맛보다 깊은 고기 한 점의 이야기

오래 머무는 한 점의 감동

by 보나스토리

입안에 남겨진 것들

삼켰다. 고기는 이제 내 몸의 일부가 되어 간다. 하지만 무언가 여전히 입안에 머문다. 맛도 아니고 향도 아니다. 질감의 기억도 아니다. 무엇인가 설명할 수 없는 감각이 혀 위에, 입천장에, 목구멍 깊숙이 남아 있다. 음식을 맛본다는 것은 단순히 맛을 느끼는 행위가 아니다. 그것은 기억을 만드는 과정이다.

마르셀 프루스트는 《잃어버린 시간을 찾아서》에서 홍차에 적신 마들렌 한 조각이 어떻게 잊혀 있던 유년의 기억을 되살리는지를 섬세하게 그려낸다. “과자 조각이 섞인 홍차 한 모금이 내 입천장에 닿는 순간, 나는 깜짝 놀라 내 안에서 어떤 특별한 일이 일어나고 있음을 느꼈다.” 한 입의 음식은 순식간에 우리를 지나간 시간 속 어느 장면으로 데려간다. 미각과 후각은 다른 어떤 감각보다도 깊고 강하게 기억과 맞닿아 있기 때문이다.

그래서 잘 구운 고기 한 점은 단순히 허기를 채우는 데 그치지 않는다. 그것은 우리 안의 어떤 시간을 건드리고, 오래도록 사라지지 않을 여운으로 남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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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운이 만드는 층위

와인을 마실 때 '피니시(finish)'라는 표현을 쓴다. 와인을 삼킨 후 입안과 목에 남는 맛과 향. 좋은 와인일수록 피니시가 길고 복잡하다. 고기도 마찬가지다. 잘 구운 고기는 삼킨 후에도 오랫동안 입안에 여운을 남긴다.

첫 입에서 느껴지는 것은 표면의 맛이다. 소금, 불의 향, 마이야르 반응이 만든 고소함. 하지만 씹을수록, 그리고 삼킨 후에 진짜 맛이 드러난다. 지방이 녹으며 남긴 고소함, 숙성이 만든 깊은 감칠맛, 육즙이 입천장에 남긴 촉촉한 기억. 이 모든 것이 층층이 쌓여 하나의 경험을 만든다.

좋은 고기는 천천히 자신을 드러낸다. 처음엔 짠맛이, 그다음엔 고소함이, 그리고 마지막엔 구수한 단맛이 찾아온다. 이 순서를 무시하고 빨리 삼켜버리면 고기의 진심을 놓치게 된다. 천천히 씹고, 음미하고, 삼키고, 그리고 잠시 기다려야 한다. 그때 고기가 진짜로 하고 싶었던 이야기가 들린다.


기억 속에 새겨지는 맛

음식에 대한 기억은 유난히 오래 남는다. 맛뿐만 아니라 냄새와 형태, 소리와 감촉까지 음식은 우리의 오감을 자극하기 때문이다. 맛있는 음식에 특별한 기억이 더해지면 잊을 수 없는 추억이 되기도 한다. 참 신기하게도 특별한 것 없는 평범한 음식의 맛이 오래도록 기억에 남을 때도 있다.

누군가에게는 할머니가 구워주시던 삼겹살이, 누군가에게는 첫 데이트에서 먹던 스테이크가, 또 누군가에게는 혼자 먹던 편의점 도시락 위의 고기가 평생 잊히지 않는다. 같은 고기를 먹어도 그때의 맛을 다시는 느낄 수 없는 이유는 단순히 요리 실력이 달라서가 아니다. 그때 그 순간의 감정, 함께한 사람, 그 시절의 나 자신. 그 모든 것이 맛의 일부였기 때문이다.

뇌의 변연계는 감정과 기억을 관장하는데, 미각과 후각은 이 변연계와 직접 연결되어 있다. 시각이나 청각보다 훨씬 더 감정적이고 원초적인 방식으로 기억된다. 그래서 고기 굽는 냄새 하나만으로도 우리는 순식간에 과거의 어느 날로 돌아간다. 여름밤 골목 고깃집, 겨울날 할머니 댁 부엌, 대학 시절 자취방 근처 포장마차.


완벽이 머무는 순간

가끔 이상적으로 익은 한 점을 만난다. 두께와 익힘 정도가 적절하고, 입에 들어오는 순간 맛이 조화롭게 느껴진다. 겉은 바삭하고 속은 부드러우며, 육즙은 충분하되 흘러넘치지 않고, 간은 표면에만 살짝 닿아 있어 고기 본연의 맛을 가리지 않는다.

그 한 점을 입에 넣는 순간, 음식에 집중하게 된다. 다른 생각은 잠시 잊히고 맛에 몰입하게 된다. 오직 이 순간, 이 맛, 이 경험에만 온전히 집중하게 된다. 불교에서 말하는 '지금 여기(here and now)'의 상태. 명상을 하지 않아도, 요가를 하지 않아도, 잘 익은 고기 한 점은 잠시 지금 이 순간에 집중하게 만든다.

