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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봄밤 Feb 28. 2018

FTM 산호 구술생애사 [5]

성전환 수술 이후 "네가 왜 그랬는지 알겠다"


가슴, 자궁 절제 수술

 

수술할 때 친구들한테만 말하고, 엄마한테는 말 안 했어요. 그냥 뭐... 알아줄 거 같지도 않고, 어차피 혼자 하는 거라고 생각해서 굳이 말할 필요가 없었어요. 보호자 동의 안 받던데요? 성인이니까 그런 거 아닐까요?* 일할 때니까 회사에 말하고 동의를 받긴 했죠. 수술할 거다, 핏통 차고 일할 거 같다. 그랬더니 “힘들지 않겠냐”라고 물어봐 주시고 다 허락해주셨어요. 난자 보관이요? 그런 고민 안 했어요. 전혀. 별로. 전 애도 좋아하지 않고, 어차피 남자로서 살 텐데요. 보관하려면 돈도 엄청 많이 들 걸요. 또 애를 키우려면 경제력이 뒷받침돼야 하잖아요. 일하기 싫어도 억지로 일해야 되고.


2013년에 가슴 수술하고 그다음 해에 자궁 수술했어요. 자궁 수술 당일에는 외부인은 못 들어오니까 간호사 한 명이 상주하면서 밤에 오줌 빼줬어요. 다음날 낮에 여자 친구 오고. 저녁에는 못 들어오니까요. 퇴원할 때 친구랑 누나(여자 친구)랑 집을 가는데 택시를 탈 걸 돈 아낀다고 지하철 타서 사람도 많고 너무 아팠어요. 그게 2014년 여름일 거예요. 자궁 절제하고 유두 조그맣게 하는 수술까지 한 칠백만 원인가 들었어요. 성기 수술은 삼천만 원 정도 한다고 들었어요. 들어보니까 태국은 이천만 원 한다던데 모르겠어요. 수술하고 난 사람들 얘기를 들어봐야 하는데 나중에 기회가 있겠죠. 트랜스젠더 인권 센터에서 하든.



가슴 수술보다 자궁 수술이 너무 아팠어요. 한 3일 견디면 살만 한데 그 3일이 너무 힘든 거예요. 그래서 자궁 수술은 퇴사하고 나서 했어요. 가슴 수술하고는 일할 수 있었는데, 자궁 수술은 쉬어야 된다 그러더라고요. 자궁 수술이 제일 아팠어요. 가슴 할 때는 그래도 그렇게 많이 안 아팠거든요. 가슴은 화끈화끈하고 있다가 없어진 느낌 좀 들고 살이 뭉친 느낌이 있었는데 자궁은 없애니까 너무 아팠어요. 한 3일 지날 때까지 엄청 아팠어요. 진통제도 잘 안 들더라고요. 그때 수술 생각하면 생식기 수술 어떻게 하나 싶어요. 다리 쪽 살이나 허벅지살 떼 가지고 수술하는데 얼마나 아플까 걱정 되가지고. 돈이야 뭐 언젠가는 모으면 모으는데 그 뒤에 따라오는 부작용도 견뎌야 되고 잘못하면 오줌 줄 막히면 평생 고생할 수도 있잖아요.


자궁 수술하고 나서는 생리 안 하니까 좋죠. 그거 말고는 딱히 달라진 게 없어요. 겉모습은 호르몬 때문에 달라지는 거고, 자궁 없애서 달라진 거 같지 않아요. 자궁 절제는 생리랑 호적 정정 때문에 했어요.


수술 후 가족들 “그때 네가 왜 그랬는지 알겠다”


엄마한테는 자궁 수술까지 다 하고 얘기했어요. 전화로 말했어요. 일 그만두고 성전환 수술했다고. 뭐 좀 놀라고. 이제 집에 들어가야 된다고 하니까 엄마가 집에 오지 말라고 막 그랬죠. 집에 오지 말라 그러더라고요. 들어갈 방도 없고, 수술도 하고 약간 놀라서 그러셨던 거 같아요. 개도 데리고 온다니까 더 싫어했죠. 엄마가 개를 별로 안 좋아해요. 근데 어떡해요. 초반에 그러다 회사를 그만둬서 갈 데가 없다니까 들어오라고 했어요. 근데 누나가 아직 결혼 전이라 들어갈 공간이 없어서 엄마 집 근처 반지하 원룸 구해서 살았죠. 누나 결혼하고 3, 4개월 있다가 엄마 집에 들어갔어요.


