프롤로그

by 복또비

비는 오래전부터 울고 있던 사람처럼

끊어지지 않는 소리를 내며 떨어졌다.


김하린은 우산을 들고 서 있었다.

이미지는 선명한데, 마음은 아무것도 느끼지 못한 채.

비가 차갑다거나, 습기가 싫다거나,

이 비가 길어질지 말지

그 어떤 감정도 떠오르지 않았다.


언제부턴가 그녀의 마음은

늘 무해했고, 늘 평평했고, 늘 무뎠다.

누군가 말하길,

“하린아, 너는 참 조용하다”라고.

하지만 하린은 알았다.

그건 조용함이 아니라 비어 있음이라는 걸.


그런 그녀의 앞에,

낯선 남자가 섰다.


아무 말도 하지 않았지만,

그의 존재는 설명할 수 없는 균열처럼

공기 속에 은근한 진동을 남겼다.


그가 먼저 우산을 기울였다.

비가 그녀의 어깨에서 사라졌다.

아무도 모르게 따뜻해지는 순간.


하린은 이해할 수 없었다.

왜 이 남자는,

아무런 이유도 없이

자신의 공간 안으로 한 걸음 들어오는 걸까.


그 순간만은

감정이 없던 그녀의 마음에도

아주 작고 미세한 떨림이

조용히 스며들었다.


그 떨림이 온기인지, 불편함인지,

또는 시작인지도 모르면서

그녀는 그를

‘낯선 그 남자’라고 기억하게 되었다.


그리고 그때는 알지 못했다.

그와의 만남이

자신의 무딘 세계를

서서히 깨울 거라는 사실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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