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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깅이 Nov 24. 2016

어플을 출시하다.

Thanks to

2015년 12월 15일. 새벽 4시 30분쯤 됐을까... 회사 주소록을 펼쳐두고 작별 메일도 보내고 여행 가방에 받은 선물들도 넣고 짐들도 넣고... 그러다 보니 시간이 훌쩍 가버렸다. 회사가 골목길이라 택시를 잡으려면 큰 길까지 나가야 하는데 그 날은 회사 밖으로 나오자 마자 마침 택시 한대가 내 쪽으로 다가왔다.


"아가씨 짐이 많네요"

"저 오늘 회사 그만 뒀어요"

"아유 그래요? 회사 얼마나 다니셨어요?"

"15년이요"

"이야... 오래 다니셨네. 고생하셨어요"


고생하셨어요. 라는 말 한마디에 눈물이 왈칵 날 것 같았다. "고생하셨어요" 라는 말은 어쩌면 세상에서 가장 따뜻한 말일지도 모른다는 생각을 하며... 나의 15년 직장 생활이 그렇게 끝이 났다.


딱히 계획은 없었다. 회사를 나온 이유가 어딘가 갈 곳이 있다거나, 하고 싶은 일이 있어서가 전혀 아니었으므로. 한 동안 미친 듯이 집안 청소를 하다가, 구직 사이트에 들어가 보기 시작했다. 나의 Career 는 Embedded system 개발. 사실 "개발" 로 끝나면 그나마 괜찮은데, 오랜 시간 "관리" 를 했다. (코드는 전혀 안 보고 일정만 챙기는 그런 관리자는 아니었긴 하지만) 가지고 있는 재주가 문제 해결이라는 걸 너무 어릴 때 알게 돼서, 늘 개발을 하기 보다는 디버깅을 담당 했었다. 난 그 일을 좋아했다. (마치 CSI 의 그리섬 반장 같은 느낌?) 회사 동료들에게 "문제를 재현하고 가설을 세우고 해결하는 일의 가장 큰 매력은... 어쨌건 범인이 나는 아니라는 거야. 남이 짠 코드를 디버깅하는 거잖아?" 라며 반농담으로 얘기하곤 했지만, 이 Career 로 구직 활동을 한다는 건 뭔가 애매했다. 나에게는 일반적으로 한국 회사들이 요구 하는 "안드로이드 개발 3년 이상" 이라거나 "Spring 개발 3년 이상" 같은 Specific 한 기술이 없었고, 그나마 포괄적인 요구라서 "이건 되나?" 싶었던 Java 개발은 "3년 이상 15년 미만" 이었는데 대학교 때부터 Java 를 했으니 한참 오버해 버리더구만. 문제 해결을 포함한 소프트웨어 개발자로서의 기본 소양을 요구 하는 곳은 외국계 회사들 밖에 없었다. 근데 왠지 외국계 회사는 가고 싶지 않았다... 왜...냐고 묻는다면... 뭔가 문장으로 표현하기는 어려운데, 내가 너무나 올드한 사람이라 땡기지 않았다... 라고 하는 게 젤 가까울 것 같다.


여름이 될 때까지 아르바이트도 잠깐 하고 아는 사람 회사에 CTO (였는지 몰랐는데 나중에 명함보니 CTO 라고 되어 있었다. 하하) 로도 잠깐 가 보고 했는데 둘 다 잘 안 풀렸다. 슬슬 "그냥 참고 다니던 곳 다닐 걸 그랬나?" 라는 생각마저 들었고, 날씨도 점점 더워지기 시작했다.


"어떡하지? 망했나?"


라는 생각이 머리 속을 복잡하게 뒤엉키게 할 즈음... 나는 드디어... 매우 근본적인 질문을 스스로에게 던졌다.


"뭘 하고 싶은 거야?"


난 나의 장점이 "왠만하면 좋아하는 것" 이라고 생각했었다. 난 "일이 되는 것" 을 좋아한다. 다른 잘 나가는 프로그래머들 처럼 일요일 아침 새벽 공기를 마시며 노트북을 열어 이런저런 코딩을 할 때 기분이 편안해 지는 그런 스타일은 절대 아니다. 난 그냥 나에게 주어진 일에 의미를 부여하고, 그 의미를 동료들과 나누고, 계획을 세워서 그 일을 해 내는 것. 그런 걸 좋아하는 사람이기 때문에, "재미 없는 일" 이라도 그게 "일" 이니까 나름대로 좋아하는 게 나의 장점이라고 생각했었다. 그런데 그렇지 않았던 모양이다. 회사를 그만둔 이후, 정말 행복했던 순간은 없었고, "일이란 게 원래 그렇게 재밌는 건 아냐" 라고 스스로를 애써 위로 하며 버텨왔을 뿐이었다. 인정하자. 이건 아니다... 그럼 난 도대체 뭘 하고 싶은 거야...


