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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베리슬로 선유산책 Aug 03. 2021

8월 셋

시를 읽다가 무언가 턱 막혀오는 느낌이 들어서 책을 내려놓고 마음을 가다듬었다. 이 시집의 여러 개의 시와 여러 개의 구절이 관통한다. 맑은 물속 안에 있는 것들은 모두 일렁이겠지 흔들리는 것들을 모두 끌어안고 싶었다. 지난밤엔 갑자기 과거에 받았던 상처들이 떠올랐다. 하나가 생각나니 꼬리에 꼬리를 물고 상처가 상처를 건져 올려 어지러웠다. 옆에 있는 인형을 꼭 껴안으며 마음을 달랬다. ‘이를테면 온기 같은 것’이라는 아무튼, 메모의 문장이 떠올랐다. 그 인형은 생물이 아니니 온기는 나의 것에 더 가까울지도 모른다. 그래도 인형의 부드러움이 인간이라면 기본적으로 행복해하는 생리적 감각을 일깨워준 터라 무의식적으로 매만지고 또 매만졌다.

어제는 하지 못한 산책을 오늘 하고 왔다. 밖을 나와보니 또 온통 황홀한 하늘이었다. 구름 아래 아랫부분만 물든 느낌이 인상적이었다. 공원에 도착할 즈음에는 노을이 끝자락일 테고 흐린 구름만 흩어지겠지만 그래도 발걸음을 서둘렀다. 악뮤의 째깍 째깍 째깍을 듣는데 박자에 맞춰 괜히 더 서두르게 되었다. 역시나 도착하니 하늘은 저물고 있었다. 그래도 이 느낌도 좋았다. 불타고 남은 것들, 화려함 뒤에서야 드러나는 작고 은은한 것들, 그런 재와 같은 구름들이라는 느낌이 들기 때문이다.

오른쪽 아래 벤치에 어떤 두 분이서 발박수 같은 행동을 하고 있었다. 발을 발끼리 툭툭. 조금 선선한 날씨에 한적한 공원에 좋은 하늘. 애정 하는 사람과 그 자리에서 발박수를 하고 있다는 건 참 좋은 순간인 것 같다. 이것이 그들의 일상일지도 모른다는 생각도 들었다. 위에서 멀리서 이 행동을 보니 작은 장난감이 움직이는 것 같아서 귀여웠다

봄에 밭이 하나 생겼다. 이 위로 노을빛이 스며드는 것도 볼만했다. 무얼 심은 것인지 궁금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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