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자유로운 책방지기
“내가 평생 꼭 해보고 싶은 게 있어.”
“뭔데?”
파란 하늘 몽실몽실 흰 구름 따라 고속도로에서 운전하던 남편이 말했다.
자신의 감정이나 의견을 잘 드러내지 않는 그가 평소와 다르게 진지하게 말하기 시작했다.
남편은 젊은 시절부터 오토바이에 대한 로망이 있었다고 한다. 꼭 한 번 자신의 오토바이를 갖고 싶었단다. 얼마 전 중고 사이트에 적당한 게 나왔길래 청주에 가서 사 왔다며 딱 2년만 타 보고 다시 중고로 팔겠다고 했다. 아뿔싸, 한 달 전 즈음 청주에 급하게 다녀올 일이 있다던 남편 전화가 기억났다. 이거였구나. 운전하는 그를 흘겨보았다. 그 오토바이는 어디에 두었냐고 묻자, 아파트 지하 주차장에 있다고 했다. ‘아. 지하 주차장에 서 있던 그 커다란 오토바이?’ 오늘도 지하 주차장에서 같이 보고도 모른 체하지 않았던가. 할 말을 찾지 못해 눈을 부릅뜨고 쳐다보기만 했다. 그는 처분만 바라는 얌전한 고양이가 되어 있었다. 남편이 구매한 오토바이는 야마하 드렉스타 1,100CC로 덩치만큼 소리도 웅장했다. 언제 어떻게 말해야 할지 망설이며 한 달 넘게 고민하다가 내가 웬만해서는 화내지 않는 일요일 아침, 교회로 향하는 시간을 틈타 커밍아웃을 한 것이다.
“너 태우고 강원도도 가고, 배에 싣고 제주도 가서 해안 일주도 다니고 싶었어.”
“쳇, 절대 오토바이 뒤에 타는 일은 없을 거야.”
콧방귀를 뀌며 남편의 말을 단번에 잘랐다. 그는 이것저것 취미를 바꿔가며 즐기는 사람이 아니었다. 취미를 위해 돈을 쓰는 사람도 아니었다. 새로운 것을 배우거나 취미로 무언가를 시작할 때 장비가 중요하다며 이것저것 설레발치며 사던 사람은 오히려 나였다. 남편은 오토바이의 배기음을 들으면 가슴이 뛴다고 했다. ‘이 사람은 간절히 원하는구나, 얼마나 갖고 싶었을까’라는 생각에 마음이 복잡해졌다. 2년만 타 보고 다시 팔겠다는 약속을 단단히 받은 후 나는 남편이 오토바이 타는 것을 묵인하기로 했다. 도둑고양이처럼 몰래 지하 주차장으로 향하던 그가, 다음날부터는 당당하게 장비를 챙겨 나갔다. 하루는 신호대기로 서 있는데 옆 차선의 버스 기사가 창문을 열고 엄지 척을 해주었다며 우쭐해하기도 했다. 동호회에 들어가 홍천이나 속초로 라이딩을 다녀오기도 했다. 그런 날이면 남편이 무사히 집에 돌아올 때까지 가슴을 졸여야 했다. 말릴걸 그랬나 후회가 되기도 했다.
내가 통근 버스를 타고 출퇴근하던 때였다. 집에서 버스 타는 곳까지 걸어서 20여 분 걸렸다. 아침 시간인지라 길게 느껴지는 시간이었다. 남편이 출근하는 길이니, 오토바이 뒤에 타라고 했다. 절대 안 타겠다던 마음이 조금 흔들렸다. ‘타 볼까? 아냐, 싫어.’ 무섭기도 했지만, 타인의 이목을 받는 것이 더 싫었다. 그러나 20분의 시간을 잠에게 양보하고 싶어 못 이기는 척 타 보겠다고 했다. 그는 미리 준비해 두었던 또 하나의 헬멧을 꺼내와 내게 씌워 주었다. 비로소 알았다. 헬멧은 안전뿐만 아니라 타인의 이목으로부터도 보호해 주는 장비라는 것을. 그 안전장치를 푹 눌러쓰고 오토바이 뒷자리에 올랐다. 다른 사람의 시선이 보이지 않았다. 처음에는 무서워 남편의 허리를 꽉 잡고 몸을 한껏 움츠렸으나, 한두 번 타게 되며 어느새 오토바이의 흐름에 나의 몸을 맡기고 있었다.
김포로 이사 오던 날, 커다란 오토바이는 이삿짐 차에 실리지 않았다. 이륜차 내비게이션을 켜고 이삿짐 차 뒤를 따라 마을로 들어왔다. 마을 사람들의 이목이 쏠렸다. 시골 마을에서 커다란 오토바이 엔진 소리와 함께 나타난 이방인에게 호기심과 관심이 집중되었다.
“뭐 이렇게 큰 오토바이를 타고 다녀요?”
“무슨 일을 하는 사람이에요?”
마을 입구에 느림보 공방이 있다. 서로 다른 직업을 가진 두 명이 취미 생활 장소로 꾸민 창고형 공방이다. 공방 사람들이 남편에게 별명을 지어주었다. ‘할리 한량’이다. 시골에 들어와 여유롭게 오토바이나 타고 돌아다닌다고 붙여준 별명이었다. 그들만의 생각은 아니었을 것이다. 이사 온 후 “이런 곳에서 책방을 한다고요?”라고 놀라거나 “마을 사람들이 책을 많이 읽을까요?” “이런 시골까지 찾아오는 사람이 있어요?”라고 걱정 어린 질문을 하는 사람도 많았다. 찾는 사람이 거의 없었던 첫 해, 특별히 하는 일도 없어 보이는 중년 남성이 오토바이 타고 다니는 모습에 한량이 따로 없다고 생각했을 것이다.
그러나 오토바이는 시골 마을에 들어와 더 쓸모가 있었다. 버스에서 내리는 아들을 픽업 가거나, 간단한 물건을 사러 갈 때, 병원을 가거나 면사무소에 볼일 있어 나갈 때도 오토바이를 이용했다. 우리는 염하강의 벚꽃길을 따라 라이딩하거나 강화 나들이를 다녀오기도 했다. 하루는 오토바이 뒤에 타고 면사무소가 있는, 월곶면에서 가장 번화한 곳을 지나가는데 남편이 많은 사람과 인사를 나누었다. 이제 그는 월곶면의 인싸가 되었다.
2년만 타고 다시 팔겠다던 약속은 잊힌 지 오래, 그는 업그레이드하고 싶어서 매일 같이 인터넷에서 보물 찾기를 하고 있다. 할리 한량의 보물 찾기를 계속 묵인할 것인지 말릴 것인지 고민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