설레이는 일


어느 날 문득 그 단어가 떠올랐다. 돈 버는 것. 인정 받고 그럴싸하게 자리 잡는 것. 안정적인 것. 등등... 그런 건 다 필요 없었다. 그냥 설레이는 일을 하고 싶었다. 어떡하면 설레이는 일을 할 수 있을지 찾던 와중에 아는 지인들이 둘이서 모바일 어플을 개발하기 시작했다는 소식을 듣게 되었다. 아마 내 인생에서 가장 큰 용기를 낸 순간일지도 모르겠는데...


"월급 안 줘도 돼. 지분 같은 건 깜짝 놀랄만큼 적게 줘도 실망하지 않을게. 구직활동 하기엔 지금 날씨가 너무 더워. 날씨 시원해질 때까지만 걍 나 좀 끼워줘"


이렇게 해서 나는 모바일 어플을 개발하는 스타트업의 일원으로 합류를 하게 되었다.


개발자로서의 자신감은 이미 바닥을 치고 있었다. 합류할 때도 "나 개발 진짜 못할 거야. 제대로 개.발. 이란 걸 해 본지 너무 오래 됐어" 라고 말했었고, 합류하고 나서도 처음 2-3주 간은 개발은 엄두도 못 내고, 이 팀에서 필요로 하는 다른 일들을 열심히 했다. Jira 를 Open 해서 테스트를 하고 이슈를 올리다 보니, 요구 사항 명세가 있어야 할 것 같아서, 전문 UX 팀이 만드는 아름다운 퀄리티는 아니지만, 개발자로서의 Detail 이 넘치는 UI Flipbook 도 만들고 그 과정에서 "무엇을 만들 것인가?" 에 대한 아이디어도 정리하고... 뭔가 내가 이 팀에 도움이 되고 있다는 기분이 쏠쏠하니 괜찮았다.


기획과 요구 사항이 정리되는 과정에서, 어플리케이션의 방향성이 동네 앞산에서 지리산으로 바뀌었다. (이후에 한라산으로 다시 옮겨 탔지만...) 내가 이제 이 팀에 도움이 되려면 개발을 해야 하는 상황이 되었고... 드디어, 코딩을 시작하게 되었다.


얼마지나지 않아, 프로그래밍을 한다는 게 참 신나는 일이라는, 잊어버린 기억이 되살아 났다. 나이가 먹은 탓에, 어제 내가 설계하고 구현한 코드를, 오늘 다시 설계하다가 "어? 이 코드가 벌써 구현되어 있네? 어? 이거 내가 어제 짰네?" 라는 일이 몇 번 반복되면서 좌절을 경험하기도 했지만, 어쨌거나 어제의 나도 오늘의 나도 나름대로 괜찮은 품질의 코드를 만들어 냈다. 주말에는 절대 일할 수 없다는 신조를 10년 동안 지키고 살았는데, 어느 순간부터 주말이 되어도 마치 좀비처럼... 눈뜨면 노트북을 열고 코딩을 하기 시작했다.


지난 네 달은, 나에게는 잊을 수 없는 소중한 시간이었다. 15년 동안 일했던 전직장에서의 여러 경험과, 독특하기 짝이 없는 나의 성격이, 쓸모가 있다는 것을 깨달은 것도 너무 좋았고, 개발도 재밌었고, 무엇보다 정말 설레였다. 생각해 보면, 난 내가 원래 잘 하던 걸 지금도 잘 하고, 내가 원래 잘 못 하던 건 지금도 못 한다. 다만, 난 "내가 원래 잘 하는 것" 들이 참 보잘 것 없는 것이라고 생각했었는데, 그렇지 않다는 걸 깨닫게 됐다.


그 동안 나는 자주 주문을 외웠다...


지치지 말기
실망하지 않기
포기하지 않기
겸손하기
마음껏 자랑하고 잊지 말고 칭찬하기
뜻대로 이루지 못해도 후회하지 않을 수 있도록 오늘 하루 행복하기
오늘 하루 행복했다는 사실을 잊지 말기


모바일 어플리케이션이란 게 성공하는 게 쉬운 일이 아니기 때문에, 하다가 안 되더라도, 설레였던 그 시간만큼은 소중하게 간직하고 싶어서 계속 이렇게 주문을 외웠다.


