잡오퍼를 받은것도 아니고, 무직의 나를 한동안 품어줄 가족이나 친척이 있는것도 아닌 상태에서 무작정 싱가포르에 가기로 결정했을때, 가장 먼저 해결해야 할 문제는 숙박이었다.
삼십 중반이 되도록 한 번도 부모님집 밖에서 독립적인 생활을 해본 적이 없던 나로서는 싱가포르의 살떨리는 렌트비, 그리고 누군가와 주거공간을 공유해야 한다는 개념이 너무도 낯설었다. 생각해 보니 난 그 나이를 먹도록 대학교 기숙사나, 유학 중 플랫 룸메이트 경험하나 없었고, 그런 만큼 가족 외 누군가와 공유하는 주거공간이 너무도 부담스러웠다. 그러나 어쩌랴... 여행을 하러 가는 것이 아니므로 호텔은 옵션이 될 수 없었다.
새로운 잡을 찾을 때까지 얼마나 걸릴지 알 수 없기도 했지만, 어쨌든 회사 위치도 정해지지 않은 상황에서 무작정 장기간 머무를 곳을 정할 수도 없었다. 물론 장기 체류가 가능한 employment pass가 없는 상황에서 나에게 장기 렌트를 할 의향이 있는 집주인을 만날 가능성도 어차피 희박했다. 일단 한 두 달 정도 임시로 머물 수 있는 숙소를 찾아야 했다.
요즘이었다면 어쩌면 에어비앤비부터 서치했을 수도 있었을 테지만, 당시 내 상황에서는 한국인 임대인을 상대하는 것이 나라는 사람의 신분을 어필하는데 수월할 것 같았다. 싱가포르 거주 한인 커뮤니티 사이트를 뒤져, 방학을 맞아 한국으로 잠시 들어오려는 사람들이 올린 단기 렌트 광고를 위주로 마땅한 곳을 물색했다. 나의 니즈는 딱 2가지였다- 안전하고 깨끗할 것. 당장 출퇴근할 것이 아니었기 때문에 센트럴 지역인지, 동쪽인지 서쪽인지는 그다지 중요하지 않았다. 싱가포르의 특성상, 어차피 버스 정류장이든 지하철역이든 둘 중 하나는 집 근처에 있을 터였다.
다행히 이미 한국에 들어와 있으면서 본인의 싱가포르 숙소를 렌트하려는 유학생의 포스팅을 찾았고, 여러 차례 메일과 사진교환 끝에, 아주 소액(아마 3-5만원 정도였던 것으로 기억한다)의 디파짓을 일단 걸고, 직접 만나서 열쇠를 받기로했다. 렌트비는 입주하는날, 내가 콘도에 무사히 들어가면 즉시 입금하기로 했다.
결론적으로 콘도는 직접 보지 않고 정했던 것임에도, 정말 사진과 거의 동일한 상태로 깨끗했고, 또 다른 2개 방에 거주하는 룸메이트들도 모두 반듯하고 좋은 사람들이었다. 게다가 예상대로 콘도 정문 바로 앞에 버스 정류장이 있어서 땡볕에 정류장을 향해 걷지 않아도 되었다. 그렇게 이곳에서, 그렇게도 바라던 싱가포르 생활을 가장 원치않던 시나리오로 시작하게 되었고, 싱가포르의 잠 못 이루는 첫 2달을 눈물과 함께 보내게 되었다.
이 유학생과는 마지막에 나올때, 사소한 오해와 더불어 당시 나의 물심양면으로 궁핍했던 상황 탓에 그다지 훈훈한 마무리를 하고 나오지는 못했지만, 돌이켜보면 운 좋게 좋은 숙소를 찾은 것이었고, 또 비교적 좋은 임대인을 만났던 것 같다.
나중에 싱가포르에서 잡을 구하고 오차드에서 쇼핑하던 길에 그녀와 마주쳤지만 선뜻 인사를 건네진 못했다. 뜬금없이 10년 전의 그녀에게 고마움과 미안함을 전하고 싶어진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