씹을수록 다양한 맛이 느껴진다. 고소함에서 감칠맛과 구수한 단맛이 이어진다. 지방이 녹으며 입천장을 타고 흐르고, 육즙이 혀를 적시며, 향이 코를 타고 뇌로 전달된다. 삼키고 나서도 여운이 길게 남는다. 입안에 머무는 풍미, 목을 타고 내려가는 따뜻함, 그리고 마음속에 남는 만족감.


천천히 먹는 여유

천천히 먹으면 적은 양으로도 더 큰 만족을 얻을 수 있다. 우리 몸이 포만감을 느끼는 데는 시간이 필요하다. 음식이 위장에 도달하고, 소화가 시작되고, 포만감 호르몬인 렙틴이 분비되어 뇌에 신호를 보내는 과정. 이 모든 과정에 약간의 시간이 걸린다. 그래서 천천히 오래 먹으면 적은 음식으로도 충분히 배부르다.

하지만 천천히 먹는 이유는 포만감 때문만이 아니다. 음식을 천천히 먹으면 그 음식이 진짜로 전하고 싶었던 메시지를 들을 수 있다. 빨리 먹으면 첫맛만 느끼고 지나간다. 자극적이고 강한 맛만 느껴진다. 하지만 천천히, 오래 씹으면 숨겨진 맛들이 드러난다.

30번, 50번, 어떤 이는 60번씩 씹는다고 한다. 처음엔 귀찮고 이상하게 느껴지지만, 익숙해지면 완전히 다른 세계가 열린다. 고기 한 점을 먹어도 온갖 맛의 향연이 펼쳐진다. 하나를 오래 씹고 음미하면 더 이상 많이 먹고 싶은 욕구가 사라진다. 몸과 마음이 모두 만족하기 때문이다.


다시 찾게 되는 그 맛

며칠이 지나도 그 맛이 생각난다. 완벽하게 구운 그 한 점. 지금 당장 다시 먹고 싶다. 하지만 알고 있다. 같은 식당에 가서 같은 부위를 주문해도 그때 그 맛은 다시 나오지 않는다는 것을. 고기의 상태도, 불의 온도도, 굽는 사람의 손길도, 그리고 무엇보다 그때 그 순간의 나 자신도 다르기 때문이다.

그래서 더 소중하다. 이상적으로 익은 한 점의 경험은 매번 조금씩 다르다. 완전히 동일하게 재현되기는 어렵다. 같은 맛을 재현할 수 있다고 생각하는 순간, 우리는 지금 이 순간의 소중함을 놓친다. 지금 이 한 점이 내 인생에서 마지막 고기라고 생각하고 먹어야 한다. 그래야 진짜 맛을 느낄 수 있다.

하지만 역설적이게도, 그 맛을 잊지 못해 다시 찾아간다. 같은 맛은 아니어도 괜찮다. 비슷한 감동을 느낄 수 있다면. 그 순간의 기억을 조금이라도 되살릴 수 있다면. 우리는 또 고기를 굽는다. 불판 앞에 앉는다. 기다린다. 그리고 한 점을 입에 넣는다.


감동이 지속되는 시간

감동은 순간이지만, 여운은 오래 남는다. 완벽한 한 점을 먹은 후의 그 감정. 만족스러움, 행복함, 충만함. 그것은 단순히 배가 부른 것과는 다르다. 마음이 채워진 느낌이다.

좋은 음식은 몸만 채우는 것이 아니라 마음까지 채운다. 영양분만 공급하는 것이 아니라 감정까지 공급한다. 그래서 우리는 배고프지 않아도 맛있는 것을 먹고 싶어 한다. 몸이 아니라 마음이 배고프기 때문이다.

한 점의 고기가 주는 감동은 생각보다 오래간다. 그날 저녁, 다음 날 아침, 일주일 후에도 여전히 생각난다. "그때 그 고기 정말 맛있었어." 함께 먹던 사람과 추억을 나눈다. 혼자 먹었어도 괜찮다. 나 자신과의 대화가 된다. 그 순간을 기억하며 미소 짓는다.


끝없는 추구

다음에는 더 잘 구울 수 있을까. 더 맛있게 만들 수 있을까. 고기를 굽는 사람은 항상 고민한다. 지난번보다 나아지기를 원한다. 완벽에 가까워지기를 바란다.

하지만 완벽은 존재하지 않는다. 아니, 정확히 말하면 매번 다른 완벽이 존재한다. 어제의 완벽과 오늘의 완벽은 다르다. 같은 고기를, 같은 방법으로 구워도 결과는 매번 다르다. 그것이 요리의 묘미다.

그래서 우리는 계속 굽는다. 불판 앞에 선다. 고기를 올린다. 지글거리는 소리를 듣는다. 향을 맡는다. 뒤집는다. 기다린다. 그리고 한 점을 입에 넣는다. 매번 새로운 경험이다. 매번 새로운 감동이다.

한 점의 고기가 입안에서 사라진다. 하지만 그 감동은 오래도록 머문다. 기억 속에, 마음속에, 몸속에. 그것이 바로 음식이 우리에게 주는 가장 큰 선물이다. 순간의 맛이 아니라, 오래 머무는 감동. 그래서 우리는 오늘도 한 점을 굽는다.



참고 서적《고기 한 점, 불과 시간을 품다》조동천 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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