딱 수술하고 나서는 일주일 동안 회사 기숙사에 있었어요. 혼자 있으니까 밥도 잘 못 챙겨 먹었죠. 대충 있는 거 때워 먹고, 하루 종일 누워 있었어요. 엄마 집 가고 나서는 엄마가 챙겨줬죠. 먹어야 빨리 나으니까요. 근데 엄마가 요리를 너무 못해요. 밥 먹는 게 너무 힘들어요. 제가 맨날 맛없다고 그래요. 그러면 엄마가 뭐가 맛이 없냐고 반찬이 이렇게 많은데 얼마나 맛있는지 먹어보라고 해요. 근데 반찬은 다 오이지랑 오이김치랑 오이무침. (웃음) 그냥 오이는 소금물에 담가놓으면 되니까. 엄마가 고기를 별로 안 좋아하거든요. 근데 나물도 맛깔나게 무치면 맛있잖아요. 근데 그게 아니고. (웃음) 그래서 보통 반찬은 다 사 와서 먹어요. 근데 사 오는 것도 맛이 없어요. 집에서 먹는 건 끼니 때우려고 먹는 거예요. 엄마가 가끔 감자랑 당근이랑 양파랑 볶아서 오므라이스 해주거든요. 그게 제일 맛있어요. 옛날에는 엄마도 음식을 잘했는데 잘 안 하다 보니까 다 까먹으신 거 같아요. 옛날에는 그래도 여러 가지 해주고 먹을 만했는데…. 집안일은 엄마가 다 하시죠. 저는 그냥 제 방만 치워요. 마당에 물 뿌려서 개들 오줌 싼 거 치우고 개 목욕 시키죠. (엄마가 시키진 않아?) 포기했을 거예요. (웃음) 가끔 보면 개털 너무 날리면 마루 청소기 한 번 쓱 돌리고. 엄마 나가 있으면 설거지하고.


전 어렸을 때부터 하두 남동생한테 고추 따서 달라고 그랬거든요. 그래서 엄마는 면역이 되긴 했나 봐요. 그리고 어차피 내가 수술하고 들어갔으니까 바꿀 수도 없잖아요. 엄마집에 들어가니까 엄마가 정신병원 알아보고 있었다고 하더라고요. 엄마도 생각은 하고 있었던 거 같아요. 근데 말을 해야 알죠. 말을 안 했는데 엄마가 그런 생각하는지 제가 어떻게 알았겠어요.


엄마랑은 옛날보다 좋아진 거 같아요. 옛날에는 엄마랑 거의 말 안 했거든요. 그때는 수술할 생각이 있는데, 말하면 반대할 거 같기도 하고. 엄마가 잘 알아주지도 않고 그래서 서먹했어요. 이십 대 이후에는 일 하니까 타지에 나가 있었고요. 거의 연락도 한 번 안 하고, 집에도 잘 안 갔어요. 요즘은 괜찮아요. 가끔 가다 본명이 튀어나올 때도 있긴 한데 그냥 똑같이 대해주니까. 이름만 바뀌었지. 완전히 남자라고 생각은 안 해도 그냥 그냥 엄마도 인정해주는 거 같아요. 호적 정정하려면 부모님 동의서랑 인감도장 있어야 되거든요. 수술하기 전에 얘기했으면 뭐하러 하냐고 그랬을 거예요. 돈만 많이 든다고. 찬성도 아니고 반대도 아니고. 그냥 위험한 거 뭐 하려 하냐고 그랬을 거 같아요. 내가 알아서 하는 건데 엄마가 뭐라 그럴 필요 있나. 엄마는 위험할까 봐 말하는 거니까 이해는 해요. 그래도 해야 할 건 해야죠. 요샌 “같이 가서 수술했으면 좋았을 텐데” 하세요. 정신과도 같이 가고, 수술도 좀 제대로 했으면. 산부인과 좋은 데 갔으면 하시죠. 그러다가도 “손발은 이렇게 작은데 어떡해, 천생 여자인데. 너 맨날 어릴 때 친할머니가 남자 되라고 그래서 남자 된 거 아니냐”라고 해요. 그런 얘기 들으면 좀 답답하죠. 그냥 빨리 나가서 살아야지. 아마 가을쯤엔 나가지 않을까. 엄마한테 전 별로 스트레스 안 받아요. 원래 스트레스 안 받는 성격이라서. 그런가보다 그러고. 가끔 엄마가 답답할 때는 있는데, 어떡해 그럼 내가 나가 살아야지. 엄마가 이해해주지 않았으면 엄마랑도 인연 끊고 살았을 거예요.


아버지가 만약 살아계셨으면 못했을 거예요. 되게 보수적인 경상도 분이었대요. 친가 쪽에서 뭐하러 했냐고 왜 했냐고 그러죠. 원래 제가 친가를 되게 싫어했어요. 말투가 되게 화내듯이 말하는 거 같아서 갈 때마다 위축되고 그랬거든요. 할머니가 맨날 남자로 태어났어야 했는데 맨날 이런 소리하니까 가기 싫었고요. 아버지도 돌아가시고 그랬으니까. 근데 수술하니까 왜 했냐고.(웃음) 뭐하러 했냐고, 그냥 사는 대로 살지, 왜 그랬냐고. 지금도 가끔 그냥 명절 때만 가요. 가끔 할머니한테 전화하고. 외가 쪽 친척들은 다 잘했다고 해줬어요. 하고 싶은 거 잘했다고. 많이 인정해주고. 외할머니는 오셔서 잘했다고 하고, 이모랑 다 인정해주셔서 친척은 크게 문제 될 건 없어요. “그때 네가 왜 그랬는지 알겠다” 얘기를 해주시더라고요. 장난감도 로봇만 같고 놀고, 머리도 짧고 옷 스타일도 성격도 여자애 같지 않았으니까. “어렸을 때부터 네가 그래서 그랬나 보다” 그러시더라고요. 엄마도 수술하고 나니까 “아, 네가 어렸을 때부터 남자애처럼 하고 사진 찍으려면 다리도 쫙 벌리고 남자애처럼 서있었다”라고. 내가 수술 안 했으면 그런 건 몰랐겠죠.


