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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봄밤별 Oct 25. 2019

엄마 이제 다른 얘기 하자

우리 가족이 모이는 자리에서 엄마가 항상 이야기하는 추억이 있다.

내가 어릴 적 엄마 아빠가 낚시가방, 텐트, 기저귀 가방 등 양 손 가득 짐을 들고 아장아장 걷는 나를 데리고 차도 없이 여행을 많이도 다녔다는 것. 내가 기억할리 없는 아주 어린 시절이지만 꽤나 여러번 들은 덕에 이제는 나도 꼭 내 눈으로 본 것처럼 이야기 할 수 있다.

듣다 듣다 가끔은 엄마 이제 다른 얘기하자. 라고 이야기를 해도 엄마는 또 그 이야기, 또 그 이야기를 하곤 했다. 그 시절 기억을 여전히 곱씹는 건 그 일들이 엄마에게 특별해서 이기도 하지만, 그 때 이 후로는 우리 가족이 거의 여행을 못 갔기 때문이기도 하다.

세 살 터울의 동생이 태어나면서 부터 아빠가 사업을 시작하셨고 생각처럼 잘 풀리지 않았던 탓에 동생은 당시 흔한 편이었던 돌잔치도 하지 못해 돌반지 끼고 있는 사진 한 장이 없는데, 동생은 개의치 않음에도 엄마와 아빠는 여전히 그 일을 미안하게 생각하신다.

모든 사업이 그렇듯 아빠의 그것도 부침이 있었지만 바쁠 땐 바빠서 안 바쁠땐 마음이 안 편해서 이런저런 이유로 우리 가족은 동생이 대학을 졸업할 때까지 가족 여행을 가지 못했기에, 오랜시간 엄마는 나의 어린 시절 여행 기억을 우리고 또 우려냈다.


이러한 분위기 덕에 나는 꼭 가족과의 여행이 아니더라도 대학교 때까지 거의 여행을 다니지 않았다. 

그러다 내가 취업을 하고 여름 휴가라는 것이 생겼다. 친구, 연인과 들로 산으로 여행을 갔고 때로는 바다를 건너 먼 곳으로 비행기를 타고 날아가기도 하며 말 그대로 여행에 눈을 떴다.

그리고 엄마 아빠, 동생에게도 이렇게나 좋은 세계가 있다고 알려주고 싶었다.


우리 가족의 첫 여행은 추석, 평창으로 정했다. 당시 아빠차는 트럭이어서 성인 4인 가족이 탈 수 없었다.

동이 트기 전 캐리어와 폴더백, 백 팩 등 집에 있는 가방이란 가방은 모두 챙겨서 우리는 휘닉스 평창 셔틀버스를 타기 위해 잠실로 갔다. 집에서 잠실까지만 2시간이 걸렸다.

마음은 가벼웠지만 몸은 무거웠던건 우리가 여행 짐싸기에 서툴렀기 때문이다. 쌀, 김치, 반찬, 고기 등 동네 마트에서 구입할 수 있는 것들은 모두 미리 샀고(평창에는 마트 없는 줄) 옷도 하루에 두 세번은 갈아입을 수 있을 만큼 차고 넘치게 챙겼다.


고속버스 멀미에 울렁거리는 속을 부여잡고 휘닉스 평창에 내렸을 때 주차장에 가득찬 차를 보며 엄마가 말했다.

"엄마는 너무 놀랐다. 추석에는 항상 집에만 있었는데, 다른 사람들은 이렇게 많이 놀러다니고 있었구나"

그 한마디에 엄마, 아빠의 지난 시간이 담겨있었다.

여행지에서도 우리는 서툴렀다. 그 서툶은 우리에게 설렘이었다.

낯선 공간에서 느끼는 아침 공기가 좋아 동이 트기 전부터 나갔고, 정해진 일거리가 없는 곳에서 흘러넘치는 시간을 어찌해야할 지 몰랐지만 그 자체로 좋았다. 택시를 타고 하루에도 몇 번씩 언덕을 오르내리며 실컷 여행을 했다.


여행을 다녀와서 엄마는 병이 났다. 입 안이 다 트고 근육통에도 시달리셨다.

그런데 하나도 힘들지 않다고 했다. 여행지에서 찍은 사진을 보고 또 보며 웃고 또 웃으셨다.

과묵한 아빠도 몇 번이나 평창 이야기를 하셨다. 막국수가 참 맛있었다고 양떼목장이 참 예뻤다고.


그 뒤로 우리는 매년 한 두번의 여행을 간다. 

이제는 여행이라는 행사에서 가족 구성원 저마다의 역할이 자연스럽다. 나는 여행지 선정과 준비를 담당한다. 여행지에서 먹거리와 즐길거리를 찾는 것까지 몫. 아! 무엇보다 중요한 역할은 차 뒷자리에서 아빠의 네비를 봐주는 것이다. 이번 블록이 아니라 다음에 좌회전을 해야 하고, 800m 앞에서 오른 차선으로 이동해야 한다고 이야기 하는 일을 맡는다. 동생은 여행지에서 엄마, 아빠의 떨어진 체력을 끌어올려줄 영양제를 준비하고 전반적인 짐을 싸며 여행지에서 궁극의 리액션으로 분위기 메이커 역할을 담당한다. 엄마는 여행 일주일 전부터 미리 장을 보고 가서 이동 시 먹을 간식거리와 여행지에서 요리하기 위한 조미료, 조리도구들을 챙긴다. 아빠는 미리 차량을 점검(..하면 좋겠지만 우리 아빠는 절대 미리 하지 않지)해야겠다고 생각을 하고, 무거운 짐을 옮기고 우리 가족 유일의 드라이버로서 운전을 담당한다. 


얼마전 제주에 다녀왔다.

일주일 내내 날이 너무 좋았고 빈틈없이 행복했다. 

우린 더 이상 내가 어릴 적 다녀왔던 여행에 대해서만 이야기하지 않는다. 

지난 여행들은 우리 가족 각자에게 각자의 모습으로 쌓였고, 그 이야기들은 나눌 수록 더 선명하게 빛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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