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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체리봉봉 Nov 20. 2024

나도 개똥이가 되고 싶다

<개똥이네 놀이터>로 놀러 가자!

지난 한 주 내내 마음이 편치 않았다. 유일무이한 딸이 심한 감기에 걸렸기 때문이다. 폐렴 같은 기침감기다. 현장체험 학습을 하는 날 따뜻하게 입으라고 잔소리도 했는데 결국 종일 야외에서 활동하다가 옴팡지게 걸렸다.

병원에 다니고 약을 먹이고 학교도 못 가고 학원 수업도 빠지고 내 마음도 좌불안석이었다. 왜냐하면 셔니는 "개똥이"이기 때문이다. 




그렇다. 그녀는 보리출판사에서 만드는 어린이 잡지 <개똥이네 놀이터> 애독자이자 개똥이 기자로서 12월호 특집에 실릴 옛이야기 연극에 캐스팅된 상태였기 때문이다. 정기 구독을 신청하며 수차례 뮤지컬 무대에 섰던 경험을 기사로 써서 응모했고 영광스럽게도 매번 잡지에 실렸었다. 셔니의 기사를 기억해 준 편집부에서 옛이야기 “꾀쟁이 수달”의 토끼 역할로 참여할 수 있는 기회를 준 것이다. 감지덕지하며 미리 대본도 외우고 나름 준비를 했는데 이 사달이 났다. 



어서 기침이 멎기를 바랐지만 별 차도가 없었다. 입을 열고 말을 할 때마다 기침이 튀어나오니 숨길 수도 없었다. 정말이지 사랑과 기침은 감출 수가 없다! 유튜브에도 영상이 올라가고 잡지에도 기사로 실리는, 소중한 기회를 저버리기에는 너무 아까웠다. 하루, 이틀 시간이 흐르고 점점 더 초조해졌다. 내가 대신 아플 수도 없고, 시간을 되돌릴 수도 없고, 감기 걸린 토끼로 캐릭터를 바꾸자고 제안할 수도 없는 노릇이다. 여차하면 내가 토끼탈이라도 쓰고 대신 공연을 하고 싶은 심정이었다.



하지만 아직 일주일이라는 시간이 남았다. 감기는 약을 먹으면 7일, 안 먹으면 일주일이라고 하지 않던가. 부지런히 약을 먹이고 낫기만을 기다리고 있었다. 세상의 모든 신들에게 텔레파시를 보내면서.




드디어 약속한 날이 찾아왔다. 완전히 다 낫지는 않았지만 간헐적인 기침으로 대사는 말할 수 있는 상태가 되었다. 파주출판단지로 향하는 길에 내가 가장 설렜다. 단풍나무가 오밀조밀하게 모여 한가을의 장관을 연출했고 따스한 가을햇살과 청명한 하늘은 왠지 모를 기대감을 불러일으켰다. 

약속 시간보다 조금 이르게 도착했는데 보리출판사 야외 놀이터에는 이미 아이들 몇몇이 와 있었다. 수달 친구일까 호랑이 친구일까 궁금했다. 



개똥이네 놀이터 편집자분을 만나 인사를 하고 함께 연극을 할 친구들을 만났다. 수달과 호랑이는 5학년 언니들이었다. 셔니보다 키도 크고 야무지고 다부진 외양이 믿음직스러웠다. 

보리출판사 지하 1층에 있는 강당에서 “꾀쟁이 수달” 연극 영상을 찍었다. 국어시간에 교실 앞으로 나가 친구들끼리 합을 맞추듯 자연스럽고 편안한 분위기에서 개똥이들의 무대가 시작됐다. 각자 맡은 역할의 동물 머리띠를 한 꼬마 배우들에게 이목이 집중됐다. 혹시라도 셔니 기침으로 극의 흐름이 끊길까 봐 조마조마하며 간절한 마음으로 지켜보았다. 두 손이 저절로 모아졌다. 



가장 대사가 많았던 수달은 미리 암기까지 해오는 열정으로 극의 처음과 끝을 이끌었다. 호랑이는 수달의 대사에 따라 표정과 몸짓, 소리까지 시시각각 다르게 연출하며 메서드급 연기를 펼쳤고 보는 이들의 입이 점점 벌어질 정도였다. 다행인지 불행인지 호랑이가 열연을 펼칠수록 토끼의 존재감은 조금씩 흐려졌고 점점 편안하고 즐거운 마음으로 관람할 수 있었다. 물론 토끼에게도 기침이 튀어나올 법한 위기가 한 차례 있었으나 강인한 정신력과 의지로 대사를 끝까지 마무리했다.



개똥이들은 정념의 아이콘 같았다. 기사도 잘 쓰고 그림도 잘 그리고 연기도 잘 해내는 만능 재주꾼. 반짝반짝 별처럼 빛나는 아이들을 또 어디에서 만날 수 있을까. 매사에 손방인 나는 개똥이들이 부러웠다. 

그래도 내가 개똥이의 엄마라서 행복한 날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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