하여간 어플을 출시했다. 막상 출시했더니 이런저런 문제들이 있어서 새로운 사이클과 새로운 업무 방식을 정리해 나가야 하는 순간이 곧바로 와 버렸지만, 하여간 출시했다. 이야! 이 여정의 끝이 무엇일지는 모르겠다. 정말 막 대박이 나서 월세 받을 아파트를 복부인처럼 알아보고 다니게 될지, 아니면 나의 자산을 관리해 주고 있는 서모 부장님한테 계좌에서 생활비를 이체해야 겠다고 하게 될지... 아직 알 수는 없다.  다만, 꿈이 있다면... 나처럼 Specific 한 기술을 가지고 있지 않아서, 심지어 일 잘 한다고 팀장이 되는 바람에, 오히려 개발자로서의 자존감이 바닥에 떨어진... 하지만 원래는 프로그램을 좋아하고 일을 하는 걸 즐기는... 중년의 개발자들을 채용할 수 있고 월급을 줄 수 있는 회사가 되면 좋겠다. 머... 아직 먼 미래의 얘기다...


원래는 그냥 어플 출시라는 벅찬 이벤트를 맞이 하여 가수들이 앨범에 쓰듯이 Thanks to 를 적어두고 싶었는데, 글이 장황해져 버렸다... 하여간 이제사(?) 본론으로 들어가서...  


Thanks to


stackoverflow

프로그램 세계의 네이버 지식인 같은 곳이다. 검색어만 잘 입력하면 Solution 이 막 튀어 나온다. 이 녀석 없었으면, 아마 진도를 나가는 것 자체가 불가능했을 거다.


1500원짜리 아이스커피

사무실 옆 미용실에 딸린 좌판 커피 가게. 아이스커피가 1500원. 심지어 잘 생긴 청년이 "맛있게 드시구요~" 라며 상냥하게 인사까지 해 준다. 매일 하루의 시작을 함께 해준 커피와 잘생기고 상냥한 청년에게 감사를...


LG 그램 노트북

양재에서 사무실이 있는 합정까지는 오가는 길이 늘 너무 길다. 앞선 회사를 퇴사할 때 노트북을 하나 사야지.. 하고 고르다가, 옆에 옆에 앉은 아이가 추천해 준 LG 그램 노트북을 샀는데, 이 노트북 아니었으면 큰 일 날뻔 했다. 이것보다 500g 만 더 무거웠어도 오가는 길이 훨씬 더 지쳤을 거다. 옆에 옆에 앉았던 아이와 노트북에게 감사를...


Cygwin, 그리고 VI

요즘 시대에는 다들 당연히 Eclipse 같은 통합 프로그래밍 환경을 써야 한다는데, Javascript 를 주로 사용하다 보니 Cygwin + vi 조합을 계속 사용할 수 있었다. "새로운 환경" 에 대한 적응력이 너무나 떨어지는 나로서는, cygwin 과 vi 를 계속 쓴 것이 뇌세포를 활성화하는데 큰 도움이 되었다.


박상영

코딩을 하는 것이 아직 자신감이 붙기 전, "엎을까 말까... 엎는 게 좋을 것 같은데... 내가 그럴 능력이 되나..." 라고 고민하고 있을 때, 박상영이 펜싱에서 금메달 따면서 "할 수 있다" 를 외치는 걸 보고... 엎었다. 그 날 코드를 엎기로 결정하고 3-4일의 재공사 끝에 엎는데 성공한 게 나에게는 소중한 터닝 포인트가 되었다. "할 수 있다~~"


탄탄면. 옛시골집.

사무실 앞 탄탄면. 너무 맛있었다. 고명까지 추가로 올리면 완전히 생일상이었다. 늦게까지 문을 열어서 자주 저녁을 먹은 옛 시골집. 야들야들한 낙지가 올라간 해물파전은 "아 이런거 먹으려고 일하는 거지" 라는 생각이 절로 들만큼 맛있었다.


준오헤어 강남 4호점 진주 점장님.

10년 넘게 내 머리를 잘라주고 있는 분이시다. 준오헤어 양재점에서 처음 보고, 나중에 우성아파트 사거리 부점장으로 가서 거기 따라가고, 이번에 강남 4호점 점장이 되었다. 뭔가 어떤 사람이 쑥쑥 성장해 나가는 모습을 지켜보는 건 참 기운 나는 일이다. 하여간 내가 이팀에 합류하고 얼마되지 않아 머리를 자르러 갔는데, 나를 보고 "표정이 정말 좋아지셨어요" 라고 말해 줘서 너무 좋았다. 그 말을 듣고 "아 내가 정말 지금 좋구나..." 라는 확신이 생겨서 더 신나게 일할 수 있었다.



그래서 무슨 어플을 출시했는지는 다음 기회에. 멋있게 포장하려면야 얼마든지 할 수 있지만, 실상은, 세상에 없던 그런 서비스는 아니고, 잘 나가는 서비스 3개를 섞어서, 돈 벌어 보겠다고 만든 어플... 이라고 하는 게 정확한 표현일 듯.


자. 이제 다시 시작. 즐겁게 일하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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