이유를 자꾸 찾는 거 같아요. 얘가 어릴 때 왜 이랬을까. 얘가 왜 이렇게 됐을까. 엄마 나름대로 합당한 이유를 자꾸 찾는 거 같아요. 그래, 어렸을 때부터 이랬어. 그래서 이렇게 됐지. 그래도 수술할 거라고 생각은 못했겠죠. 외가에서 잘 대해 주시니까 놀러 가죠. 안 그랬으면 안 갔을 텐데. 요즘에도 외갓집 가면 할머니가 나만 보면 신기하다 그래요. “너만 보면 신기햐, 아이고 신기하다. 잘했네, 잘했어.” 이러세요. 어떻게 수술은 그렇게 잘 했냐고. 외숙모는 실수로 옛날 이름 불러도 이해하라고 노력하겠다고 해주셨어요. 그분은 시부모 모시느라 고생을 하도 많이 해서 득도를 하셨어요. 마음이 넓어요. 근데 박근혜 지지자예요. 이번에도 자유 한국당 찍었어요. 외가 쪽 다. (웃음) 정치 성향은 또 다르죠.


수술하고 나서 엄마가 걱정했죠. 수술 제대로  거냐고.  번은 자궁수술하고 나서 피가 나와서 엄마가 산부인과 데리고 갔었어요. 가슴수술은 일주일 정도만 쉬면 활동할  있었거든요. 자궁수술은   정도 쉬고 다음 달에 약간 움직였는데 계속 피가 나오더라고요. 팬티에  묻어있어서 ‘ 이거 계속 일하면  되겠다그래서 집에 와서  쉬고 학원 다니고 큰일은  했어요. 회복하는  적어도  개월은    쓰고 있어야 하지 않을까. 무거운  들면 바로  나오고 그러더라고요. 그것 때문에 엄마가 산부인과 데리고 가서 다리 벌리고 초음파 검사를 했어요. 혹시 이상 있나. 정말 하기 싫었는데 혹시 나도 무슨 이상이 있으면  되니까. 그쪽에서 수술을 하긴 했지만 잘못했을 수도 있잖아요. 수술한 병원에 전화를 했었거든요.  나온다고. 그러니까 괜찮을 거라고 회복하는 중이라고 그러라고요. 근데 잘못돼도 그쪽에서는 말을  해줄  같아서 산부인과를 갔어요.  여자분인데 저만 혼자(웃음) 남자잖아요. 여자분들  쳐다보고. 그때는 개명 전이라서 원래 이름 부르더라고요. 의사 선생님한테 제가 호르몬 전환했다고 하니까 괜찮다고 그런  많으시다고 하더라고요.  미동 없이 얘기해서 편했어요. 그러고는  원피스   입고 앉아서 다리 벌리고 있었죠. 초음파 봤는데  이상은 없다고, 그냥 수술 봉합한 데가  삐져나와서    같다고 그랬오요 다른 FTM 같았으면  갔을 텐데 전 갔어요. 너무 굴욕적이기 때문에 안 갔을 텐데…. 근데 갔어요. 엄마가 데리고 가서  것도 있고. 걱정돼서  것도 있고. 에이,  번인데 어때. 근데 그러기에는 너무 치욕적이었어요. 다리 벌리고 나의 생식기에 초음파….


여자 의사였어요. 내심 모르게 남자보다는 여자 의사가 나았던 거 같아요. 생각에. 남자로 성전환했는데 남자한테 받으면서 내 생식기가 여자인 상태로 보여주는 것보다 차라리 여자인 게 더 편했던 거 같아요. 의사 분들은 하도 많이 봐서 그런가 별 상관없이 그냥 하더라고요. 그리고 얼만 전에 병원 갔을 때 자꾸 설사 난다고 대장암에 걸린 게 아닐까 물어봤더니. 의사 선생님이 대장내시경을 해보자고 해서, “혹시 제가 고추 수술을 안 해서 하다가 들키면 어떡하죠?”하니까 의사들은 그런 것 없이 구멍만 보이면 무조건 넣고 그냥 끝이라고. 자기도 수술할 때 얼굴 봐도 여자인지, 남자인지 기억을 못 한다고. 근데도 못하겠어요. 신경이 쓰여요. 고환이 없으니까. 고추도 없고. 수술하기 전이니까.




*수술동의서는 법적인 의무사항이 아니다. 병원의 관행일 뿐이다. 오히려 의사가 수술동의서를 제출하지 않았다는 이유로 수술을 지연하거나 거부하면 의료법 제15조 제1항의 진료거부행위에 따라 1년 이하의 징역 또는 300만 원 이하의 벌금과 면허자격정지 1개월의 행정처분을 받을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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