카라밧지오: 사필귀정
몇 해 동안 카라밧지오를 향한 애정을 격하게 침해 해오는 역사의 한 조각은 단연코 그가 ‘범죄자’였다는 기록이며 또한 그에 대한 호사가들의 말이다. 그간 예술가의 사생활과 그의 작품들을 구분하여 각각의 것으로 바라보는데에 나의 도덕적 잣대는 상당히 후하다고 생각해 왔었고, 그림에 대해선 지극히 주관적인 사람이라 ‘그럴수있지’가 팽배한 나의 안목에 대해선 변명의 여지가 없다. 그림 밖의 세계에선 절대 용납할 수 없는 부도덕한 인간들, 예를 들어 수많은 여자들을 거느렸던 파렴치한, 죄책감 없이 제자의 작품을 복제한 뻔뻔한 인간, 이기적인 안하무인들이 속속들이 떠오르지만 이들의 작품은 분명 별개로 다가왔었다. 하지만, 살인은 선을 완전히 넘어섰다.
한동일 님의 ‘로마법 수업’이라는 책을 보니, 아주 오래된 법에서도 인간사회 안에서 허용되지 않거나 허용되지 말아야 하는 것들을 규율로 정해두었고, 그것이 지금의 것과 크게 다르지 않다는 사실은 문명이 발전하더라도 사람과 사람 사이에 지켜야할 것이 크게 달라지지 않음을 시사한다고 생각했다. 사회 통념 상, 조금씩 이해되어지는 부분들도 있어왔지만 인간의 목숨을 빼앗는 행위는 그때도 지금도 확실히 부당한 일이다.
아마도 이 혼란스러움이 한달여 전, 이 강의를 신청했던 배경이었을 것이다. 기록상 홧김에 살인을 저지르고 몰타로 도망가서 그린 그림. 아이러니하게도 누군가 죽임을 당하는 순간을 그린 그림. 피가 낭자한 자리에 유일하게 자신의 본명 ‘미켈란젤로’를 적어넣은 그림. 이 한 작품을 한 시간동안 이야기하는 자리에서 그가 살인을 저질렀고, 몇 차례의 폭행시비에 휘말린 전적이 있었던 곱지 못했던 그의 성격에 대한 이야기는 단 한마디도 없었다. 30여년간 카라바지오를 연구한 자에게 카라바지오는 천재 화가 그 자체일 뿐이었다.
처음 카라바지오의 그림을 보았을때의 순간을 곱씹어 봤다. 정확히 어떤 그림이었는지는 기억나지 않지만 아마 ‘의심하는 도마’ 였거나 ‘병든 바쿠스’였을것이고, ‘군계일학’이라는 말이 아주 적절할 것이다. 어느 전시실에서도 그의 그림은 시선을 사로잡았고, 동시대 다른 작품들과 비교해 보아도, 미술사 전체를 놓고 보아도, 카라밧지오는 카라밧지오만의 것이 그림에 녹아있었다. 드라마틱한 구성과 인물묘사, 매끄러운 붓질, 바로크 특유의 제한된 컬러 안에서도 빛의 미묘한 차이들을 구현해낸 신들린 그만의 기술들. 램브란트가 그의 빛을 쫓았고, 루벤스도 카라밧지오의 드라마틱한 구성을 눈에 마음에 그리고 붓을 든 손에 담지 않았을까. 인상파 화가들은 정형화된 미와 뻔한 주제, 전통에의 거부를 통해 수세기 후 카라밧지오를 소환했다. 그런데 나는 왜 자꾸 그가 ‘범죄자’였다는 사실을 이제서야 끌어내고 있었던 것일까.
최근 지인의 포스트에서 ‘불친절하고 다정하지 않은 건 무능력과 낮은 지능을 드러내는 거라 생각한다’며 ‘다정함은 진화의 필수요건’이라고 말도장을 찍었다.
마침, 직장내 도를 넘어선 불친절과 비매너에 속을 앓는 친구들의 이야기를 들은 참이라 더욱 마음에 들어온 지인의 생각이었다. 그러고보니 ‘다정한 것이 살아남는다.’는 책을 통해 이미 명제가 된 사실아닌가.
몰타에서 도망자 신세로 ‘성 요한의 참수’를 그린 카라바지오는 그림 덕에 몰타 기사단에까지 이름을 올렸다고 하지만, 이내 또 다른 시비가 붙어 다시 도망을 다니는 신세가 되었다가 결국 마흔도 되지 않아 생을 마감했다. 뒤를 봐주는 사람들에게도 한계라는 것이 있었을 것이다. 천재적인 재능도 더이상 빛을 발할 수 없었을 것이다. 주변의 사람들에게 다정하지 못한 사람은 스스로에게도 다정하기 힘들었을 것이다.
그래서 나는 카라밧지오를 더욱 가깝게 보게 되었다. 앞으로 더욱 애정하게 될 것이다. 나는 ‘사필귀정’을 믿는다.
[사진] Blood Joining Blood: The Immersive in Caravaggio’s Malta, Keith Sciberra, University of Malta - The 28th annual Sydney J. Freeberg Lecture on Italian Art, November 17, 2024 at National Gallery of Art, Washington DC.