참 이야기를 두런두런 나누더니 벌떡 일어나 곧장 버스 앞자리로 돌아가 버렸다. 버스 뒤편에 있던 나는 안중에도 없는 듯했다. 버스비를 낼 타이밍이 아니었나 생각하고는 나는 다시 하품을 해대며 꾸벅꾸벅 졸기 시작했다.

얼마나 지났을까? 나는 다시 잠에서 깨어 멍하니 앉아 있었다. 아까까지만 해도 전화통화 중이던 남학생이 마침 한가해 보였다. "저기 저기요" 나는 남학생에게 어색하게 말을 붙였다. 그리고선 "여기 버스비 언제 내야 하나요?" 하고 물어보았다. 그러자 남학생이 쑥스러운 얼굴을 하더니 버스비를 내지 않아도 된다고 말하는 게 아닌가? 여기는 뭐 외국인 무료 탑승이라도 있나, 나는 선뜻 이해가 되지 않아 어리숙한 얼굴을 했다. 그러다 문득 짐작되는 바가 있었다. '이 청년이 내 차비를 대신 내줬구나!' 나는 말문이 턱 하고 막혔다. '이건 뭐지? 대체 왜?' 남학생은 아무리 봐도 대학생쯤으로 보이는데 내가 이 친구에게 민폐를 끼쳐도 단단히 끼쳤구나 싶은 생각이 들었다. 이러자고 히치하이킹을 하려던 건 아니었는데, 고마운 마음보다 미안한 마음이 먼저 들었다. 생각할수록 미안한 마음이 너무 커서 감사의 인사도 제대로 건넬 수가 없었다. 청년에게 돈을 건네자니 호의를 무시하는 것 같았고, 그렇다고 내 수중에 선물이 될 만한 건 아무것도 없었다. 그저 기어들어가듯 작은 목소리로 감사의 말을 겨우 전했을 뿐이었다.

청년은 얼마 지나지 않아 곧 버스에서 내렸다. 수줍은 청년과 미안한 히치하이커의 데면데면한 작별이었다. 낯 모르는 이들에게 신세만 잔뜩 지고서 히치하이커는 천국 같은 버스에 앉아 또다시 꾸벅꾸벅 졸기 시작했다. 비록 시행착오로 점철된 뜻대로 되지 않은 히치하이킹 여정이었지만 여행자를 도우려는 이토록 친절한 사람들을 만난 하루였다. 그리고 무엇보다 에어컨이 나오는 버스에 앉아 있으니 좋기는 좋았다. 낮잠은 그 어느 때보다 달콤하게 이어지고 있었다.

앞에 앉아 서류철을 들고 뭔가를 열심히 적고 있던 버스 차장과 생전 처음 보는 낯선이를 위해 차비를 대신 내 준 남학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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