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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봉보로봉 Jul 30. 2016

자매의 여행

다녀오길 잘했네, 몇번이고 생각한다.

이번 여행은 동생이 결혼하기 전 둘이 함께 하는 마지막 여행이었다. 앞으로 이렇게 파리에 둘이 오기는 아마 매우 어려울 것이다. 그 때의 사진을 볼 때마다 다녀오기 잘했다는 생각이 몇 번이고 든다. 값이 오른 부동산을 산 거 같이 정말 그러길 잘했어, 라고 만날 때마다 이야기한다.


어렸을 때부터 줄곧 한방을 쓰던 우리 자매는 밤마다 조잘조잘, 대학생이되어서도 직장인이 되어서도 이제 자야 하는데, 자야 하는데, 하면서 조잘댔다. 둘이 이야기하고 있는 걸 보는 사람마다 ‘너희는 매일 보면서 무슨 할말이 그렇게 많니’ 라고 말하고들 했는데, 그야 매일 이야기하니 서로의 화제를 다 알고 있고, 그래서 오히려 이야기 거리는 줄어드는 법이 없다. 기하급수적으로 늘어나기만 한다.


먼저 여행을 시작한 나와 파리에서 합류한 동생은 10시간이 넘는 비행에 피곤할 텐데, 저녁을 먹으러 가기 위해 옷을 갈아입으면서도 할 이야기가 많아 스톱! 일단 저녁 먹으러 가서이야기하자! 라고 해야 할 정도였다. 결혼을 앞두고 있는터라 자매의 이야기는 더 깊고 심각하고 중요했다. 그러다가 결국 깔깔대며 잠들었지만. 나는 화장도 안 했고 동생은 비행으로 초췌했지만 집 근처 식당에서 우리는 휴대폰으로 사진을 찍었다. 나는 레드 와인에 달팽이 요리를, 동생은 스테이크와 감자요리와 콜라를 주문했다. 사진을 보면서 식당 벽과 그날 저녁의 분위기와 나눈 이야기를 지금도 기억한다. 이게 맛있다더라, 이건 꼭 먹어봐야 한다더라, 면서 메뉴 판을 보기는 했지만 사실어떤 것이든 상관없었다. 주위는 시끌시끌, 불어로 적힌 메뉴, 주위에서 들리는 불어, 음식이 아니어도 모든 게 낯설고 특별했다. 맛도 보기 전에 분위기에 들떠 버렸다.


스물 두 살에 영국에서 일년 정도를 지내고 한국에 들어오면서 언제든 영국에 다시 갈 수 있겠지, 손에 돈 한푼 쥐고 있지 않으면서도 그렇게 확신했다. 파리든, 스페인이든, 마음만 먹으면 언제든 갈 수 있다고 생각했었다. 그런데 십 년이 흐른 뒤에서야 영국을 다시 방문할 수 있었다. 그것도 여러 사람의 배려로 가능했다.


그 때는 당연하게 생각했다. 눈 앞에 있는 것은 '가능성'밖에 없었던 젊은 우리는 ‘당연히’ 세계를 여행할 거라 믿었다. 여행을 마칠 때면 친구에게 “우리 또 같이 가자”라고 약속했다. 시간이 지나고 보니, 열심히 기회를 만들어 보려고 해도 사람에게는 몇 번의 기회밖에 없다는 것을 알았다.


처음 뮤지컬을 보고 흥분해서는 OST를 몇 번이고 따라 부르며 뮤지컬은 모조리 다 보리라 다짐했지만 예매할 때는 항상 아, 비싸다 하고 다음으로 미룬다. 동생이, 친척이, 친구가 외국에 살고 있어서 ‘꼭 놀러와’ ‘응 꼭 갈게’라고 진심으로 말해도 한 번 가기가 여의치 않다.  


모든 것이 손가락에 꼽힌다. 내가 손을 내밀어 꺾지 않았을 뿐이지 다 내 것 같았던 들판의 꽃들은 내 것이 아니었다. 차창 너머로 기분 좋게 바라보던 그 꽃들도 차 뒤로 지나가면 내 것이 아니다. 내 것이 아닌데 언제든지 손만 뻗으면 된다고 생각했던 것 같다. 그것은 사실 하늘의 별처럼 멀리 있는 것이었는데, 내가 꺾지 않았을뿐이라고 생각했다. 그런 근거 없는 자신감이 당연하게 흘러 넘치던 시절이 있었다.


 


윤상의 노래 중에 ‘달리기’라는 노래가 있다.


“지겨운가요. 힘든가요? 숨이 턱까지 찼나요- “로 시작하는 노래를 나는 S.E.S 라는 여자 아이돌 그룹이 부른 것으로 처음 들었다. ‘달리기’라는 노래 제목도 그렇고 상큼한 여자 가수들이 부르는 만큼 귀엽고 발랄한 곡일 거라 생각했는데 찬찬히 가사를듣고 있자니, “끝난 뒤엔 지겨울 만큼 오랫동안 쉴 수 있다는 걸” 이란 가사에 안심이 된다기보다는 아, 그렇지 더 이상 뛸 레이스가 없는 날이 오겠지. 라고 어린 나이에도 좀 쓸쓸해졌던 것 같다. 지금도 가끔 십 년전에 즐겨 듣던 곡들을 다시 듣곤 하는데 들을 때마다, 이 부분이 점점 선명해져서 남의 일이 아니야, 싶은 가사가 되어가고 있다.


그래서 여행을 할 때면 하루를 마치고 베개에 머리를 누이며 ‘이틀남았네, 곧 마지막 날이 오겠지’하고 여행을 하면서도 여행을아쉬워한다.


뒤도 돌아보지 않았던 것들을 자꾸 뒤돌아보고 쉽게 발 떼지 못하고, 그런다.      


여행에서 돌아와 두 달 후 동생은 결혼하고 서로 40km나 떨어진곳에 살고 있다. 시시콜콜 알았던 서로의 사정들은 조금씩 구멍이 생기고 내가 모르는 일, 내가 모르는 사람, 내가 모르는 이벤트들이 그 짧은 기간에 생겨나면서 이제는 그런 것들이 기하급수적으로 늘어나고 있다.


휴대폰에 담아온 그 여행지에서의 음식들을 가끔 본다. 그런 것들이 레이스를 뛰는 중에도 뛰고 난 뒤에도 맛있었는데, 즐거웠는데, 하며 조금 기운 나게 해주는 소중한 것이 된다.


다녀오길 잘했네. 몇 번이고 생각했다.

앞으로 우리 둘이 함께 여행을 살 수 있는 기회가 있을 수도 있고 없을 수도 있다. 서로 모르는 일이 늘어나고 있지만 그 여행에서 먹었던 달팽이와 마카롱과 엄청나게 양이 많았던 샐러드와 시장의 크레페에 대해서는 우리 둘 다 아주 잘 알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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