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요한 산사에서의 하룻밤, 북한산 금선사 템플스테이
한 번쯤, 아무 생각도 없이 며칠을 쉬고 싶다. 일상은 언제나 소란스럽고, 머리는 자주 복잡하다. 그럴 때 나는 산사를 떠올린다.
원래는 해인사에 가고 싶었다. 팔만대장경을 직접 보고 싶었고, 경남의 깊은 산까지 내려가고 싶었다. 하지만 유명한 그곳은 표를 구하는 일부터가 쉽지 않았고, 결국 나는 서울 안에서 조용히 쉬어갈 자리를 찾기 시작했다.
그렇게 만난 곳이 금선사였다. 태조 이성계를 도와 조선을 세웠다는 무학대사가 창건한 600년 고찰. 북한산 자락 구기동에 자리한, 도심에서 그리 멀지 않은 사찰이었다.
이북오도청 정류장에 내려 보라색 표지판을 따라 오르막을 걷기 시작했다. 가방은 무거웠고 길은 생각보다 가팔랐다. 그러나 한 걸음 한 걸음 올라갈수록 발아래의 도시는 조용히 멀어졌다. 일주문에 닿는 순간, 나는 조금 다른 공기 속에 서 있었다.
방은 넓고 깨끗했다. 창밖으로 초록이 출렁였고, 에어컨은 내가 도착하기도 전부터 방을 식혀 두고 있었다. 누군가가 나를 기다려 준 것 같은 느낌. 아주 오랜만에 받아 보는 대접이었다.
오후에는 스님의 안내를 따라 사찰을 돌았다. 대적광전의 세 부처와, 해탈문과, 네 가지 법의 소리를 내는 법고와 목어와 운판과 종. 그리고 밤이 가까워질 무렵, 스님은 법고를 치기 시작했다. 그 소리는 생각보다 깊었고, 생각보다 오래 내 안에 머물렀다.
공양은 정갈했다. 시래기 된장국과 카레, 제철 나물 몇 가지. 평범한 재료들이었지만 한 입 한 입이 따뜻했다. 이렇게 차분히 먹는 식사가 얼마 만이었을까.
그날 밤, 나는 오래도록 잠들지 못했다. 풀벌레 소리와 옅은 바람 소리만이 방 안을 채웠다. 아무것도 하지 않아도 괜찮은 시간이란 이런 것이구나, 하고 생각했다.
새벽에는 목탁 소리에 자연스럽게 눈이 떠졌다. 법전에 올라가 혼자 108배를 올렸고, 아침 공양을 마친 뒤 개운한 마음으로 산을 내려왔다. 하산길의 공기는 도착할 때보다 한결 가벼웠다.
금선사에서의 하룻밤이 내게 남긴 건 크지 않았다. 그저, 마음속 소란을 잠시 내려놓을 수 있는 자리가 서울 어딘가에 있다는 사실 하나. 하지만 그 사실만으로도, 나는 다시 일상으로 돌아올 힘을 얻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