여름이면 찾아오는 이 불청객을 다시 만난 건 불과 며칠 전이었다. 어슴푸레하게 해가 밝아오던 새벽녘 나도 모르게 발꿈치로 손이 가서 자꾸만 긁고 있었다. 정확히는 아킬레스건이 있는 곳이었다. 잠결에 긁다가 급기야 잠에서 깨 버렸다. 거실로 나가 전등을 켜고 왼쪽 발 뒤꿈치를 살폈더니 새끼손톱만 한 크기로 볼록하게 부풀어 오른 부분이 보였다. 필시 모기의 공격이었다. 약통에서 벌레에 물렸을 때 바르는 약을 찾아 연거푸 발랐다. 작년 말레이시아 왓슨스에서 꽤 유명하다는 모기약 콴룽을 사 왔었다. 아주 작은 미니사이즈의 물파스 같은 제형과 향으로 진정 효과가 좋았다. 폭염과 폭우로 모기가 급감했다는 뉴스를 본 게 엊그제인데 모기는 기어코 우리 집을 찾아왔다.
그나마 내 피부는 모기에 물렸어도 금세 가라앉지만 셔니는 다르다. 모기 알레르기라도 있는 것처럼 물린 부위부터 사방 좌우로 붉게 퉁퉁 붓는다. 긁지 않으려고 해도 자꾸만 가려워 손이 가게 된다고. 모기약을 이것저것 발라보지만 영 효과가 없다. 셔니는 물린 곳을 찰싹 때려서 가려움을 이겨내 보고 꽝꽝 얼린 아이스팩을 피부에 대고 진정시키기 바쁘다. 그러고 보니 내가 셔니만 한 나이였을 때는 모기에 물리면 퉁퉁 붓는 경우가 잦았다. 그럴 때마다 아빠는 집에 있던 가래떡 같은 양초에 불을 피워 촛농을 모기 물린 데에 한 두 방울 떨어뜨렸다. 돌이켜보니 이것도 아동 학대가 아닌가 싶을 정도인데 그럼에도 화상을 입지는 않았고 붓기도 가려움증도 해결됐다.
여름밤 우리의 피를 노리는 흡혈귀의 공격에 맞서기 위한 아빠의 손자병법은 단순했다. 일단 아군들은 방에서 퇴각시킨 후 방안 구석구석 모기 살충제를 뿌려 둔다. 방문까지 꼭 닫아 밀실을 만들어 놓고 적군이 호흡곤란을 일으켜 죽음에 이르도록 한다. 또 창문 가까이에는 꼬불꼬불한 형태의 모기향을 피워 모기의 접근을 막는다.
살충제 공격 다음은 모기장을 이용한 방어 전략이다. 지금은 원터치 텐트형도 있어서 손쉽게 펴고 접을 수 있지만 그 시절에는 네 귀에 붙은 고리를 방 안 여기저기에 걸어야 했다. 그물처럼 촘촘한 망사를 쳐두고 모기의 공격을 피하자는 것인데 모기장을 치고 잠자리에 들려고 하면 꼭 화장실에 가고 싶어졌다. 들락날락거릴 때마다 모기의 습격이 예상되는 바 아빠의 잔소리도 뒤꽁무니를 쫓아왔다. 모기장을 드나들 때마다 바닥에 모기장이 들뜨는 곳이 없도록 드레스 자락을 정리하듯 여러 번 매만져야 했다. 비록 감성과는 거리가 먼 푸른색의 모기장이었지만 내 눈에는 공주들의 침대에 있을 것 같은 캐노피 같았다. 자매들과 나란히 누워 도란도란 수다를 떨다가 ‘엥’하는 모기 소리에 화들짝 일어나 양 손바닥을 치켜들고 전투태세로 돌변하는 군인이 되기도 했다. 첫째 큰 언니는 말년 병장 선임으로서 단독으로 방을 쓰는 호사를 누렸고 조무래기 같은 2, 3, 4번은 한 방을 쓰며 모래알처럼 티격태격하다가도 모기라는 적군 앞에 대동단결 합심했다.
어느 여름날 모기 한 방 물렸을 뿐인데 흡혈귀 같은 모기 한 마리가 나의 어린 추억을 재생시키는 레코드 버튼을 누르고 도망가 버렸다. 다행히 모기약이 피부에 잘 맞아서 붓기는 금방 가라앉았고, 두둥실 떠오른 여름 추억은 이 글로 갈무리해야겠다. 그나저나 올해는 가을 모기가 기승을 부린다는데 모기장을 새로 들여야 할까 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