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의 첫 건강검진
나의 첫 건강검진이라고 쓰지만 처음 하는 위 내시경이라고 해야 맞겠다. 남편을 따라 원플러스원으로 건강검진을 받게 됐다. 작년 남편의 위에 서식하고 있던 헬리코박터가 내심 찜찜했다. 물론 과거 글에서도 썼지만 한 달 동안 성실하게 약을 먹은 덕분에 균 따위는 말끔히 제거되었다. 한식이 그렇듯 한 냄비에 숟가락을 담가 먹으며 식구의 정을 나누다 보니 세균마저 공유하게 될까 내심 걱정이 됐다. 수면 마취도 무섭고 내시경은 더 무서워 몇 번을 미루다가 남편의 위 상태를 보아 섭생을 함께 하는 나의 위 건강도 염려스러워 용기를 낸 것이다.
날이 다가올수록 근심 걱정과 초조 불안이 나의 마음을 흔들었다. 하물며 출산도 마취 한번 없이 했으니 사십 평생 첫 경험이나 마찬가지였다. 혹여 마취가 잘 되지 않을까 봐 또는 잠에 빠져 깨어나지 못할까 봐 나 홀로 전전긍긍했다. 이미 수차례 겪은 노련한 경험자는 전혀 그럴 일이 없다며 걱정하지 말라며 안심시켰지만 만에 하나가 나일수도 있는 거였다. 나의 풍부한 상상력은 나를 잠 못 들게 했고 밤새 뒤척이다 떼꾼한 눈으로 일어나 새벽 일찍 병원으로 향했다.
키와 몸무게, 시력과 청력 검사 같은 기초적인 검사부터 순차적으로 진행됐다. 수면 내시경만큼은 최대한 늦게 하고 싶었는데 기본적인 검사가 채 끝나자마자 간호사는 위 내시경 검사로 안내했다. 나는 개미 같은 목소리로 나중에 하면 안 되냐며 조심스럽게 물었지만 대기 시간이 점점 길어지는 터라 지금 검사하는 게 가장 빠르다는 답변이 돌아왔다. 검사실 앞으로 터덜터덜 걸어갔더니 반가운 얼굴이 보였다. 남편이었다. 평소에도 감정의 동요가 거의 없는 남편은 역시나 무덤덤하게 대기실에 앉아 있었다. 나는 옆자리로 가 긴장이라도 풀 요량이었는데 남편은 나보다 빠른 순번으로 미련 없이 검사실로 들어가 버렸다.
간호사에게 간단한 주의사항을 듣고 동의한다는 뜻으로 종이에 사인을 했다. 대기실에 앉아 있는 십여 명의 표정을 슬쩍 보아도 남편의 그 무덤덤한 표정과 다를 바 없었다. 나만 요란을 떠는 건가 싶은 생각에 최대한 심호흡을 하며 차례를 기다리고 있었다. 이럴 때만 신을 찾으며 기도하는 나 자신이 이기적인 인간처럼 느껴져 그냥 될 대로 되라는 심정이었다. 남편은 이미 검사 중이거나 회복 중이겠거니 생각할 무렵 내 이름 석자가 불렸다.
칸칸이 벽으로 나눠진 공간에 내시경을 위한 도구와 검사대 그리고 3인 1조의 의료진이 기다리고 있었다. 마음의 준비를 할 시간도 없이 알코올 범벅이 된 차가운 검사대에 바로 누웠다. 왼쪽으로 누워 마우스 피스를 입술로 물었고 왼쪽 팔에 놓은 주사 바늘로 마취제가 막 투여됐다. “눈을 감으세요.”라는 간호사의 말이 끝나자마자 나는 깊은 잠에 빠졌다. 내가 눈을 뜬 건 회복실에서였다. 꿈까지 꾸며 무의식의 세계를 탐험하고 있었는데 의식 세계에서 불리는 내 이름에 눈이 스르르 떠졌다. 깊은 잠에서 막 깨었을 때 마냥 몽롱했다. 나의 상태를 확인한 간호사는 10분 더 쉬라며 커튼을 다시 닫아주었고 이대로 다시 누웠다간 두 시간은 자야 할 거 같아 몸을 일으켜 앉았다. 그리고는 손바닥으로 두 뺨을 찰싹 때렸다. 정신없는 와중에도 나의 첫 내시경 검사를 기념이라도 해야겠다는 생각에 바구니에 담긴 핸드폰을 꺼내 게슴츠레한 눈으로 셀카까지 찍었다. 마음 같아서는 딱 한 시간만이라도 푹 자고 싶었지만 나 말고도 검사를 받기 위해 줄을 서서 대기하는 사람들과 나 역시 아직 받아야 할 검사가 연이어 있었기에 무거운 몸을 일으켰다. 의식은 있었지만 몽롱하기도 하고 어지러웠다. 하필 다음 검사는 3층이어서 계단 난간을 붙잡고 천천히 올랐다.
비몽사몽 한 정신으로 의사 면담까지 했는데 역시나 남편의 위 상태와 별반 다르지 않았다. 아니 헬리코박터균은 없었으니 조금 나았다고 해야 하나. 역류성 식도염과 위염 증상이 있었고 종양도 한 개나 제거했단다. 해마다 검진할 정도는 아니라는 말이 그나마 다행스러웠다. 한 손으로 머리를 지지하듯 부여잡고 검사를 다녔는데 나만 어지러운 것 같았다. 의사는 모니터로 기록지를 보더니 체중에 비해 마취제가 좀 더 투여됐다며 영양수액을 권했다. 나는 이대로 한 시간은 잘 수 있겠다는 생각에 주사를 맞겠다고 했지만 나의 다음 코스는 주사실이 아니라 또 다른 검사실이었다. 그로부터 한 시간이 훌쩍 지나 정신이 점차 또렷해질 무렵 모든 검사가 끝이 났고 나는 드디어 영양수액을 맞으러 주사실로 갔다. 전기 매트가 깔린 따끈한 침대에 누워 아미노산 수액과 종양을 뗀 자리가 빠르게 아물도록 도와준다는 영양제도 같이 맞았다. 첫 위 내시경 검사의 피날레는 호화스러운 영양 주사였다.
치과 검진까지 빠르게 마친 남편은 로비에서 나를 기다리고 있었다. 자초지종을 듣더니 정작 본인은 용종도 없었고 작년보다 상태가 좋았다며 으쓱해했다. 나는 위를 보호할 약을 2주 치나 처방받았고 일주일 동안은 카페인은 물론 맵고 짠 자극적인 음식 또한 금해야 했다. 남편은 나를 골리기라도 하듯 아이스 아메리카노를 시원하게 들이켰고 나는 구수한 미숫가루를 홀짝이며 마셨다.
곰곰이 생각해 보니 남편이 나에겐 잠수함 속 토끼이자 광산의 카나리아 같은 존재였다. 남편은 해마다 건강검진을 받는데 식생활을 함께 하는 가족으로서 그의 건강으로 말미암아 나의 건강 상태를 미루어 알 수 있는 리트머스지 같기 때문이다. 물론 직장인의 피할 수 없는 스트레스, 잦은 외식을 고려하더라도 말이다. 그토록 우려했던 일은 결코 일어나지 않았고 나는 찜찜하고 불안했던 마음을 해소했다.
나에겐 카나리아와 토끼 같은 든든한 존재가 있다. 그러니 건강검진은 당분간 안 받아도 괜찮을 것 같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